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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알바 생존비책 11계명, 쉿!

등록 2012-07-06 20:13

알바에게 주는 지침-세상을 따뜻하게 사는 한 가지 방법
이남석 지음/평사리·1만3000원
‘알바’를 ‘아르바이트’(arbeit: 독일어로 노동을 뜻한다)로 알고 있었다고? 고정된 수입의 본업이 있는 사람이 짬을 내어 하는 부업이 아니냐고? 혈기 들끓는 젊은 시절에 노동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귀한 체험이 아니냐고?

그렇게 생각했다면 당신은 우리 시대의 실상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순진한 사람이다. 아니면 잔혹한 현실을 외면하고 싶어 순진한 척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과거 노예나 노동자란 말이 그랬듯, 알바라는 말은 우리 시대 착취의 대명사다. 게다가 알바들이 대부분 청소년·청년 세대라는 점에서 알바는 세대 문제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풍자문학의 거장인 아일랜드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는 <하인들에게 주는 지침>이란 책을 썼다. 당시 하인들이 ‘주인님’의 눈밖에 나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몰래 주인님을 속이고 골탕먹이는지, 생활 속에 녹아 있는 하인들만의 ‘기술’을 낱낱이 밝혀 쓴 책이다. 주인님들이 이 책을 본다면 고약한 하인들의 수법을 꿰뚫어보는 계기가 될지 모른다. 그러나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은 착취구조의 맨 밑바닥에서 힘겹게 사는 하인들에겐, 이 책만큼 훌륭한 처세서가 없다. 고된 삶을 조금이나마 이겨내도록 해주는 비법을 전수해주기 때문이다.

청년 세대 문제에 관심이 많은 정치학자 이남석(성공회대 강사)씨가 쓴 <알바에게 주는 지침>은 <하인들에게 주는 지침>의 풍자적 형식을 노골적으로 계승한다. 지은이는 전단지 알바, 패스트푸드점 알바, 주유소 알바, 편의점 알바, 유흥업소 알바, 과외 알바 등 우리 사회 대표적인 알바들의 생생한 현실 속으로 들어가 그들에게 ‘생계밀착형’ 비법을 전수한다. 여기에 ‘단결’이니 ‘저항’이니 하는 거창한 수식어는 필요치 않다. 지은이가 전하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자기 몫을 빼앗기지 말고, 빼앗기면 반드시 되찾으라.”

그러나 우리 사회 착취구조의 맨 밑바닥을 차지하는 알바들에게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일 리가 없다. 따라서 지은이의 지침은 구체적이다. 전단지 알바를 하다가 알바비를 뜯긴 초등학생에겐 “전단지 알바 자체가 불법이니까 친절하게 경찰에 신고해주라”고 말하고, 산업재해를 외면하는 못된 주인을 만난 배달 알바에겐 “배달 그릇을 일부러 회수하지 않는 등 골탕을 먹이라”고 조언하는 식이다. “심한 스트레스는 ‘알바화병’(ABHB)으로 이어지니, 될 수 있으면 욕을 자주 하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충고도 건넨다. 이처럼 풍자적이면서도 위악적인 지은이의 말들은 일본의 신세대 사회혁명가 마쓰모토 하지메가 쓴 책 <가난뱅이의 역습>과도 닮았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약한 위치에 처한 사람들이 어떻게 현실적으로 제 몫을 찾고 반항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식의 접근이 가능한 것은 지은이가 그만큼 이 시대 알바들이 살아가는 현실을 깊고도 생생하게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 2만원을 벌기 위해 전단지를 붙이는 알바를 하는 초등학생이 전단지 10장이나 20장 정도를 버리거나 아파트 경비 아저씨한테 빼앗겼다고 알바비를 받지 못하는 현실, 오갈 곳 없는 청소년들이 주로 몰리는 주유소 알바가 ‘정산이 안 맞는다’며 ‘빵꾸’를 자기 돈으로 메꾸길 강요당하는 현실…. 이런 현실에서 알바는 교과서적인 정의로 통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알바는) 정의하기 불가능할 만큼 다양한 직업 영역과 다양한 변종의 형태로 현실에서 직업적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지은이는 오늘날 알바가 ‘착취’와 ‘세대’의 문제를 드러내어주는 첨예한 문제라고 본다. 알바는 “나이 든 세대가 단순·반복 노동을 하는 젊은 세대를 착취하는 자본주의 착취 구조의 완결판”이란 것이다. 청년 세대들은 경제적·사회적·이데올로기적으로 알바를 하지 않을 수 없도록 내몰리고 있고, 알바는 대기업과 같은 상위 포식자들이 영세 중소상인이나 가맹 체인점주를 뜯어먹는 다단계 착취구조의 가장 아래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또 이런 구조가 지속된다면 모든 청년 세대들이 평생을 알바로서 착취당할 것이라 우려한다.

지은이는 “알바는 사회적으로는 전능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무능”이라고 말한다. 산업자본주의 시절에 사람들은 이른바 노동계급 사람들이 ‘기계를 멈춰 역사를 열길’ 바랐다. 그러나 오늘날 자본주의 세계에서 그 정도의 파괴력을 실제로 행사할 수 있는 존재는 노동계급보다 차라리 알바다. 다만 먹고 살기 위해 알바를 그칠 수 없는 알바들은 현실적으로 아무런 힘을 갖지 못한다. 최저시급을 오가는 부당한 대우와 인간적인 모멸 앞에서도 그에 대처할 별다른 도리가 없다. 알바비를 철저히 받아내고, 떼어먹은 주인을 신고하고, 부당한 대우에는 은밀한 복수를 돌려주는 등 “알바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천천히 알게 해주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싸움의 지침들이 필요한 이유다.

그렇다고 지은이가 단지 실용적으로 써먹을 ‘기술’들만 전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은이는 알바의 어원을 ‘아르바이트’(arbeit)가 아닌 ‘얼비트’(albeit, ‘비록 ~이긴 하지만’이란 뜻)로 이해하라며, 더 높은 내공을 쌓을 수 있는 ‘심법’도 전수한다. “내가 비록 지금은 알바이지만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을 명심하라고 그는 말한다. 오직 옳고 그른 것에 대해 말하고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나서서 싸울 때에만, 우리를 평생 동안 옭아매려고 하는 지긋지긋한 ‘알바의 사슬’을 끊어낼 수 있다는 메시지다. 이 책은 이와 함께 사회적인 해결책도 제시한다. 대기업·대학·국가 등 상위 포식자들이 앞장서서 가맹업주의 이익을 보전해주고 알바비를 대폭 높이거나, 청년 세대들이 지출하는 등록금이나 생활비 같은 사회적 비용을 대폭 낮추는 획기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 사회에는 그 어떤 미래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그의 경고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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