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얼굴을 가린 에릭 홉스봄. 한겨레 자료사진.
진보적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 타계
평생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해
19세기~20세기 세계사 통찰
100년 지성사에 독보적 발자취
평생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해
19세기~20세기 세계사 통찰
100년 지성사에 독보적 발자취
“시대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더라도 무기를 내려놓지 말자. 사회 불의에 여전히 맞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미완의 시대>)
<혁명의 시대> 같은 저작들로 19~20세기 세계사를 통찰했던 역사학자이자 한평생 마르크스주의 이상을 놓지 않았던 진보적 지식인 에릭 홉스봄(사진)이 지난 1일 폐렴으로 95년의 삶을 마쳤다. 고령에 병마와 싸우면서도 끊임없이 “자유와 정의라는 이상 없이 인류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라고 물었던 노학자는 지난해 펴낸 마지막 책 제목도 <세상을 바꾸는 법>(How to Change the World)이라고 붙였다.
1917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영국 국적의 유대인 아버지와 오스트리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홉스봄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러시아혁명, 소련 해체를 겪으며 ‘극단의 세기’를 온몸으로 살았다. 10대 초반에 부모를 모두 여읜 홉스봄은 독일 베를린 친척집에서 살다 1933년 히틀러가 집권한 뒤 영국으로 건너갔다. 케임브리지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홉스봄은 1947년부터 런던대에서 사회경제사를 가르쳤으며, 1982년 은퇴한 뒤에는 미국의 스탠퍼드대 등에서 강의했다.
<혁명의 시대>(1962), <자본의 시대>(1975), <제국의 시대>(1987)로 이뤄진 3부작은 필생의 연구를 집적한 노작이자 ‘현대의 고전’으로 꼽힌다. 홉스봄은 이 시리즈를 통해 근대 자본주의가 형성되는 과정을 ‘장기 19세기’로 보는 관점을 제시했다. <혁명의 시대>는 산업혁명과 프랑스혁명을 이중혁명의 관점에서 분석했으며, <자본의 시대>는 유럽 자본주의가 확장되는 과정을 그려냈다. <제국의 시대>는 대불황을 거치며 정착한 부르주아 자유주의와 식민지 쟁탈전의 모순을 다뤘다. 1994년에 출간한 <극단의 시대>에서는 자신이 살아온 20세기를 ‘장기 19세기’로부터 이어지는 ‘단기 20세기’(1914~1991)란 관점으로 다뤘으며, 2002년에는 개인사를 담은 자서전 <미완의 시대>를 펴냈다.
아울러 그는 근대 민족주의에 대한 뛰어난 통찰을 남긴 학자로도 평가받는다. 저서 <1780년 이후의 민족과 민족주의>, 공저인 <만들어진 전통>은 민족주의 전통을 근대가 만들어낸 산물이라 지적하고 그 역사적 배경을 밝힌 또다른 고전이다.
홉스봄이 20세기 지성사에 독보적인 발자취를 남길 수 있었던 것은 한평생 마르크스주의 이상에 대한 신념을 꺾지 않은 진보적 지식인의 삶을 지켜왔다는 사실에서 비롯한 바 크다. 나치와 히틀러의 부상을 지켜보며 ‘공산주의 말고는 대안이 없다’고 생각했던 그는 1936년 영국 공산당에 가입한 뒤 당이 해체될 때까지 수십년 동안 당적을 유지했다. 소련 붕괴 등 현실 사회주의 체제의 몰락을 지켜보면서도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한 사회참여와 발언을 그치지 않았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홉스봄이 25년 일찍 죽었다면 언론들은 ‘영국의 가장 뛰어난 마르크스주의 역사가’ 정도로 묘사했을지 모르지만, 95살 나이로 세상을 떠난 지금 그는 좌우파를 막론하고 영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역사가이며 국가적·전세계적으로 명성을 누린 극소수의 역사가 가운데 한 명”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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