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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실용주의는 우파의 전유물이 아니다

등록 2012-11-30 19:53

<주체의 각성-사회개혁의 철학적 문법>
로베르토 웅거 지음, 이재승 옮김/앨피·1만9800원
<주체의 각성-사회개혁의 철학적 문법> 로베르토 웅거 지음, 이재승 옮김/앨피·1만9800원
미국 비판법학 창시자·정치인 웅거
시장경제에 치우친 실용주의 비판
사회개혁 위한 ‘인간 주체성’ 강조
<주체의 각성-사회개혁의 철학적 문법>
로베르토 웅거 지음, 이재승 옮김/앨피·1만9800원

이명박 대통령이나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총체적 실정 때문일까? 이제 그들이 국정이념으로 내세웠던 실용주의란 말에는 일말의 비웃음마저 담기게 된 듯하다. 미국에서 발전한 실용주의는 본디 관념적 담론에 맞서 인간의 실질적인 삶을 되새긴다는 강점을 지녔는데, 언제부턴가 이익 추구나 권력의 횡포를 정당화시켜주는 구실처럼 쓰이게 됐다.

미국 하버드대 법철학 교수인 로베르토 웅거(65·사진)는 <주체의 각성-사회개혁의 철학적 문법>에서 실용주의 앞에 ‘급진적’이라는 새 수식어를 붙여, 영구적 사회개혁 프로그램으로 다시 만들어내려 한다. 급진적 실용주의로 ‘인간의 주체성’을 일깨우고, 실질적인 사회개혁을 일으키는 것이 목적이다.

29살 때 종신교수가 된 웅거는 덩컨 케네디, 모턴 호위츠와 더불어 1970년대 미국 ‘비판법학’ 운동의 창시자로 꼽힌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학파가 ‘비판이론’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근본적으로 비판했다면, 미국에서는 비판법학이 자본주의 체제와 이를 떠받치는 자유주의 법 담론을 근본적으로 비판했다. ‘사회민주주의를 혁신하려는 급진민주주의’의 지향점을 지닌 웅거는 법학뿐 아니라 정치학·철학을 넘나들며 수많은 저술을 남겼다. ‘사이비 필연성, 사회이론, 권력의 유동성’ 등을 주제로 한 ‘정치학 3부작’이 대표 저작으로 꼽힌다.

브라질 출신인 웅거는 브라질 현실 정치에도 깊이 간여해왔다. 룰라 2기 행정부에서 장기계획부 장관을 지냈고, 그의 사상에도 앞으로의 꿈인 대통령이 되어서 실행할 정치적 프로그램에 대한 고민이 배어 있다. 또 그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하버드대 로스쿨 학생이던 시절 큰 영향을 준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2007년작 <주체의 각성>에서 웅거는 인간을 지배해온 ‘영원한 철학’에 맞서 ‘인간의 주체성’을 다시 일깨우는 방법을 고민한다. 영원한 철학은 구별과 변화로 이뤄진 ‘현상적 세계’를 환상으로 치부하고, 통일적이고 단일한 궁극적 실재가 있다고 본다. 웅거는 이 영원한 철학이 그동안 인간을 다양한 형태의 사회·문화 구조의 노예로 만들어왔다고 비판한다.

인간은 그 존재의 유한성 탓에 시간과 차이의 저편에 있는 궁극적 실재를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 ‘영원한 철학’의 전제다. 이에 맞서 웅거는 ‘개인의 삶 하나하나는 과거에 살았던 어느 누구와도, 미래에 살 어느 누구와도 같지 않다’며, 단선적·불가역적인 개인의 삶처럼 시간과 차이 자체가 실재임을 역설한다. 그는 영원한 철학으로부터 이탈하려 했던 인간 정신의 시도들을 점검해나가는데, 그 대표적 흐름이 바로 실용주의다. 실용주의는 인간을 단지 자신에게 영향을 주는 인과적 요소들로 환원할 수 없다는 점을 드러내, 주체적인 ‘행위자로서 인간상’을 강조했다.

미국 하버드대 법철학 교수 로베르토 웅거(65)
미국 하버드대 법철학 교수 로베르토 웅거(65)
웅거는 책에서 그동안 실용주의가 실패한 지점들을 통렬하게 지적하고, ‘급진적’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데 주력한다. 그는 기존 실용주의가 대의제 민주주의나 시장경제 같은 제도적 공식, 이데올로기적 구조에 기대며 그 잠재적 힘을 무디게 만들었다고 맹비판한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위기가 닥쳤을 때에야 그동안 작동해온 사고와 구조의 한계를 떠올릴 수 있을 뿐, 일상생활에서는 상상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변화와 실험도 감행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제도와 관행의 기존 체제가 전면적으로 교체되어야 한다거나 그것이 오로지 인간화되어야 한다는 편견 속에서는, 점진적이지만 누적적이며 방향성 있는 변혁을 통해 기존 체제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깨닫지 못한다.”

그가 내세우는 급진적 실용주의는 ‘행위주체성·우연성·미래지향성·실험주의’가 핵심이다. 사회 제도와 구조 속에서 그것 자체를 점진적으로 끊임없이 개혁해나가야 한다는 ‘영구혁신’을 웅거는 주장한다. 인간은 무한 잠재력을 담보하는 정신 역량을 지닌 존재이므로 궁극적인 구조와 제도에 매달리지 않고 사회개혁을 계속해나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주체적 인간상에 뿌리를 두고 그는 대의제 민주주의에 얽매이지 않고 참여를 확대하는 급진민주주의, 조세를 통한 소득재분배에만 매달리는 기존 사회민주주의의 급진적 재구성에 대한 논의를 펼친다. 인간의 각성과 사회변화를 추동하는 프로그램은 서로 연결되며, 일상적 삶 자체가 사회 제도·구조를 변화시키는 무대임을 일깨우는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의 일상적 주장은 작은 예언이 되고, 우리의 예언은 작은 경험이 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사진 앨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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