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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포스트 담론’ 20년, 신자유주의 키웠다

등록 2012-06-17 20:20

지난 15일 오후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회의실에서 ‘탈근대, 탈식민, 탈민족-포스트 담론 20년의 성찰’이란 주제로 열린 학술 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지난 15일 오후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회의실에서 ‘탈근대, 탈식민, 탈민족-포스트 담론 20년의 성찰’이란 주제로 열린 학술 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인문·사회과학자들 심포지엄
이른바 ‘포스트마르크스주의’의 기념비적인 저작으로 꼽히는 라클라우·무페의 <사회변혁과 헤게모니>는 1990년 겨울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됐다. 2년 뒤인 1992년에는 이 책에 대한 영국 좌파 이론가들의 비판적 논쟁을 담은 책인 <포스트맑스주의?>가 국내에 번역·출간됐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이 하나둘 몰락해가던 때였다. 그런 시대 상황에 놓여 있던 국내 지식사회에 ‘포스트’(이후)라는 접두어가 마치 태풍처럼 몰려들었고, 그 뒤로 이제 20여년이 흘렀다.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의 ‘도래할 한국 민주주의’ 기획연구팀은 지난 15일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회의실에서 ‘탈근대, 탈식민, 탈민족-포스트 담론 20년의 성찰’이라는 제목의 학술 심포지엄을 열었다.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구조주의, 포스트마르크스주의, 포스트식민주의, 포스트민족주의 등 기존 좌파이론 ‘이후’를 탐색한다는 포스트 담론들은 지난 20년 동안 우리 사회의 지적 활동 곳곳에 큰 영향을 끼쳤다. 연구팀은 “한국의 지식사회는 겉으로는 포스트 담론에 관해 다양한 거부의 몸짓을 취했지만, 그 내면을 살펴보면 마치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듯이’ 서서히 포스트 담론이 스며들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런 큰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포스트 담론에 대한 본격적인 점검과 성찰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번 심포지엄은 그동안 부재했던 포스트 담론에 대한 비판적인 논쟁과 토론의 필요성을 총괄적으로 제기해보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철학·역사학·정치학·문학 등 다양한 학문 영역에 포진해 있는 서양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과 한국학 연구자들을 함께 토론의 장에 초청해 한국에서의 포스트 담론 수용사를 종합적으로 검토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 특히 지적 경로를 닦아나가는 과정 자체가 포스트 담론의 자장 아래 놓여 있었던 40대 연구자들이 적극적인 문제 제기에 나섰다.

서동진 교수
서동진 교수
서동진 교수
‘정치경제학 비판’ 맥락 놓쳐
신자유주의 합리화에 일조

서동진 계원조형예대 교수는 ‘포스트사회과학-사회적인 것의 과학, 그 이후?’라는 발표문을 통해 사회과학과 포스트사회과학이 어떤 계보 위에 놓여 있는지를 따져보고, 사회과학을 비판했던 이른바 ‘포스트사회과학’이 결국은 ‘신자유주의의 정치적 합리성’이 형성되는 데 기여해왔다고 지적했다. 19세기를 주도한 자유주의는 정치적 근대성(주권)과 경제적 근대성(자본주의)으로부터 비롯되는 모순들을 내부적으로 조정하기 위해 사회과학을 등장시켰는데, 여기에는 자유주의와 자유주의를 낳은 정치경제학에 대한 원초적인 비판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 그런데 사회과학을 비판하며 등장한 포스트사회과학은 이 ‘정치경제학 비판’의 맥락을 놓쳐,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 구실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서 교수는 “아직까지 잠재적인 기획인 포스트사회과학의 중심에는 마르크스주의를 비롯한 정치경제학 비판이 놓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명원 교수
이명원 교수
이명원 교수
포스트 모더니즘 담론 과잉
문학·정치 모두 시장의 손에

문학평론가 이명원 경희대 후마니타스 교수는 과잉된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이 문학에서 ‘재현’과 정치에서의 ‘대의’를 모두 폐기시켰고, 그 결과 문학과 정치 모두 이젠 속수무책으로 시장의 손에 놓이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런 뜻에서 이 교수는 민족주의(리얼리즘)와 자유주의(모더니즘)의 주류적 경향 대신 ‘문학주의’가 대두했던 90년대 이후를 ‘욕망의 시대’라고 표현했다.

진태원 교수
진태원 교수
진태원 교수
유행 편승한 이론 수용 문제
사회갈등 풀 새 담론 나와야

이 밖에도 정병욱 고려대 인문한국(HK) 교수는 포스트 담론과 민중사의 관계를, 김정한 고려대 인문한국 교수는 포스트 담론이 가져온 마르크스주의의 위기와 해체에 대해, 안준범 성균관대 교수는 포스트 담론이 역사학에 미친 영향 등을 분석했다. 이번 심포지엄을 주도한 진태원 고려대 인문한국 교수는 ‘포스트 담론이라는 유령’ 발표를 통해 서구의 ‘최신 유행’ 이론을 수입해 국내에서 이익을 보려 했던 연구자들의 태도 등 포스트 담론 수용을 둘러싼 제반 문제들을 지적했다.

종합토론 시간에는 <창작과 비평> <실천문학> <역사비평> <진보평론> <사회와 철학> <자음과 모음> 등 인문·사회과학·문학 등의 분야에서 우리 사회 진보지식계를 대표하는 다양한 잡지의 편집위원들이 토론에 나섰다. 포스트 담론 점검을 계기로 삼아 현재 한국 사회의 지식 지형도를 종합적으로 점검해보자는 취지에서다. 진태원 교수는 “이번 심포지엄을 계기로 한국 사회의 갈등과 모순을 진단하고 더 나은 민주주의를 모색하기 위한 새로운 담론이 활발히 제기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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