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서울 명륜동 성균관대학교에서 열린 ‘동아시아 한문학, 공동성과 고유성’ 학술회의에 참가한 한국, 중국, 일본의 학자들. 김용태 성균관대 교수는 “중국, 한국, 일본, 베트남 등 동아시아 국가들이 공통적인 연구 대상으로 삼고 있는 한문학은 각각 다른 전통 위에 놓여 있는 학자들이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인 동아시아의 모습을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해준다”고 말했다.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제공
‘동아시아 한문학’ 주제 학술회의
개항 이후 한·중·일의 지식인들
외교관으로 또는 외국여행하며
한문 통해 교류, 네트워크 형성
중국 학자는 ‘문화의 전파’ 주목
일본은 ‘수평적 유통’ 개념 강조 ‘글은 문자가 동일하고 수레는 궤도가 동일하다’(書同文 車同軌)란 말이 있듯, 같은 문자를 바탕 삼는 문화들에서는 뭔가 같은 것을 찾아내기 쉽다. 이런 ‘공동성’은 국가나 민족에 갇히기 쉬운 시야를 넓게 확장해준다. 동아시아와 관련된 담론에서 끊임없이 한자·한문학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근본적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과 문과대학은 23~24일 서울 명륜동 성균관대 국제관에서 ‘동아시아 한문학, 공동성과 고유성’이라는 주제로 학술회의를 열었다. 이번 학술회의는 ‘한문학’을 동아시아적 시각을 수립하기 위한 중요한 경로로 재검토해봤다는 데 의의가 있다. 특히 이번 학술대회에서 김용태 성균관대 교수가 ‘개항 이후 동아시아 한문네트워크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논문은 그동안 많은 이들이 연구해온 중세 한문학이 아닌 19세기 개항 이후 한문학을 가지고 새로운 ‘동아시아 한문학’의 틀을 제시해 눈길을 끈다. 개항 이전 동아시아에서 개인은 자유로이 국경을 오고갈 수 없었다. 동아시아의 상호 소통을 보여주는 자료 역시 ‘연행록’이나 ‘통신사 기록’ 등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김 교수는 개항 뒤 폭발적으로 늘어난 국외 교류를 통해 동아시아 지식인들이 서로 한문으로 소통했던 자취에 주목했다. 개항 이후 ‘한문네트워크’에 대한 연구가 동아시아와 한문학에 대한 새로운 성과를 촉발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다. 개항 이후 한문네트워크 형성에 선구자적 구실을 한 사람은 청나라 외교관으로서 일본·조선의 다양한 지식인들을 만난 기록을 <속회인시>(續懷人詩)라는 시집으로 남겼던 황준헌을 들 수 있다. 황준헌은 이토 히로부미, 김홍집 등 일본·조선의 지식인들과 만났는데, 이에 대한 기록들이 개항 이후 한문네트워크의 존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의 시를 보면 조선 지식인들이 일본과 중국에 대해 지닌 깊은 불신과 당시 일본에 강제병합된 류큐국(오키나와)의 국권회복 운동에 대한 생각 등을 엿볼 수 있다. 김 교수는 “<속회인시>는 황준헌이 한문을 통해 당대 동아시아의 다양한 인물들, 다양한 역사 현장과 다양한 방식으로 맺은 연결고리들을 담고 있어, 개항 이후 ‘한문네트워크’의 존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모두 다섯 차례 국외 여행을 했던 조선 학자 강위 역시 여러 중국·일본의 인사들과 만나 한문필담 등으로 대화를 나누고 기록들을 남겼는데, 동시대인으로서 공유하고 공감하는 정서 등이 묻어난다. 일본에 경도되어 나중엔 일제의 ‘대동아’ 논리에 포섭되기도 했던 김윤식 역시 많은 일본 인사들과의 교류 내용들을 자료로 남겼다. 임오군란의 영향으로 청나라 군인이 조선에 주둔하게 된 것도 한문네트워크 활성화의 단적인 모습이다. 조선에 왔던 장건과 원세개가 그를 맞이한 조선 관료 김창희와 나눈 필담에서 이홍장을 중심으로 하는 ‘양무파’에 대한 불만과 비판을 표출하는 것도 재미있는 사례다. 김 교수는 “아직 개항 후 한문네트워크의 전모를 밝힐 준비는 되지 못한 형편이며, 이번 발표는 연구의 필요성을 환기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 시기 문집자료, 필담자료 등 각국에 흩어져 있을 자료들을 모아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이들을 풀이해 나가는 과정에서 ‘동아시아적 시각’을 확보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밖에도 이번 대회에서는 한문학을 둘러싼 고전적인 관점의 대립도 엿보였다. 중국 지린대학의 선원판 교수는 당나라 시대에 형성된 ‘모란 문화’가 다른 나라, 특히 조선에 끼친 영향에 대해 발표했다. 당나라 때 모란을 주제로 삼는 특색 있는 문화와 심미관이 발달했는데, 조선 후기 학자 남희채가 쓴 <구갑시화>는 특히 여기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한문학이 가진 ‘전파’의 구실에 주목한 풀이다. 반면 사이토 마레시 일본 도쿄대 교수는 한문학의 ‘유통’ 구실에 더 주목했다. 일본 문학에서 등장하는 ‘곽공조’(호토토기스)와 ‘옥갑’(다마쿠시게)이란 말은 각각 두견새와 옥상자를 가리키는 한자어인데, 정작 중국 문화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곧 일방적 영향과 전승에 갇히지 않는 수평적인 작용으로 ‘유통’의 개념을 더 강조한 것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외교관으로 또는 외국여행하며
