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독일 음악가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
철학자들 “통일성 강제” 비난에
바디우, 음악서 ‘불확실성’ 발굴
“총체성 분리된 순수예술” 재해석
바디우, 음악서 ‘불확실성’ 발굴
“총체성 분리된 순수예술” 재해석
<바그너는 위험한가>
알랭 바디우 지음, 슬라보이 지제크 발문, 김성호 옮김/북인더갭·1만6500원
19세기 독일을 대표하는 음악가로 꼽히는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사진)는 서구의 수많은 철학자와 예술가에게 줄곧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었다. 그 주된 내용은 그의 음악이 독일 민족 신화에 대한 숭배와 고통에 대한 감상적 극화 등으로 파시즘의 원형을 보여준다는 비판과 공격이었다. 프랑스 철학자 필리프 라쿠라바르트는 <무지카 픽타>에서 “원(原)파시즘적인 정치의 미학화”라는 말로 바그너를 비판하기도 했다.
프랑스의 급진주의 철학자 알랭 바디우(75)는 <바그너는 위험한가>라는 자신의 책에서 기존 비판들과 다른 맥락에서 바그너를 재평가하자고 주장한다. <비미학> 등을 통해 진리를 만들어내는 절차로서 예술과 철학의 관계 등을 따져물어온 지은이는 바그너 재평가를 통해 현대 예술, 특히 음악이 오늘날 철학·이데올로기에서 차지하는 구실에 대한 독특한 사유를 펼쳐낸다.
바디우는 먼저 니체·아도르노 등 기존 철학자들이 바그너를 비난한 내용들을 두루 살핀다. 특히 아도르노가 <부정변증법>에서 제시한 예술관이 비판에 주된 근거를 제공한다고 본다. 아도르노는 차이를 무시하고 ‘일자’(the one)로 모든 것을 환원하는 ‘동일성’ 논리를 비판했다. 곧 ‘아우슈비츠’ 같은 고통의 체험을 화해나 구원과 같은 어떤 ‘개념’으로 섣불리 연결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도르노를 비롯한 비난자들에게 바그너는 “대중에게 통일성을 강제하고 타자성을 녹여버린” 동일성 논리에 빠진 음악가다. ‘무한선율’ 등 인위적 통일성을 만들어낸 그의 음악 이론과 독일 민족 신화 집착에는 동일성에 대한 강요가 있다는 것이다. 음악을 서사에 종속시키고 기술공학적 장치들을 동원해, ‘순수예술 종결자로서 총체화와 신화화, 기술공학적 효과에 의존하는 대중예술의 시작점이 됐다’는 비난도 따른다.
바디우는 이런 비난들을 부정하지 않는다. 대신에, “바그너 스스로도 몰랐던 두 번째 바그너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바디우는 우리 시대에 순수예술이 부활할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그것은) 총체성의 미학화로서의 순수예술이 아니라 오로지 총체성에서 분리되는 한에서의 순수예술로서 새로운 유형의 위대함”을 말한다. 마치 영웅화 없는 영웅주의, 전쟁 패러다임에서 빠져나온 위대함같이 동일성 논리에 빠져들지 않은 새로운 위대함을 발견해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런 관점에 따라 바디우는 바그너 음악 속의 역설들을 새롭게 찾아낸다. 바그너 오페라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에서 시인이자 음악가인 주인공 작스는 자신의 예술적 권위와 사랑하는 여성에 대한 우월한 지위를 포기하기로 결심한다. 지은이는 여기서 작스의 결심이 대본이나 서사 등 어떤 동일성 전개에 근거를 둔 필연적인 변화가 아니라, 음악 자체를 따라가며 만들어진 예측 불가능한 변화임을 주목한다. 이는 동일성 논리에 저항하는 바그너 음악의 한 성격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경우 이졸데를 기다리는 트리스탄의 긴 기다림을 표현하긴 했지만, 결국 이졸데가 찾아오게 만들어 ‘구원’이라는 궁극적 피날레를 형상화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대해서도 지은이는 이졸데의 도착에 트리스탄이 할 수 있는 일은 죽는 것밖에 없다는 점을 들어, 기다림의 해결이 아닌 기다림 자체를 보여준다고 반박한다. 곧 목적론적인 시간 구성만 있다는 아도르노의 비판과 달리, 바그너 음악 속에서 고통의 경험과 분열된 주체, 불확실성에 따른 변화 등을 찾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지은이는 “바그너에겐 그 뒤에 포기된 어떤 새로운 스타일의 발명 같은 것이 있었다”며, “(그는) 여전히 미래의 음악을 대표한다”고 말한다. 그의 모든 것을 파시즘의 원조로 비난해 묻어버릴 것이 아니라, 총체성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 했던 음악적 시도 등을 되살려 순수예술의 새로운 시작에 기틀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불가능 딱지가 붙은 가능성을 새롭게 발견해낸다는 차원에서, 바디우의 바그너 연구는 또다른 급진주의 정치적 기획의 연장선 위에 놓여 있다. 사상적 동지인 슬라보이 지제크 역시 책 뒤에 붙은 독립적인 발문에서 바그너 음악을 주체와 주인의 관계로 풀이한 독특한 ‘바그너론’을 펼치고 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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