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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의 도발…당신의 도덕은 얼마인가

등록 2012-04-27 17:40수정 2012-04-27 21:14

열띤 강의를 펼치고 있는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모습. 공리주의와 자유주의의 한계를 날카롭게 비판해온 샌델은 새 책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도덕을 배제한 경제’의 위험성을 지적한다. 또 ‘좋은 삶’에 대한 논의가 빠진 정치로는 시장만능주의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한겨레> 자료사진
열띤 강의를 펼치고 있는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모습. 공리주의와 자유주의의 한계를 날카롭게 비판해온 샌델은 새 책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도덕을 배제한 경제’의 위험성을 지적한다. 또 ‘좋은 삶’에 대한 논의가 빠진 정치로는 시장만능주의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한겨레> 자료사진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
마이클 샌델 지음, 김선욱 감수, 안기순 옮김/와이즈베리·1만6000원
뭐든지 돈만 주면 살 수 있나
대리 줄서기 등 생생 사례로
시장이 지배하는 현실 비판
“좋은 삶이 뭔지부터 논의를”

흔히 “돈만 있으면 뭐든 살 수 있는 세상”이라고 한다. <정의란 무엇인가>로 국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가 제시하는 미국의 사례들을 한번 보자. 캘리포니아주 샌타애나 등 여러 도시에서는 폭력범을 제외한 교도소 수감자들이 돈을 더 내면 깨끗하고 조용한 개인 감방으로 옮겨갈 수 있다. 1박에 82달러. 미니애폴리스 등에서는 돈만 더 내면 나 홀로 운전자도 2~3인 이상 ‘카풀’을 해야 달릴 수 있는 카풀차로를 달릴 수 있다. 러시아워에는 8달러가 든다. 의회 공청회를 참관하고 싶지만 밤새 줄을 서고 싶지는 않은 로비스트라면 시간당 15~20달러를 내고 ‘대리 줄서기 서비스’를 이용하면 된다. 스포츠 경기장이나 공항 등에서 돈을 좀더 내고 더 안락한 자리에서 기다리고 남들보다 빨리 입장하는 것은 이미 보편적인 현상이다.

그럼 질문을 던져보자. 돈으로 뭐든 살 수 있다면, 우리는 재벌 회장의 사촌동생이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노동자를 마구 때린 뒤 ‘맷값’이라며 돈을 던져준 행위까지도 ‘거래’로 인정해줘야 할 것이다. 인간 자체를 돈으로 사고파는 행위도 막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과연 우리는 돈으로 뭐든 살 수 있는 세상 속에서 살고자 하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가?

샌델의 새 책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이와 같은 질문을 던지며 시장의 도덕적 한계를 집요하게 따지고 들어간다. 한국과 미국, 영국에서 동시 출간된 이 책은 샌델이 지난 15년 동안 곱씹은 사유의 핵심을 담고 있으며, 올해 봄학기부터 하버드대에서 개설된 ‘시장과 도덕’ 강의의 뼈대이기도 하다. 다양하고 구체적인 사례들로부터 쟁점을 뽑아내는 샌델 특유의 논의 방법이 또다시 빛을 발한다.

샌델은 우리가 스스로 인식하지도 못하는 사이 “‘시장경제’를 가진 시대에서 ‘시장사회’를 이룬 시대로 휩쓸려왔다”고 지적한다. 시장경제는 생산활동을 조직하는 효과적인 도구다. 그러나 시장사회는 시장이 도구로 작동하는 것을 넘어, 시장가치가 인간활동의 모든 영역에 스며들어간 일종의 생활방식이라고 한다. 시장논리를 만능으로 떠받들며 이런 흐름을 굳혀온 두 주역은, 개인의 (사고팔 수 있는) 자유를 최우선의 가치로 보는 자유지상주의와 ‘경제학은 도덕이나 철학과 무관하며 사회적 효용의 극대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 공리주의다. 특히 샌델은 그레고리 맨큐로 대변되는, 공리주의 경제학에 좀더 무거운 비판을 가한다.

공리주의 경제학의 입장에서 보면, 대리 줄서기 등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 돈을 받고 줄을 서 준 사람이나 줄서기를 돈으로 산 사람 모두 최대의 효용을 누렸으며, 제3자가 누려야 할 효용도 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반박이 가능하다. ‘공정’의 관점에서 볼 때, 대리 줄서기는 결과적으로 돈이 있는 사람들만 누릴 수 있기 때문에 불평등과 불공정을 낳는다는 것이 첫번째 반박이다. 그러나 샌델은 이 관점보다는 ‘부패’의 관점에 무게를 싣는다. 의회는 대의정부라는 공적 기관이기 때문에 공청회를 볼 수 있는 기회를 무작위적으로 평등하게 나눠준다. 그러나 방청권을 돈으로 거래하도록 한다면, 의회는 대의정부 기관이 아니라 일종의 사업체로 변질된다. “가격을 지불하는 행위와 기다리는 행위는 재화를 분배하는 서로 다른 방식이며, 각 방식에 적합한 활동은 다르다”는 것이다.

시장사회가 되면서 만연하게 된 각종 인센티브도 마찬가지로 ‘부패’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어느 회사에서 직원들이 금연하면 10달러의 인센티브를 준다고 하자. 원래 금연이란 자신의 건강을 지키고 가다듬기 위한 행위인데, 인센티브는 이런 본질적 의미를 밀어내고 금연을 보상을 얻는 행위로 변질시킨다. 샌델은 이에 대해 “‘시장은 중립적’이라는 경제학자들의 주장과 달리, 시장의 가치평가와 교환이 특정 재화와 관행을 변질시킨다”고 말한다. 만연한 시장논리가 성, 시민정신, 명예, 환경, 교육, 건강, 안보 등 시장논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가치를 평가받아야 할 ‘비시장 규범’을 밀어냈다는 지적이다.

경제학에서 많이 인용되는 이스라엘 어린이집 사례는 이런 ‘부패’의 모습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이스라엘의 어린이집에서는 일부 부모들이 아이들을 늦게 데리러 오자, 이를 해결하려고 벌금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제도가 도입된 뒤 아이들을 늦게 데리러 오는 경우가 더 늘어났다. 아이를 늦게 데리러 오는 것을 비용을 치르고 누릴 수 있는 서비스로 생각한 것. 시장논리가 비시장 규범을 밀어낸 것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급한 과제는 무분별한 시장논리가 왜곡시켜온 재화의 도덕적 의미와 재화 가치의 적절한 평가방법에 대해 토론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 시장지상주의 시절 밖으로 내쫓겼던 도덕을 다시 공적 담론의 장으로 불러들이는 일이다. 여기에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 대한 샌델의 고민이 녹아들어 있다. 금융위기 뒤로 시장만능주의에 대한 온갖 비판과 반성이 쏟아져나왔는데, 시장논리는 왜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는가? 샌델은 무엇이 ‘좋은 삶’인지 논의조차 못하고 있는 공허한 공적 담론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곧 정치판에서 도덕적·정신적 내용에 대한 논의가 벌어지지 않는 한, 아무리 제도를 개선해도 시장만능주의가 가져온 위기를 근본적으로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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