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길을 거닐다, 옛 그림의 풍경을 따라

등록 2012-11-30 20:31

<옛 그림 따라 걷는 제주길>
최열 지음/서해문집·1만7000원
<옛 그림 따라 걷는 제주길> 최열 지음/서해문집·1만7000원
제주와 서울 옛 그림의 향기 좇아
구석구석 누비며 쓴 인문적 기행기
사람과 자연에 얽힌 이야기 풀어내
<옛 그림 따라 걷는 제주길·옛 그림 따라 걷는 서울길>
최열 지음/서해문집·각 권 1만7000원, 1만5000원

풍경은 마음의 주문에 따라 달라지는 마술이다. 우리는 풍경을 마냥 소비할 수도 있고, 끝없이 되새김질하며 성찰할 수도 있다. 보는 태도와 머릿속에 받아들이는 관점에 따라 눈길은 달라지는 것이다. 이 땅의 옛 선인들은 풍경을 거니는 행위가 지닌 이 놀라운 사유의 잠재력을 놓치지 않았다. 눈앞에 시시각각 바뀌며 나타나는 자연과 사람살이의 자취들을 샅샅이 훑어보았을 뿐 아니라, 숱한 산수 풍경화와 인문적 기행기를 남겨 짬짬이 들추며 마음 수양의 터전으로 삼았다.

<옛 그림 따라 걷는 서울길>
최열 지음/서해문집·1만5000원
<옛 그림 따라 걷는 서울길> 최열 지음/서해문집·1만5000원
성실한 사료 탐독으로 소문난 미술사가 최열씨가 내놓은 두 권의 신간에는 옛적 풍경의 인문학을 되살리고픈 집착이 깃들어 있다. <옛 그림 따라 걷는 제주길> <옛 그림 따라 걷는 서울길>이란 제목이 붙은 두 기행서는 옛 그림 속 풍경들을 거닐며 느낀 미술사가의 아련한 체험과 감상의 기록이다. 스쳐가는 풍경에서 사람과 자연의 무늬를 탐색했던 과거 인문정신을 지은이는 우리가 잘 모르는 제주와 서울의 옛 풍경 그림들로 펼쳐 보여주려 한다.

<…제주길>에서 그림 유람의 고갱이가 되는 풍경은 1702년 그려진 41폭의 화첩 <탐라순력도>다. 제주 목사 이형상(1653~1733)이 화가 김남길에게 성산봉 일출, 제주목 관아, 우도의 말목장, 조천포구 등 관내 각 고을의 풍광과 행사 정경을 그리게 해 탄생한 작품이다. 민화풍으로 섬 안의 오름과 굽이치는 폭포를 뒤틀고 변형시켜 제주의 거친 자연을 부려놓은 이 그림을 들고서 그는 제주의 풍경에 얽힌 주민, 유배객, 신들의 사연들을 동부, 서부, 남부의 세가지 이야기로 풀어낸다. 이 여정엔 다른 제주의 옛 그림인 <영주십경도>와 <내왓당 무신도> <학산구구옹첩> 등과 직접 성산 일출봉과 백록담 등을 발품 들여 답사했던 체험이 함께한다.

김남길이 그린 화첩 <탐라순력도>의 일부인 ‘성산관일’(城山觀日). 1702년 7월13일 아침에 제주 목사 이형상이 성산 일출봉 꼭대기에서 해돋이를 보는 풍경을 담았다. 네모진 상자처럼 일출봉을 묘사해 기괴한 느낌을 자아낸다.
도판 서해문집 제공
김남길이 그린 화첩 <탐라순력도>의 일부인 ‘성산관일’(城山觀日). 1702년 7월13일 아침에 제주 목사 이형상이 성산 일출봉 꼭대기에서 해돋이를 보는 풍경을 담았다. 네모진 상자처럼 일출봉을 묘사해 기괴한 느낌을 자아낸다. 도판 서해문집 제공
그가 주섬주섬 꺼내든 이야기들은 부박한 관광사진의 이미지만 아롱거리는 지금 제주와는 판이하다. 무속화인 내왓당 신방의 그림 <본궁위>를 본 지은이는 남편과 아들 500명을 잃고 이곳저곳 헤매다가 한라산 물장오리에서 물에 빠져 죽은 설문대할망의 슬픈 신화를 떠올린다. 천지연폭포 양쪽 절벽 사이에 줄을 쳐놓고 허수아비 인형을 매달아 화살 시합의 과녁으로 썼던 1702년 활쏘기 행사의 현장도 책에서 엿볼 수 있다. <영주십경도>의 그로테스크한 산방산 풍경에서 그는 1653년 배가 난파당해 제주도에 표착한 하멜이 보았던 낯선 섬의 풍광들을 추체험하기도 한다. 여기에 추사 김정희, 충암 김정, 의병장 최익현, 광해군 등 유배객들의 애달픈 사연과 남긴 시구, 해녀들의 민요까지 곁들여지니, 책의 이야기들은 제주 자연과 사람들의 역사에 아로새겨진 온갖 무늬들이 꿈틀거리는 난장이 되었다.

<…서울길>에도 교과서 명화나 홍보사진 속 풍경은 별로 없다. 서울을 둘러싼 좌청룡 우백호의 지세가 아래 궁궐, 도시와 맞닿은 김수철의 <경성도>를 필두로 해, 유숙의 <세검정>, 김희성의 <동대문 오간수문>, 김석신의 <압구청상> 등 옛적 서울 구석구석을 사생한 낯선 화인들의 풍경 속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조선 왕조를 창업한 태조 이성계의 멘토였던 무학 대사가 “온 나라 산수의 정기가 모인 곳”이라며 남경(서울)을 도읍으로 추천했던 이유를 땅무늬 사람무늬 깃든 책 속 진경 그림들은 일러준다. 지은이는 자신의 옛 풍경 기행을 “그림이란 창문을 통해 본 풍경을 따라 이뤄졌고, 그 풍경에 담긴 자연과 신과 인간의 이야기를 찾아 나선 오랜 여행”이라고 말했다. 뒤집어보면, 그것은 처연한 상실의 그리움이다. 아련한 그 시절 그림 속 풍경의 실제 모습을 우리는 이제 영원히 볼 수 없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꼼수의 제왕’ 한상대, 하루도 못넘기고 ‘사퇴’
“당신이 산 티켓이 야생코끼리를 노린다”
‘은퇴’ 박찬호 “나는 운이 좋은 녀석이었다”
1분에 10㎝, 황제펭귄의 겨울나기
주남저수지 어린이 살해 용의자는 엄마
문재인쪽 “왜 노무현 정부만 곱빼기로 심판받아야 하나”
[화보] ′위기의 검찰′…한상대 검찰총장 사퇴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