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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합작 위한 균등이념, 헌법에 ‘경제 민주화’ 불어넣다

등록 2012-08-21 20:08수정 2012-08-21 23:25

<대한민국 헌법의 탄생-한국 헌정사, 만민공동회에서 제헌까지>(창비 펴냄)
<대한민국 헌법의 탄생-한국 헌정사, 만민공동회에서 제헌까지>(창비 펴냄)
서희경 교수 ‘대한민국 헌법의 탄생’
좌파 주장 수용한 조소앙 삼균주의
건국 헌법에 사민주의적 요소 반영
민주공화주의는 만민공동회에 뿌리
“헌법은 사람들이 맺은 사회계약…
한국의 역사적 맥락위에 이해해야”

헌법은 가장 높은 규범이다. 경제민주화 논쟁부터 민주주의·공화주의의 의미와 국가정체성에 대한 입장 차이, 심지어 수도를 옮기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 등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다양한 정치적 삶에 지표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헌법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오랜 권위주의 독재 시기가 헌법 자체를 성찰할 충분한 기회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치학자인 서희경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교수가 최근 출간한 <대한민국 헌법의 탄생-한국 헌정사, 만민공동회에서 제헌까지>(창비 펴냄)는 법학·정치학·역사학 등의 학제간 연구로 우리나라 헌법의 탄생과 발전을 입체적으로 조명한, 보기 드문 ‘헌정사 연구’를 담은 책이다. <한겨레>와의 전화·서면 인터뷰에서 서 교수는 “헌법은 법 이전에 ‘사회계약’이므로, 한 사회나 국가가 집단적으로 만들어가는 정치적 지혜의 축적 과정을 종합적으로 읽는 ‘헌정사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1987년 민주화 이전에 오랫동안 지속된 권위주의 시대가 그동안 헌법 연구에 큰 제약을 주었다고 지적했다. 헌법이 제 위치를 찾지 못했고, 별다른 무게감을 지니지 못해, 헌법 연구를 주변적인 것으로 치부하거나 단순 법리만 논의하는 경향이 강했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법학은 법조문에, 정치학은 정치과정 또는 권력투쟁에, 사상연구는 헌법이념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었다”며 “이들을 융합해야 헌법의 생생한 의미를 포착할 수 있다”고 했다.

조선말 수차례 열린 만민공동회 가운데 1898년 가장 큰 규모로 열렸던 관민공동회의 모습을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위)과 당시 모습을 묘사한 그림. 만민공동회는 민주공화주의를 뼈대로 삼은 한국 헌법이 기원한 정치적 사건으로도 평가된다.  정성길, 독립신문강독회 제공
조선말 수차례 열린 만민공동회 가운데 1898년 가장 큰 규모로 열렸던 관민공동회의 모습을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위)과 당시 모습을 묘사한 그림. 만민공동회는 민주공화주의를 뼈대로 삼은 한국 헌법이 기원한 정치적 사건으로도 평가된다. 정성길, 독립신문강독회 제공
책에서 그는 구한말 ‘만민공동회’ 등 한국 헌법의 과거 자생적 뿌리를 밝히고, 그것이 어느 한 세력의 독점적 주도가 아닌 장기간의 집단적 의사의 결과물이란 점을 강조한다. 15년여 전까지만 해도 국내 헌법 연구는 미군 점령기, 독일 바이마르 헌법의 영향 등을 강조하거나 건국헌법 기초와 현실화에 관여한 법률전문가 유진오의 역할,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의지 등 특정 개인과 세력에 초점을 맞춘 연구가 많았다고 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헌법에 대한 연구도 있었지만, 독립운동사의 관점에서 주로 연구됐다는 것. 이와 달리 서 교수는 1898년 ‘만민공동회’, 1919년 ‘3·1운동’, 3·1운동에 영향 받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이란 세 가지 정치적 사건을 한국 헌법의 역사적 진화를 보여주는 흐름으로 제시한다. 특히 “만민공동회에서 광범위한 대중적 논의와 정치운동을 수렴한 결과물인 ‘헌의6조’를 한국 근대헌법의 기원으로 본다”고 했다. 비록 전제황권을 수용한 ‘군민공치’(왕과 백성을 대표한 의회가 함께 나랏일을 맡아보는 것)를 말했지만, 민주공화주의의 기원을 엿볼 수 있다는 견해다. 반제국주의운동이었던 3·1운동 또한 군주제를 부정하고 민주공화제를 지지한 근대 정치·사회혁명의 의미를 지니며, 3·1운동의 결과물인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헌법은 모든 한국 근현대 헌법의 ‘원형’이라고 서 교수는 주장한다.

특히 서 교수는 그동안 많이 다루지 않았던 독립운동가 조소앙(1887~1958)의 ‘삼균주의’를 중요하게 다뤘다. “균등이념은 한국 헌법 정신을 특징짓는 하나의 핵심 원리인데, 해방 뒤 민족통합을 위한 좌우합작 이념으로 조소앙에 의해 체계화됐다”는 해석이다. 균등이념의 씨앗은 20년대부터 좌우로 대립했던 한국 독립운동의 정치적 환경이었다고 한다. 곧 공산주의 진영의 계급적 요구를 광범위하게 포섭하려 했던 민족주의 진영의 노력이 바로 균등이념이었고, 이것은 장기적인 역사의 결과물로서 건국헌법에도 깊은 영향을 줬다는 논지다.

해방 뒤인 1946~48년 국내에서는 다양한 정치세력들이 헌법이념과 국가체제 구상, 정치경제적 비전 등을 제시했다. 이들의 정치적 입장은 엇갈렸으나 경제 원칙에서 국유화와 공유를 강조하고 공공복리를 위해 개인 기본권을 제한하는 등 균등이념에 근거한 내용들은 대체로 공통적이었다고 그는 분석한다. 우파의 <한국헌법>조차도 토지분배와 국영 대외무역 등 사회민주주의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었다는 것. 서 교수는 “서구의 고전적인 민주공화주의와는 다른, 한국의 역사적 투쟁과 정치적 성찰 등 한국의 헌법을 만들어낸 역사적 맥락들을 잘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헌법은 어떤 천재의 작품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오랜 세월 동안 경험하며 만들어가는 지혜입니다. 요즘 들어 정치사회적 문제에 대한 최종적 판단을 헌법에 묻는 일이 잦은데, 헌법을 이렇게 (역사적으로) 성찰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그는 “중요한 것은 법 규정 자체가 아니라, 실제 삶에서 실천해보고 부족한 것은 보완해나갈 수 있는 인간의 집단적 행위”라고 조언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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