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평전>
김민수 지음/그린비·1만8000원
<이상 평전>
김민수 지음/그린비·1만8000원
김민수 지음/그린비·1만8000원
내면세계 투영된 자화상
세계적 예술사조와 맥 닿아
건축가로서의 경험은
그의 시적 이미지 모체로 평전 낸 김민수 서울대교수
“총체적 시각예술 차원서 봐야
그의 삶과 작품 온전히 이해” 예술가 이상(1910-1937)은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인가. 허깨비인가. 이 물음들은 지금도 유효하다. 후대 사람들은 글보다 이미지의 기억으로 그를 호출해낸다. 그 이미지들은 대개 흐릿하고 파리하다. 조선총독부 건축기사 시절 찍은 코트 입은 그의 사진과 친구 구본웅이 그린 파이프를 문 괴팍한 기인의 풍모 등이 떠오른다. 소설 <날개>에서 미쓰코시 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 본점) 옥상에서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를 되뇌는 주인공의 모습이나, 시 ‘오감도’나 ‘건축무한육면각체’ 같은 난수표 같은 시형식들을 연상하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식의 심도는 대개 거기까지다. 이상 일대기의 세부는 물론이고, 난해한 작품 속에 묻힌 숱한 ‘암호’들은 논란 속에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수년 동안 시각예술의 맥락에서 이상 작품을 연구해온 김민수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는 <이상 평전>에서 세간에 주목받지 못했던 한 장의 자화상을 꺼내놓았다. 이상이 경성고등공업학교(경성고공)에 다닐 때인 1928년 그린 이 자화상은 섬뜩하다. 왼쪽면만 빛을 잔뜩 받는 비대칭적 얼굴, 정수리는 함몰됐고, 오른쪽 눈엔 눈알이 없다. 푹 파인 눈 밑에 눈물이 흐른 흔적이 있고, 목은 잘렸으며, 그 아래엔 십자가가 그려졌다. 그는 이 자화상을 이상이 품었던 독특한 내면적 세계관을 거울 이미지로 투영한 것이며, 그의 큰 예술적 실험과 계획을 위한 일종의 첫 번째 페르소나, ‘연출된 가면’일 가능성이 크다고 풀이한다. 지은이가 이상의 내면을 추적하는 시발점으로, 이 자화상을 주목한 이유는 이상이 불과 열아홉 나이에, 자기 내면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에른스트 키르히너 같은 당대 독일 다리파 작가 스타일의 표현주의 화풍을 이미 섭렵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기노우치 요시 등 당시 일본 화가들이 그린 자화상들과 기묘할 정도로 화풍이 일치한다는 점에서도 세계 예술사조와 이상이 직접 접속했음을 보여주는 단서라는 것이다.
<이상 평전>에서는 이 자화상처럼 기존 문단의 이상 연구서와는 크게 다른 독해 방식을 꾀한다. 시, 산문, 소설, 지인들의 글 같은 텍스트보다, 그가 나고 자랐던 여러 장소 공간, 그가 접한 시각 예술 사료들에 대한 탐색이 방향타로 작동한다. 책 전반부에서 이상이 유년기 자랐던 서울 서촌 일대의 역사 지리 공간들을 꼼꼼하게 뒤쫓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그 결과물 가운데 하나가 이상이 1932년 <조선과 건축>에 일어로 발표한 난해시인 ‘차8씨의 출발(且8氏의 出發)’에 대한 독특한 풀이다. 시는 “균열이들어간장가이녕의땅에한자루의곤봉을꽂는다”라는 구절로 시작된다. 김 교수는 기존 문학 연구자들이 이 구절을 빌미삼아 가학적인 성교 장면을 투사하는 등 자의적 해석으로 시를 오독했다고 말한다. 그는 유년시절 이상의 통인동 집 근처인 경복궁 앞 조선총독부 공사장의 ‘소음’에서 그 배경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을 꺼낸다. 보성고보를 나와 경성고공에 입학할 때까지 총독부 공사장을 지나다녔을 이상은 ‘식민지 근대 건축’의 상징 기반을 닦기 위해 1만개에 가까운 말뚝을 땅 속 깊숙이 박아넣는 항타 작업을 목격했을 것이며, 거기서 시각적·청각적으로 강렬한 인상을 받았을 것이라는 단언이다. “기초공사의 항타 작업처럼 … 폐허 속 진창 구덩이의 갈라진 틈바구니에 삶의 근간이 될 작은 곤봉 한 자루를 간신히 박았다는 매우 실존적인 진술”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 제목은 ‘또팔씨’가 되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또 차(且)자는 시 후반에 나오는 “또 쏜살같이 달려 또 쏜살같이 달리는 사람”이라는 구절에 등장하는 또 ‘우’(又) 자와 같은 뜻이며, 제목도 “또-팔-사람의 출발”, 곧 ‘현실의 땅에서 분투적으로 땅을 계속 또 파려는 한 인간의 새 출발’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견해다.
