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의 구조>
가라타니 고진 지음, 조영일 옮김/도서출판 b·2만6000원
<세계사의 구조>
가라타니 고진 지음, 조영일 옮김/도서출판 b·2만6000원
가라타니 고진 지음, 조영일 옮김/도서출판 b·2만6000원
교환양식 변천따라 역사 재구성
유통과정에서 자본에 대항하는
협동조합 등 새 교환시스템 주목 일본을 대표하는 사상가이자 비평가인 가라타니 고진(사진·69)이 2010년 펴낸 저작 <세계사의 구조>가 국내 출간됐다. 그의 저작들을 우리말로 옮겨 온 조영일씨는 이 책에 대해 “40년 동안의 저작활동을 집대성하면서도 그 모든 것을 한계까지 밀고 나간, 명실상부한 ‘가라타니의 주저’”라고 말했다. 그동안 가라타니가 비평가로서 기존 텍스트를 뒤집고 교차시키며 새로운 착상들을 도출하는 데 주력했다면, <세계사의 구조>에서는 사상가로서 지적 작업들을 모두 응축해 생각의 체계를 축조해냈다는 평가다. 가라타니는 2001년 <트랜스크리틱>에서 칸트와 마르크스를 교차시켜 읽으며, 근대 사회구성체는 마치 ‘보로메오의 매듭’처럼 ‘자본-네이션(국민)-스테이트(국가)’의 결합장치라고 분석한 바 있다. ‘자본주의 경제’는 경제적 격차와 대립을 일으키는데, 공동성과 평등성을 지향하는 ‘네이션’은 그런 격차나 모순들의 해결을 요구하고, ‘스테이트’는 재분배로 그것을 실행한다. 그러니까 근대의 사회구성체는 이 삼위일체의 회로 속에 갇혀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애초 각 나라에서 일어나는 자본과 국가에 대항하는 움직임들의 연합(‘어소시에이션’)이 이 삼위일체의 회로에서 벗어날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을 제시했으나, 2001년 9·11 이후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국가나 네이션이 단순히 ‘상부구조’가 아니라 능동적 주체로서 활동하기 때문에 자본과 국가에 대한 대항운동은 일정 단계를 넘어서면 반드시 분열된다”는 점을 통감한 것이다. 그는 그 뒤 2006년 <세계공화국으로>를 통해 국가 외부에서 국가를 소멸시킬 힘을 고민하고, 그 방향점을 ‘세계공화국’이란 이념으로 제시하게 된다.
<세계사의 구조>에서 가라타니는 이를 밑받침할 이론적 체계의 구축을 시도한다. 주된 대결상대는 자본-네이션-스테이트의 삼위일체성을 파악하고 근대 사회구성체 역사를 체계화한 헤겔이다. 마르크스는 헤겔을 비판했지만, 삼위일체의 회로에 주목하지 못하고 자본주의 경제를 하부구조로, 국민·국가를 상부구조로 간주했다. 이로부터 ‘자본주의가 없어지면 국가도 없어진다’는 순진한 견해나, 반대로 강고한 삼위일체의 현실을 이길 수 없다며 이념 자체를 조소해버리는 태도가 비롯됐다는 것이다.
