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인문학연구원의 염정삼 인문한국(HK) 연구교수
서울대 염정삼 교수 ‘묵경 1·2’
텍스트 시대·연구자별 풀이 소개
마지막에 자신의 생각 덧붙여
“후대에도 이어질 수 있는 방법”
텍스트 시대·연구자별 풀이 소개
마지막에 자신의 생각 덧붙여
“후대에도 이어질 수 있는 방법”
‘고전’을 연구·소개하는 방법으로 세가지를 들 수 있다. 텍스트가 이어져온 과정에 파고드는 ‘주해’, 텍스트의 내용을 풀이하는 데 더 큰 목적을 두는 ‘번역·해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전개하는 데 텍스트를 활용하는 ‘재해석’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주해 작업은 오늘날 우리 학계에서 번역·해설이나 재해석에 견줘 찾아보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최근 서울대 인문학연구원의 염정삼(사진) 인문한국(HK) 연구교수가 펴낸 <묵경 1·2>는 동아시아 고전을 이런 전통적인 주해 작업으로 충실하게 풀어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지난달 28일 서울대 인문학연구원에서 만난 염 교수는 자신이 택한 주해 작업에 대해 ‘달걀말이식’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고전을 다루는 방법에는 저마다 장단점이 있는데, 주해 작업은 달걀이 부쳐진 결을 다 볼 수 있는 달걀말이처럼 고전이 전해지고 풀이된 과정 전체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장점을 지닌다는 것이다.
<묵경>은 전국시대 사상가 묵자의 사상을 담은 책 <묵자> 전 53편 중 ‘경’ 상·하, ‘경설’ 상·하, ‘대취’, ‘소취’ 등 6편을 가리킨다. 전국시대부터 진한시대까지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묵가 사상은 유가 사상이 중국 문명의 중심축이 되면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가, 청대 고증학의 발달로 다시 조명을 받았다. 청대 학자 필원이 송대 판본을 계승한 ‘도장본’을 저본으로 삼아 그동안 어지럽게 배열되어 있던 <묵경>의 순서를 바로잡았는데, 이런 작업을 통해 ‘정본’이라 할 만한 <묵경> 텍스트가 만들어졌다. 뒤이어 청대 말기의 학자 손이양은 <묵자간고>를 통해 이전까지 <묵경>과 관련해 이뤄진 모든 논의와 연구를 망라했다고 한다.
염 교수는 “손이양의 <묵자간고>는 <묵경>에 대한 가장 치밀한 주해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며 자신의 주해도 손이양의 연구를 주로 참고했다고 말했다. 오랜 시간을 두고 전해진 고전에는 다양한 판본들이 있기 마련이다. 주해 작업은 그때까지 전해진 판본들을 수집하고, 그 속에 담긴 글자들을 비교해 여러 판본들의 계열과 관계망을 파악하는 ‘텍스트 크리틱(비평)’을 가장 일차적이고 핵심적인 작업으로 삼는다.
학자들은 이를 ‘교감’(校勘)이라 하는데, 염 교수 역시 모본(母本)으로 삼은 <묵경>의 텍스트 밑에 ‘교감’을 붙였다. 예컨대 ‘공(功)은 백성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功, 利民也)란 텍스트가 있다면, 그 밑에 “도장본과 필원본에서는 민(民)이라 했지만, 손이양본에서는 명(名)으로 바꿔놓았다”고 풀이해주는 식이다.
이렇게 텍스트 자체를 제시한 뒤에는 시대별·연구자별로 이 텍스트가 어떻게 풀이되어왔는지를 소개한다. 그 뒤 마지막으로 자신의 생각을 덧붙인다. 이렇게 3단계로 이뤄지는 주해 작업은 고전에 대한 자구풀이만으로는 담을 수 없는, 고전이 전해지고 풀이된 과정 전체를 볼 수 있게 해준다. 물론 “지나치게 텍스트를 숭배한다”는 비판처럼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염 교수는 “고전은 어떤 ‘원형적 진리’를 담고 있어 시대마다 지역마다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었다”며 “주해는 이런 맥락을 탐구하기 때문에 후대에도 이어질 수 있는 연구 방법”이라고 말했다.
주해 텍스트로 <묵경>을 고른 이유는 “1920년대 후스(호적), 량치차오(양계초) 등의 학자가 <묵경>에 천착했던 것처럼 유가 사상에 억눌렸던 중국 전통 사상이 근대에 이르러 다시 살아난 맥락을 살피기 위해서”라고 했다. 흔히 동양 문명은 서양과 달리 수학·논증·논리 등 과학적 전통이 약하다고 하는데, 논리를 바탕에 두고 언어의 문제를 다룬 <묵경>은 중국 고대의 과학적 전통을 재조명할 수 있는 계기를 준다는 것이다.
염 교수가 주해한 <묵경 1·2>는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문명사업단과 한길사가 함께 펴내는 ‘문명 텍스트’ 시리즈의 하나로 출간됐다. ‘문명 텍스트’는 동서양 문명의 전승과 교류를 읽을 수 있는 고전 텍스트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풀이해 소개하는 시리즈다.
글·사진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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