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인문학자’ 주영하 한중연 교수
‘음식 인문학자’ 주영하 한중연 교수
전통음식 요리법 넘쳐나는데
고문헌 사료연구·번역 등한시
민족주의·상업적 접근이 주류
음식학 확립, 긴박하고 중요
전통음식 요리법 넘쳐나는데
고문헌 사료연구·번역 등한시
민족주의·상업적 접근이 주류
음식학 확립, 긴박하고 중요
드라마 <대장금>이 크게 인기를 끈 뒤 전통 음식, 특히 궁중음식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었다. 여기에 ‘한류’ 열풍까지 겹치면서 ‘한식 세계화’가 화두로 떠올랐다. 대통령 부인까지 나서서 자기 이름을 걸고 여기저기 한식 사업들을 벌였을 정도다.
그런데 과연 ‘세계화’하겠다는 한식의 정체는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이 우리의 전통 음식인지 확실히 말할 수 있는가?
지난 11일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은 ‘한식 세계화를 위한 궁중음식 고문헌 심포지엄’을 열었다. ‘조선왕조 궁중음식 고문헌 연구단’이 지난 여섯 달 동안 관련 문헌자료들을 연구해온 성과를 공유하는 자리였다.
특히 이번 심포지엄은 인문학자들이 음식에 대해 본격적으로 진중한 사료 연구에 개입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그동안 전통 음식에 대해, ‘조선의 왕들은 어떤 음식을 먹었을까’와 같은 일차원적 호기심이나 ‘어떤 궁중음식을 세계에 내다 팔 수 있을까’와 같은 민족주의적·상업주의적 접근이 주류를 이뤄온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연구책임자인 주영하(50·사진) 한중연 교수는 국내에 흔치 않은 ‘음식인문학자’다. 역사학과 문화인류학을 전공한 주 교수는 그동안 <자폰, 찬폰, 짬뽕> <음식전쟁 문화전쟁> 등의 저술로 음식문화에 대한 독특한 통찰을 보여왔으며, 지난해에는 아예 음식과 인문학의 결합을 본격적으로 주창한 <음식인문학>이란 책을 펴내기도 했다.
지난 16일 경기도 판교 한중연 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일곱 달의 짧은 연구기간 등 여러 한계도 있었지만, 이번 연구단 작업으로 그동안 부족했던 궁중음식에 대한 인문학 연구의 기초를 닦게 됐다”고 평가했다. 그동안 농촌진흥청을 비롯한 국가기관과 단체에서 <농서> 등 사료에 대한 연구·번역 작업이 없지는 않았지만, 이번 연구를 통해 궁중음식과 관련해서는 어떤 사료를 대상으로 어떤 연구를 해야 할지 그 기틀을 좀더 확실히 잡을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주 교수가 볼 때 오늘날 음식에 대한 관심은 과도할 정도로 불어났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음식 사료 연구와 한글 번역 작업 등이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 한다. 종합적이고 성찰적인 연구 없이 ‘음식 복원’ 등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옛날 문헌을 인용해 19세기에 먹었던 전통 김치에 대한 레시피가 활자화되어 돌아다닙니다. 그런데 막상 내용을 들여다보면, 김치에 쓰이는 배추의 종류가 다르다는 사실을 도외시하거나, 조리법을 오늘날에 맞춰서 풀이했다든가 하는 오류가 많습니다.”
이를 바로잡으려면, 제도권 안에 있는 인문·사회과학자들이 음식 연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필요가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조선왕조 궁중음식의 경우, 크게 세 종류의 사료를 주요 연구 대상으로 꼽을 수 있다고 한다. 하나는 궁중의 잔치인 진연·진찬 등에 대한 정보를 담은 의궤(왕실기록문서)다. 주로 17세기부터 19세기 말 고종 때까지 사료를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이에 대한 대강의 연구는 나와 있지만, 음식에 대한 부분을 따로 뽑아내어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것.
두번째는 고종 때부터 1920년대까지 이어지는 사료로, 각종 궁중 연회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 ‘발기’(發記)다. 이 음식발기는 왕실 연회에 누가 참석했는지, 누구에게 어떤 음식을 제공했는지 등이 적혀 있어 당시 생활상뿐 아니라 여러가지 ‘스토리’를 만드는 데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태상지> 등 제사나 예법 등을 설명하는 여러 자료들 속에서도 음식 관련 부분을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문제는 이 사료들이 대부분 조선 후기 이후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왕과 관련된 일상을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는 기초 자료인 <승정원일기>도 조선 전기 자료들은 소실되고 없다. 더 앞선 고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고려도경>이나 이색의 문집 등을 연구 자료로 삼을 수 있는 정도라 한다. 이렇게 사료가 많지 않기 때문에 한글 번역과 데이터베이스화 작업은 더욱 절실한 셈이다.
사실 주 교수는 ‘한식 세계화’ 등의 논의에 부정적인 편이다. 민족주의적 태도로 전통 음식을 섣불리 단정하고, 이를 일방적으로 다른 문화권에 들이미는 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주 교수가 더 급박하고 중요하다고 여기는 일은 ‘음식학’, 곧 ‘푸드 스터디’를 확립하는 것이다. “미국 뉴욕대에 석사 과정으로 만들어져 있는 ‘푸드 스터디’ 내용을 참조할 수 있습니다. 음식의 역사에 대한 연구, 식품·조리학적 관점에서 ‘공공영양’에 관심을 둔 연구,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음식에서 나타나는 다문화적 현상에 대한 연구 등 3가지 방향에서 음식학 연구가 이뤄지죠.”
주 교수는 “인간은 문화를 통해서만 ‘먹는다’는 행위에서 동물과 구분이 된다”며 “만약 우리가 음식문화를 제대로 알기보다 음식 자체에만 매달리게 된다면, 우리는 인간에서 동물로 나아가고 있는 셈”이라고 했다. 음식인문학을 구축하려는 노력이, 단지 어떤 취미나 취향의 문제를 넘어 우리에게 꼭 필요한 작업이란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글·사진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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