가라타니는 헤겔이 제시한 삼위일체성을 놓지 않으면서도, 마르크스와 칸트의 지적 자산에 기대어 헤겔의 ‘역사결정론’을 비판해나간다. 사회구성체 역사를 ‘생산양식’ 아닌 ‘교환양식’으로 파악하고, 지배적 교환양식의 변천에 따라 사회구성체와 세계시스템이 달라져온 맥락을 총체적으로 재구성한다. 그는 증여-답례와 같이 호혜적인 ‘교환양식A’와 약탈-재분배에 의거한 ‘교환양식B’, 합의에 의한 상품교환인 ‘교환양식C’, 그리고 교환양식A의 고차원적 회복으로서 자유롭고 상호적인 ‘교환양식D’를 제시한다. 이 가운데 어떤 교환양식이 지배적이냐에 따라 사회구성체와 세계시스템 성격이 좌우된다. 예컨대, 교환양식A는 호혜성 원리에 따라 불평등을 억제한 씨족사회 구성체와 국가 없는 ‘미니세계시스템’을 구축했다. 또 교환양식B는 아시아적·고대적·봉건적 사회구성체와 ‘세계=제국’ 시스템을, 교환양식C는 자본주의적 사회구성체와 ‘세계=경제’라는 시스템을 일으켰다고 한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오늘날의 과제는 교환양식D를 추구해 새로운 사회구성체와 세계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재분배에 의해 부의 격차를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호혜’라는 교환양식의 고차원적인 회복을 통해 애초 부의 격차가 생기지 않는 교환적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핵심인 체제다. 곧 ‘증여’가 가진 힘을 되살려, 격차를 낳는 교환시스템 자체를 폐기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가라타니는 이런 맥락에서 소비자-생산자 협동조합, 지역통화·신용 시스템같이 교환양식을 다루는 ‘유통과정’에서 자본에 대항하는 움직임들을 새로운 사회구성체를 만들기 위한 운동으로 주목한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일국뿐 아니라 세계시스템 차원에서도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다. 칸트의 ‘영구평화’ ‘세계공화국’ 개념에 영향을 받은 가라타니는 국가간 관계에서도 호혜적인 교환양식을 적용한다고 강조한다. 가라타니는 이런 새로운 세계시스템의 출발점을 현재 국가연합기구인 ‘유엔’의 개혁, 곧 유엔으로 하여금 교환양식D를 추구하도록 하는 데서 찾는다. 예컨대 어떤 나라에서 유엔에 군사적 주권을 증여하는 혁명이 일어난다면, 이것이 ‘세계동시혁명’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한겨레 인기기사>
■ 나는 시부모에게 결투신청 하기 싫어요
■ 백낙청 신년사 “패배는 쓰라리지만 국민은 훌륭했다”
■ 신혼여행 다녀오니 ‘해고’…“넌 결혼하지 마!”
■ 한지혜 “메이퀸 마지막회, 사실 입이 안 떨어졌다”
■ 네오위즈, 사장은 인수위 청년위원 됐는데…
■ 비정규직 딱지 떼고…서울시 공무원 됐습니다
■ 공작새가 짝짓기 직전 소리지르는 이유는…
유통과정에서 자본에 대항하는
협동조합 등 새 교환시스템 주목 일본을 대표하는 사상가이자 비평가인 가라타니 고진(사진·69)이 2010년 펴낸 저작 <세계사의 구조>가 국내 출간됐다. 그의 저작들을 우리말로 옮겨 온 조영일씨는 이 책에 대해 “40년 동안의 저작활동을 집대성하면서도 그 모든 것을 한계까지 밀고 나간, 명실상부한 ‘가라타니의 주저’”라고 말했다. 그동안 가라타니가 비평가로서 기존 텍스트를 뒤집고 교차시키며 새로운 착상들을 도출하는 데 주력했다면, <세계사의 구조>에서는 사상가로서 지적 작업들을 모두 응축해 생각의 체계를 축조해냈다는 평가다. 가라타니는 2001년 <트랜스크리틱>에서 칸트와 마르크스를 교차시켜 읽으며, 근대 사회구성체는 마치 ‘보로메오의 매듭’처럼 ‘자본-네이션(국민)-스테이트(국가)’의 결합장치라고 분석한 바 있다. ‘자본주의 경제’는 경제적 격차와 대립을 일으키는데, 공동성과 평등성을 지향하는 ‘네이션’은 그런 격차나 모순들의 해결을 요구하고, ‘스테이트’는 재분배로 그것을 실행한다. 그러니까 근대의 사회구성체는 이 삼위일체의 회로 속에 갇혀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애초 각 나라에서 일어나는 자본과 국가에 대항하는 움직임들의 연합(‘어소시에이션’)이 이 삼위일체의 회로에서 벗어날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을 제시했으나, 2001년 9·11 이후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국가나 네이션이 단순히 ‘상부구조’가 아니라 능동적 주체로서 활동하기 때문에 자본과 국가에 대한 대항운동은 일정 단계를 넘어서면 반드시 분열된다”는 점을 통감한 것이다. 그는 그 뒤 2006년 <세계공화국으로>를 통해 국가 외부에서 국가를 소멸시킬 힘을 고민하고, 그 방향점을 ‘세계공화국’이란 이념으로 제시하게 된다.
가라타니 고진(69)
■ 나는 시부모에게 결투신청 하기 싫어요
■ 백낙청 신년사 “패배는 쓰라리지만 국민은 훌륭했다”
■ 신혼여행 다녀오니 ‘해고’…“넌 결혼하지 마!”
■ 한지혜 “메이퀸 마지막회, 사실 입이 안 떨어졌다”
■ 네오위즈, 사장은 인수위 청년위원 됐는데…
■ 비정규직 딱지 떼고…서울시 공무원 됐습니다
■ 공작새가 짝짓기 직전 소리지르는 이유는…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