한문 통해 교류, 네트워크 형성
중국 학자는 ‘문화의 전파’ 주목
일본은 ‘수평적 유통’ 개념 강조 ‘글은 문자가 동일하고 수레는 궤도가 동일하다’(書同文 車同軌)란 말이 있듯, 같은 문자를 바탕 삼는 문화들에서는 뭔가 같은 것을 찾아내기 쉽다. 이런 ‘공동성’은 국가나 민족에 갇히기 쉬운 시야를 넓게 확장해준다. 동아시아와 관련된 담론에서 끊임없이 한자·한문학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근본적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과 문과대학은 23~24일 서울 명륜동 성균관대 국제관에서 ‘동아시아 한문학, 공동성과 고유성’이라는 주제로 학술회의를 열었다. 이번 학술회의는 ‘한문학’을 동아시아적 시각을 수립하기 위한 중요한 경로로 재검토해봤다는 데 의의가 있다. 특히 이번 학술대회에서 김용태 성균관대 교수가 ‘개항 이후 동아시아 한문네트워크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논문은 그동안 많은 이들이 연구해온 중세 한문학이 아닌 19세기 개항 이후 한문학을 가지고 새로운 ‘동아시아 한문학’의 틀을 제시해 눈길을 끈다. 개항 이전 동아시아에서 개인은 자유로이 국경을 오고갈 수 없었다. 동아시아의 상호 소통을 보여주는 자료 역시 ‘연행록’이나 ‘통신사 기록’ 등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김 교수는 개항 뒤 폭발적으로 늘어난 국외 교류를 통해 동아시아 지식인들이 서로 한문으로 소통했던 자취에 주목했다. 개항 이후 ‘한문네트워크’에 대한 연구가 동아시아와 한문학에 대한 새로운 성과를 촉발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다. 개항 이후 한문네트워크 형성에 선구자적 구실을 한 사람은 청나라 외교관으로서 일본·조선의 다양한 지식인들을 만난 기록을 <속회인시>(續懷人詩)라는 시집으로 남겼던 황준헌을 들 수 있다. 황준헌은 이토 히로부미, 김홍집 등 일본·조선의 지식인들과 만났는데, 이에 대한 기록들이 개항 이후 한문네트워크의 존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의 시를 보면 조선 지식인들이 일본과 중국에 대해 지닌 깊은 불신과 당시 일본에 강제병합된 류큐국(오키나와)의 국권회복 운동에 대한 생각 등을 엿볼 수 있다. 김 교수는 “<속회인시>는 황준헌이 한문을 통해 당대 동아시아의 다양한 인물들, 다양한 역사 현장과 다양한 방식으로 맺은 연결고리들을 담고 있어, 개항 이후 ‘한문네트워크’의 존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모두 다섯 차례 국외 여행을 했던 조선 학자 강위 역시 여러 중국·일본의 인사들과 만나 한문필담 등으로 대화를 나누고 기록들을 남겼는데, 동시대인으로서 공유하고 공감하는 정서 등이 묻어난다. 일본에 경도되어 나중엔 일제의 ‘대동아’ 논리에 포섭되기도 했던 김윤식 역시 많은 일본 인사들과의 교류 내용들을 자료로 남겼다. 임오군란의 영향으로 청나라 군인이 조선에 주둔하게 된 것도 한문네트워크 활성화의 단적인 모습이다. 조선에 왔던 장건과 원세개가 그를 맞이한 조선 관료 김창희와 나눈 필담에서 이홍장을 중심으로 하는 ‘양무파’에 대한 불만과 비판을 표출하는 것도 재미있는 사례다. 김 교수는 “아직 개항 후 한문네트워크의 전모를 밝힐 준비는 되지 못한 형편이며, 이번 발표는 연구의 필요성을 환기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 시기 문집자료, 필담자료 등 각국에 흩어져 있을 자료들을 모아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이들을 풀이해 나가는 과정에서 ‘동아시아적 시각’을 확보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밖에도 이번 대회에서는 한문학을 둘러싼 고전적인 관점의 대립도 엿보였다. 중국 지린대학의 선원판 교수는 당나라 시대에 형성된 ‘모란 문화’가 다른 나라, 특히 조선에 끼친 영향에 대해 발표했다. 당나라 때 모란을 주제로 삼는 특색 있는 문화와 심미관이 발달했는데, 조선 후기 학자 남희채가 쓴 <구갑시화>는 특히 여기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한문학이 가진 ‘전파’의 구실에 주목한 풀이다. 반면 사이토 마레시 일본 도쿄대 교수는 한문학의 ‘유통’ 구실에 더 주목했다. 일본 문학에서 등장하는 ‘곽공조’(호토토기스)와 ‘옥갑’(다마쿠시게)이란 말은 각각 두견새와 옥상자를 가리키는 한자어인데, 정작 중국 문화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곧 일방적 영향과 전승에 갇히지 않는 수평적인 작용으로 ‘유통’의 개념을 더 강조한 것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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