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년 동안 발간된 <문화/과학>을 쌓아두고 전 편집인 심광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오른쪽)와 신임 편집인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나란히 섰다. 1992년 창간된 <문화/과학>은 전통적 마르크스주의와 포스트 이론 양쪽에 비판적으로 접근해온 진보적 문화이론 학술지로 자리매김했다. 탁기형 <한겨레21> 선임기자 khtak@hani.co.kr
계간잡지 ‘문화/과학’ 20돌
사회주의 몰락 등 전환기 첫선
‘문화이론’ 본격적인 탐구 나서
진보이론 모색 네트워크 기대
사회주의 몰락 등 전환기 첫선
‘문화이론’ 본격적인 탐구 나서
진보이론 모색 네트워크 기대
1990년대 초 대학가의 사회과학 전문서점들을 뜨겁게 달궜던 잡지를 2012년 오늘날에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사뭇 놀라운 일이다. 1992년 창간되어 올해로 20돌을 맞은 <문화/과학>은 이론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으며, 우리 사회에서 독보적인 ‘계간지의 역사’를 만들어온 매체로 꼽힌다. 지난 14일 창간 20돌·70호 발간 기념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창간 때부터 <문화/과학>을 이끌어왔던 심광현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교수와 새롭게 꾸려진 편집위원회를 주도할 이동연 한예종 교수, 이명원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가 함께했다.
“1990년 강내희 교수(중앙대)가 엮은 책 <포스트모더니즘의 쟁점>이 도화선이 됐죠. 서구의 ‘포스트’ 이론들을 ‘비판적 수용’의 관점에서 본격적으로 소개한 이 책에 대한 반응이 워낙 뜨거워, 이듬해 가을에 중앙대에서 심포지엄을 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이론적 접근을 위한 잡지를 만들어보자’는 제안까지 나오게 된 거죠. 초기엔 강내희 교수와 나, 이득재 대구가톨릭대 교수, 박거용 상명대 교수, 이성욱 평론가 등이 주축 멤버였습니다.”
<문화/과학>의 출발에 대한 심광현 교수의 회고다. 전통적 마르크스주의의 틀로서는 동유럽 현실사회주의의 몰락과 같은 사태를 풀이할 수 없다는 절박한 인식이 대두하던 때였다. 심 교수는 “역사의 새로운 순환이 시작되고 있었던 때에 이를 설명하기 위한 이론을 찾아내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이들이 당시 몰려들어오던 서구의 포스트 이론에 경도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자’를 노선으로 삼아, 전통적 마르크스주의 진영과 포스트 이론 진영 양쪽 모두한테 충격을 주려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주목한 이론가는 마르크스주의와 비마르크스주의의 만남, 곧 ‘마주침의 유물론’을 제기한 알튀세르였다. 창간호에서도 ‘마르크스주의의 발전과 계승’을 명시하는 한편, 이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려는 알튀세르의 테제들을 담았다고 한다. 전통적 마르크스주의 관점의 ‘경제결정론’에서 벗어나, 문화와 이데올로기 영역의 중요성에 눈을 돌린 ‘문화이론’에 대한 본격적인 탐구는 이렇게 시작됐다.
가장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은 <문화/과학>에서 치열하게 고민했던 이론들이 현실적 실천과 끈끈하게 맞닿았다는 점이다. <문화/과학>에서 발전시킨 ‘문화사회론’은 1999년 ‘문화연대’라는 대표적인 문화운동 단체를 낳았고, 문화사회론을 더욱 발전시킨 ‘생태문화 코뮌주의’는 2000년대 민중의 삶과 생활·문화·교육 등을 하나의 공간으로 연결하는 현장 운동인 ‘민중의 집’을 낳았다고 한다.
문화사회론은 ‘문화적 삶’을 앞세워 노동시간의 축소와 노동 거부 등을 이야기하는 이론이며, 생태문화 코뮌주의는 이 이론을 바탕으로 삼아 문화적 생산-소비자의 연합과 네트워크를 주창하는 이론이다. 구좌파와 신좌파를 종합적으로 아우르려는 노력은 2003년 ‘맑스코뮤날레’의 창립으로 이어졌고, 심미적 체험의 사회적 공유를 주장하는 ‘사회미학’ 이론은 쌍용차 정리해고 투쟁 등 각종 사회운동 현장에서 연대의 기틀이 됐다고 한다.
이번에 새롭게 편집위원을 맡은 연구자들의 면면을 보면, 기존의 <문화/과학> 정신을 계승하는 한편 새로운 것을 찾아내기 위한 준비를 읽어낼 수 있다. 권명아 동아대 교수(국문학), 서영표 제주대 교수(사회학), 조선령 미술평론가, 정정훈 수유너머 연구원,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국문학)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발히 활동해온 30~40대 연구자 25명이 참여한다. 특히 <진보평론> <위클리 수유너머> 등 다른 학술지에도 간여하는 사람들이 많아, 진보적·대안적 이론을 모색하는 네트워크의 가동도 기대할 수 있다.
신임 편집인인 이동연 교수는 “사회운동 현장과의 이론적 접목에 더 많이 관심을 쏟을 것”이라며 신임 편집위원회가 지향하는 바를 71호에 선언문 형태로 담겠다고 밝혔다. 다만 <문화/과학>의 첫 출발 때 알튀세르라는 ‘원석’의 구실이 컸던 반면, 지금은 그런 이론가를 찾을 수 없다는 점이 걱정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그래서 더욱 마르크스로 돌아가려고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곧 펴낼 70호는 ‘공황과 혁명’을 특집 주제로 삼았다. 오는 25일에는 서강대 다산관에서 창간 20돌 기념 심포지엄을 열 계획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이상돈 ‘비박 후보’ 디스? “정몽준은 노무현과 러브샷…”
■ 혹시 내가 먹은 소머리국밥도? 누리꾼 ‘덜덜덜’
■ ‘도박 몰카’ 성호스님 검찰출석…“더 큰 핵폭탄 있다”
■ 장윤정 뮤직비디오, 방송3사 방송불가…왜?
■ 임신한 아내를 위한 남편의 성 역할
■ 이상돈 ‘비박 후보’ 디스? “정몽준은 노무현과 러브샷…”
■ 혹시 내가 먹은 소머리국밥도? 누리꾼 ‘덜덜덜’
■ ‘도박 몰카’ 성호스님 검찰출석…“더 큰 핵폭탄 있다”
■ 장윤정 뮤직비디오, 방송3사 방송불가…왜?
■ 임신한 아내를 위한 남편의 성 역할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