연작시 <오감도>가운데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오(길은 막다른 골목이 적당하오)’라는 첫 구절로 유명한 시 제1호에 대한 시각도 파격적이다. 서촌 골목길을 누볐을 아이들이 친일파 윤덕영의 호화로운 별장과 이완용의 집이 있었던 인왕산 기슭 서촌의 막다른 골목에 맞닥뜨리며 느꼈던 공포의 기억이 시의 잠재적 동기가 됐다는 말이다. 실제로 당시를 살았던 노인들 증언과 관련 신문기사 등을 통해 설득력 있는 근거도 제시한다. 이상의 제적등본 출생지인 ‘순화방 반정동’의 실제 지명은 없다는 것을 밝혀낸 것 또한 성과다.
책에서는 뒤이어 미술·건축·디자인 등 당대 시각예술에 대한 총체적인 접근을 통해 이상의 작품 세계 배후를 파고들어간다. 특히 이상이 경성고공 재학시절부터 탐독했던 건축잡지 <조선과 건축>의 텍스트들을 처음으로 샅샅이 탐색한 것이 주목된다. 경성고공 스승 후지시마 가이지로가 잡지에 소개한 한스 펠치히, 발터 그로피우스, 르 코르뷔지에 등 당대 서구 건축가들의 모더니즘 이론들을 이상이 보았을 것이며, 특히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이 크게 영향을 끼친 흔적이 작품 곳곳에서 엿보인다는 게 김 교수의 주장이다. 예를 들어, 시 ‘또8씨의 출발’에서 “곤봉은 사람에게 땅을 떠나는 곡예를 가르치지만”이라는 구절은 지표면 위로 기둥을 세우고 1층을 비우는 르 코르뷔지에 특유의 ‘필로티’ 건축양식을 뜻하는 것으로, ‘진창 같은 현실에서 지면 위로 솟아올라 치고 올라가는 존재의 해방’을 암시한다는 풀이다. 또 ‘이상한 가역 반응’이나 ‘삼차각 설계도’ 연작시의 수열 행렬 같은 수식들은 오늘날의 디지털 신호체계와 상통할 뿐 아니라, ‘거울’ 이나 <오감도> 연작시 등은 오늘날의 가상현실 아바타에 대한 상상력까지 이미 내보였다는 점에서, 이상은 21세기 미래와 소통한 작가였다는 게 그의 평가다.
그렇다면, 책에서 밝혀낸 이상 작품 세계의 고갱이는 무엇일까. 시각 예술의 총체적 시야에서 이상이 살던 당대의 예술 지형도를 재구성해본 지은이는 일제가 이식한 ‘모조 근대’를 살해하려는 욕망을 지목한다. 폐결핵을 앓던 이상이 말년 식민 본국의 수도 도쿄로 향했던 건 조선에 ‘모조 근대’만을 이식해온 일본이 정말 제대로 된 ‘근대’를 지니고 있는지 확인하려는 고행길이었다. 하지만 덩치말고는 경성역과 외양이 비슷한 도쿄역이나, 서구 마천루의 옹색한 판박이인 마루노우치 빌딩에서 그는 짝퉁 근대의 이미지밖에 볼 수 없었다. 친구인 문인 김기림에게 “실로 동경이라는 데는 치사스런 데로구려!”라고 보낸 편지는 환멸의 절규였다. 방황하던 그는 불령선인으로 구금되고, 객사하는 운명을 맞는다. 지은이가 보기에, 이상은 “식민지 수도 경성의 ‘모조 근대’를 성찰하고 초극하여 당대 예술이 나아갈 세계사적 본류를 향해 죽음의 질주”를 감행했다. 이상의 삶과 작품은 단순한 시대적 불안이나 자의식의 산물이 아니라, “그 자체가 식민지 도시근대화의 허구와 모순을 드러낸 엄청난 사건이자 증거”였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책 도처에서 문단 중심의 이상 연구에 강한 불신을 표출한다. 텍스트에 함몰되어 그를 삶과 얽힌 작품의 필연적 맥락은 제대로 캐지도 못했다는 날선 비판에 문학 연구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진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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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19살 때 유화로 그렸다고 전해지는 자화상. 1956년 발간된 임종국의 <이상전집> 2권에 처음 소개된 작품이다. 이상이 경성고공 졸업반이던 1928년 무렵 그린 것으로 보인다.
이상이 디자인한 건축잡지 <조선과 건축>의 표지. 1931년 이 잡지 공모전 입상작이다. 튜브나 기계부품 같은 제호 활자체에서 페르낭 레제나 르코르뷔지에 같은 서구 모더니즘 대가들의 영향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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