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심 교수 ‘…한인 간호여성’
당시 독일 정부기관 문서 연구로
간호 파견 차관담보설 허구 밝혀
“박정희 성과 치장 위해 왜곡한 것”
그들은 자기 길 선택한 ‘개척자’ 한국의 고통스러웠던 근대화와 경제발전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존재가 있다. 1960~1970년 사이에 독일로 대규모 이주노동을 떠났던 간호여성과 광부들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이들을 ‘한국 경제의 근대화를 위해 희생된 고마운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인식이 컸다. 여기에는 ‘차관담보설’, 곧 미국의 무상원조가 끊긴 당시에 그들의 ‘파독’이 독일로부터 차관을 제공받는 조건이었다는 담론이 큰 구실을 했다. 이를 통해 ‘소수의 국민들이 시체를 닦는 등 힘겨운 이주노동을 해야 하는 희생을 치렀지만, 그 덕택에 나라 전체가 빛나는 경제 번영을 이루게 됐다’는 식의 신화가 만들어진 것이다. 또 그 신화의 주인공은 결국 독일로 ‘간’ 사람들보다는 ‘보낸’ 사람들이 되기 일쑤였다. 서양사학자인 나혜심 성균관대 문과대학 연구교수가 최근 펴낸 <독일로 간 한인 간호여성>(산과글)은 파독 간호여성의 역사를 상세히 서술한, 그동안 찾아보기 어려웠던 본격적인 연구서다. 독일에서 공부하던 시절 그들의 삶과 역사에 관심을 품게 됐다는 지은이는 <한겨레>와의 전자우편 인터뷰에서 “‘한국 경제를 위하여 기초가 될 돈을 제공했다’는 말과는 대비되는 그분들의 표정 속에서 그 과거를 제대로 들여다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이 책에서 두드러지는 부분은, 그동안 막연히 사실로 받아들여졌던 ‘차관담보설’이 허구라는 것을 밝혀낸 것이다. 차관담보설의 허구성 자체는 이미 2008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조사에서도 드러난 바 있다. 다만 학술연구서로서 이 책은 파독 이주의 배경과 성격, 한국과 독일의 상황 등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를 통해 이를 더욱 뚜렷하게 밝혀내고 있다. 특히 독일 코블렌츠에 있는 연방사료보관소에 있는 독일 정부 기관들의 문서를 활용하는 등 새로운 사료를 통해 연구의 객관성을 갖추려 했다. 한국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독일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박정희 정권의 차관 관련 교섭에 참여했던 백영훈씨는 ‘광부 500명과 간호사 2000명의 인력 제공이 차관에 대한 지급보증이 됐다’고 말했고, 이 언급은 차관담보설의 근원지로 꼽힌다. 그러나 지은이는 이에 대해 “1950년대 말과 1970년대 중반까지 독일의 노동청과 관련된 기관들의 문서에 이런 대규모 인구 이동과 관련된 체류허가나 고용허가 등에 관해 어떤 문건도 볼 수 없다”고 말한다. 또 이미 1950년대부터 한인 여성들은 독일에 간호인력으로 진출했었으며, 그 어느 때건 노동문제를 관할하는 두 나라 정부 사이의 협정은 맺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고 지은이가 당시 두 나라의 필요에 의해 큰 규모의 이주노동이 이뤄졌다는 사실이나 그렇게 독일에 갔던 한인들이 경제발전에 큰 구실을 했다는 사실을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전후 한국이 여성 노동력의 수출을 원했다는 점, 당시 ‘사회국가’에 목표를 둔 독일이 사회권을 주장할 수 없는 이주노동 인력을 절실하게 필요로 했다는 점, 미국이 주도하는 냉전체제가 한국과 독일 사이의 개발원조와 인력 유출 등에 영향을 끼쳤다는 점 등 국제관계까지 고려해 독일 이주의 역사와 배경을 종합적으로 밝힌다. 또 독일에 간 간호여성 자신들의 목소리를 통해 실질적으로 어떤 일을 했는지, 어떤 어려운 과정을 통해 현지에 정착했는지 등을 추적했다. 결국 지은이가 강조하는 것은 독일로 간 한인 간호여성들이 정권의 경제개발 의지에 무력하게 이용당한 ‘희생자’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자신의 길을 선택한 ‘개척자’였다는 사실이다. 그는 “여성 간호인력의 파견은 어느 한 개인의 교섭력에 의해서, 더구나 차관에 대한 담보물로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며 “그런 왜곡과 오해는 그 일을 개인적인 성과나 정권의 성과로 치장하려는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미 그 허구성이 지적됐지만, 차관담보설은 박정희 정권의 ‘경제성장 신화’와 맞물려 여전히 재생산·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지은이는 이런 현상이 ‘박정희 정권이 정치적으로는 사람들의 삶을 힘들게 했지만 그 경제적 성과가 컸으니 그 정권의 의미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논리를 근거로 삼고 있다고 말한다. 곧 그들의 ‘희생’을 강조하는 것은 그들의 경제적 ‘공’에 대해 찬탄하는 것과 다름없으며, 이는 경제적 성과 속에서 박정희 정권의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와 연결된다는 것이다. 파독 한인 간호여성에 대한 역사학계의 무관심, 빈약한 자료와 연구성과 등은 그런 오해와 왜곡이 낳은 결과물인 셈이다. 지은이는 “한국 쪽의 공적인 자료를 구하기 힘들고, 독일에 계신 분들이나 한국으로 돌아오신 분들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도 전혀 없는 상황”이라며 “하루빨리 인력과 자원을 동원해서 본격적인 연구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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