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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우주의 자연적 창조성이 곧 신성”

등록 2012-08-10 20:42

과학자 스튜어트 카우프먼 미국 버몬트대 교수
과학자 스튜어트 카우프먼 미국 버몬트대 교수
초자연적 신의 존재 믿지 않지만
자연법칙 설명한 환원주의 시각
생명이나 가치의 실재 설명 한계
“우주는 스스로 부단한 창조활동”

<다시 만들어진 신>
스튜어트 카우프만, 김명남 옮김/사이언스북스·2만5000원

<다시 만들어진 신> 스튜어트 카우프만, 김명남 옮김/사이언스북스·2만5000원
<다시 만들어진 신> 스튜어트 카우프만, 김명남 옮김/사이언스북스·2만5000원
과학과 신은 과연 대립하는 존재인가?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생명의 기원과 관련해 교과서에 실릴 내용을 두고 진화론과 창조론이 서로 격렬하게 대립하는 모양새를 보면, 과학과 신은 결코 나란히 설 수 없는 존재인 듯하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과학 없는 세상’과 ‘신 없는 세상’ 두 가지일 뿐일까?

‘복잡계 이론’의 대가로 꼽히는 과학자 스튜어트 카우프먼(사진) 미국 버몬트대 교수는 자신의 새 책 <다시 만들어진 신>에서 과학에 기반한 새로운 세계관으로 신을 다시 만들어내자고 제안한다. 흔히 ‘과학이 신을 죽였다’고 생각하지만, 지은이는 신을 무력화시키고 우리가 사는 이 세계로부터 신성과 영성, 그로부터 나오는 의미와 가치, 윤리, 도덕 등을 함께 앗아간 것은 과학 자체가 아니라 모든 것을 자연법칙으로만 설명하려드는 ‘환원주의’라고 지목한다. 과학자로서 당연히 초자연적인 창조주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않지만, 인간을 포함한 만물이 자연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입자들로 이뤄진 존재라는 이론도 배격하는 것이다.

“우리가 우주 속 모든 입자들의 위치와 속도를 알고 우리에게 충분한 지능이 있다면, 우주의 미래와 과거를 전부 다 계산할 수 있을 것”이라는 프랑스 수학자 라플라스의 말처럼, 갈릴레오와 뉴턴 이래 현대 과학은 ‘앞으로 펼쳐질 일의 규칙성을 사전에 압축적으로 기술하는’ 환원주의에 집착해왔다. 시공간과 물질의 상호작용(상대성 이론), 물질을 이루는 기본 입자에 대한 탐구(양자역학, 끈이론) 등 자연법칙의 발견을 중심에 놓는 물리학이 현대 과학을 호령하는 것도 마찬가지의 맥락이다.

그러나 지은이는 환원주의가 발견해내려 하는 자연법칙은 오직 ‘사건’만을 설명해줄 수 있을 뿐 생명, 행위 주체성, 가치, 행동 등 우주의 실재를 말해주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심장의 기능을 예로 들어보자. 환원주의를 따르는 물리학자가 심장의 모든 속성을 연역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그는 혈액 펌프질이야말로 심장의 존재를 설명하는 적절한 인과적 속성임을 집어낼 수는 없다. 곧 심장이 왜 존재하는지는 우리에게 말해주지 못하는 것이다.

지은이는 “생물학과 생물의 진화는 물리학으로 환원되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심장이 왜 존재하는지 설명하려면 혈액 펌프질을 하기 위해 심장이 생겨난 진화적 구조와 조직화된 작동 과정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문제는 ‘자연 선택’과 ‘자기 조직화’에 기반해 생명의 기원과 진화 과정을 따져보는 것과 연관된다. 다양한 과학 이론들을 검토한 지은이는 “생명은 우주 본연의 창조성이 자연적으로, 창발적으로 표현된 결과”라고 역설한다. 창조주가 없이도 우주는 스스로 부단한 창조성과 창발성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이는 무법적이고 급진적이어서 어떤 자연법칙으로도 시뮬레이션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윈주의에서 말하는 ‘전적응’, 곧 어떤 기능을 위해 만들어진 구조가 갑자기 다른 기능을 위해 사용되는 모습은 그런 창조성의 대표적인 근거다. 원시 어류에게는 숨을 쉬기 위한 허파가 있었으나, 이는 나중에 공기를 머금어 수심을 상하로 이동할 수 있게 하는 부레로 진화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전적응을 사후적으로만 해설할 수 있을 뿐이다. 곧 우주는 비반복적이고, 자연은 예측불가능한 창발성과 창조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환원주의를 넘어선 지은이는 과학이 신성을 재발명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부단하게 창조적 방식으로 진화하는 자연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길잡이로 삼을 것인가? 이성이 혼자만으로 충분한 길잡이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판명됐다. 따라서 지은이는 “우리가 선택한 궁극의 가치들을 길잡이 삼아 수수께끼 속에 살아가려면, 결국 우리는 신성을 재발명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신성이 초자연적인 창조주를 가리키는 것은 물론 아니다. 놀라운 우주의 창조성 자체를 자연적인 신으로 삼아보자는 제안이다. 이렇게 다시 만들어진 신은 ‘총체적 인간성’에 기반하고 다양한 문명들이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기에, ‘지구 윤리’의 기틀이 될 것이라는 것이 지은이의 기대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사진 사이언스북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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