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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손자’는 처세서 아닌 ‘경전’이다

등록 2012-12-14 19:58

'전쟁은 속임수다-리링의 <손자>강의'
리링 지음, 김숭호 옮김/글항아리·4만8000원
'전쟁은 속임수다-리링의 <손자>강의' 리링 지음, 김숭호 옮김/글항아리·4만8000원
'전쟁은 속임수다-리링의 <손자>강의'
리링 지음, 김숭호 옮김/글항아리·4만8000원
리링 베이징대 교수, 원전 주해
기원부터 서양병법과 비교까지
종합해석으로 철학적 의미 살려

중국 고전이라 하면 흔히 <논어> <노자> <주역> 등을 이야기하고, <손자>를 떠올리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손자병법’의 이름을 빌린 드라마까지 나올 정도로 우리 삶에 친숙한 책인데도, 아마 ‘처세서’의 느낌이 강해 ‘경전’이란 생각이 쉽게 들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그동안 <손자>를 부분부분 옛이야기로 포장되어 돌아다니는 파편적인 내용들로만 접했을 뿐, 경전으로서 <손자>의 전모를 ‘제대로’ 읽을 기회는 별로 없었다.

현재 중국에서 고문헌학·고문자학·고고학 등 ‘3고의 대가’라 불리는 리링(64) 베이징대 교수가 2006년에 펴낸 <전쟁은 속임수다>는 <손자>에 대한 가장 철저하고 정밀한 현대판 주석서로 손꼽힌다. 리링은 다양한 고전들을 연구했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손자>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 평가받는다. 최근 이 책이 ‘리링 저작선’으로 번역 출간돼, 국내에서도 고전으로서의 <손자>의 전모를 접할 수 있게 됐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손자>라는 책의 의미와 기원을 따지고 그 내용을 세세하게 주해한다. 이뿐만 아니라 중국 고전에서 병법서의 위치와 발전해온 맥락,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을 비롯한 서양 병법과의 비교 연구 등 거의 모든 종합교양적 지식을 강의식으로 쉽게 풀어놓는다. 특히 그는 <손자>가 대중에게 원서로 읽히지 않고 파편적으로 인용되면서 만병통치약처럼 ‘돈 버는 수단’ 정도로 유통되는 현실을 개탄하고, 원서에 대한 꼼꼼한 독해를 통해 ‘중국의 지혜’를 담은 <손자>에 깃든 철학적 의미와 고전으로서의 가치를 되살리자고 말한다.

중국 시안에 있는 ‘진시황 병마용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토우군과 병마용. 전란이 끊이지 않았던 춘추전국시대는 <손자>와 같은 탁월한 병법서가 나오는 배경이 됐다. <한겨레> 자료사진
중국 시안에 있는 ‘진시황 병마용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토우군과 병마용. 전란이 끊이지 않았던 춘추전국시대는 <손자>와 같은 탁월한 병법서가 나오는 배경이 됐다. <한겨레> 자료사진
리링은 “전쟁에서는 속임수도 꺼리지 않는다”(兵不厭詐)는 한마디 말로 중국의 병법을 설명한다. 제목인 “전쟁은 속임수”(兵以詐立)라는 말도 같은 뜻이다. 병법이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어떤 규칙도 따르지 않는 ‘모략’이라는 것이다.

<손자>는 ‘권모’ ‘형세’와 같이 군사이론을 다루는 내편과 ‘군쟁’ ‘구변’ ‘행군’ ‘지형’ ‘구지’ ‘화공’ ‘용간’ 등 실제적인 응용을 다루는 외편으로 구분할 수 있다. 군사이론 가운데 핵심을 이루는 개념은 ‘계’(計)다. <손자>에서는 “비교와 계산을 거친 뒤에 승부를 알 수 있다”며 ‘계책을 정하는 것’(定計)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곧 빈틈없는 계산으로 좋은 계책을 확정할 수 있다면 승리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계산의 우세만으론 진정한 승리를 거둘 수 없기에, 내가 원하는 바에 적이 호응하도록 ‘계책을 실천하는 것’(用計)도 중요하다. 이 때문에 법도도 규칙도 없는 갖가지 모략과 임기응변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형’(形)과 ‘세’(勢)라는 짝패 개념이 중요해진다. ‘형’이 우리 편이 본래 갖추고 있는 실력과 같이 앞으로 드러나 있어 볼 수 있는 것이라면, ‘세’는 적으로 인해 벌어지는 상황처럼 뒤에 감추어져 볼 수 없는 것이라 한다. 굳이 예를 들자면, 높은 곳에 물이 고여 있다면 그것이 ‘형’이요, 둑이 터져 밑으로 쏟아져내린다면 그것을 ‘세’라고 할 수 있다. 또 이로부터 ‘기’(奇)와 ‘정’(正), ‘허’(虛)와 ‘실’(實)과 같은 개념들이 나타난다. 이는 ‘많은 병력으로 적은 병력을 상대한다’, ‘준비가 갖춰진 상태에서 준비가 없는 적을 상대한다’ 등 ‘내가 이길 수 있는 형세’를 만들기 위한 무수히 많은 머리싸움이 파생되는 지점이다. 지은이는 변증적 관계를 이루는 ‘형’과 ‘세’의 개념이야말로 <손자>의 철학적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낸다고 지적한다.

동서양의 병법을 비교하는 것도 인상 깊다. 끝없는 폭력을 이상적인 상태로 여겨 ‘절대전쟁’을 강조한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은 모략이라는 전쟁의 본질을 철학적으로 담았다는 점에서 <손자>와 비교된다. 그런데 지은이는 <전쟁론>이 ‘철저한 적의 제거’를 위해 전쟁을 먼저 앞세워 적을 굴복시킨 뒤 그 수위를 점차 낮추는 반면, <손자>는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을 앞세워 전쟁을 뒤로 미루고 있어 그 상반된 성격이 드러난다고 봤다. 전쟁과 정치가 맞물려 돌아가는 전체 과정 가운데 <전쟁론>이 싸움이 벌어지는 중간 단계를 이상적 상태로 봤다면, <손자>는 싸우기 전과 싸움이 끝난 뒤를 이상적인 상태로 봤다는 풀이다.

리링은 책 속에서 “어떻게 중국의 경험과 세계의 경험을 결합할 것이며, 어떻게 철학적인 것과 실용적인 것을 결합할 것인가 하는 점이 여전히 커다란 난제”라고 말한다. 그의 질문은 한동안 잊혔던 중국의 고전 연구가 어느덧 ‘세계 문명’으로 가기 위한 필수적인 코스가 됐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해준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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