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늦게 피는 꽃이다
김인숙 지음/휴·1만3000원
김인숙 지음/휴·1만3000원
명화는 생후 2개월째 포대기에 싸여 고모집 앞에 버려졌다. 그 뒤 엄마는 한번도 소식이 없었다. 세 살 때까지 고모와 할머니 손에 크다가 아버지에게 맡겨진 명화는 끊임없이 바뀌는 다섯 명의 새엄마를 거쳐 초등학교 5학년에 강원도 산골 보육시설로 보내졌다.
물 설고 낯선 땅에서 열다섯 살 소녀로 자란 명화는 늘 혼자였고,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다. 사춘기 명화의 소원은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다. 중2 봄소풍날 도시로 나와 배고픈 명화에게 달려든 남자 어른들은 마음껏, 욕심껏 농락하고 돈 몇푼을 던져주었다. 명화가 작은 몸으로 ‘아저씨, 외로워요. 저에게 사랑을 주세요’ 애원했지만 알아듣는 어른은 없었다. 어느날 명화는 아빠 같은 아저씨에게 옥탑방으로 끌려가 2년 반 동안 밤엔 욕정받이로, 낮엔 돈벌이에 내몰리다가 도망쳐 나왔다.
명화는 신간 <너는 늦게 피는 꽃이다>에 등장하는 수많은 꽃들 중 한 명이다. 지은이 김인숙 수녀는 소년원행 대신 감호위탁처분을 받은 아이들을 돌보는 마자렐로 센터에서 수많은 명화들과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살레시오수도회의 사제와 수도자들이 운영하는 어린이와 청소년 시설에도 가족이 있는 평범한 삶을 천국처럼 꿈꾸는 수많은 명화들이 있다.
아이들과 수도자 한 명 한 명을 직접 취재해 소설보다 더 소설처럼 쓴 책을 읽노라면 내버려져 벼랑 끝에 선 아이들의 마음에 함께 절규하고, 울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남을 이겨보겠다고 더 잘살아보겠다며 현실에 터뜨린 불만이 그런 아이들에게 얼마나 미안한 짓인지 절감하게 한다. 또한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모를 ‘문제아’가 돼버린 아이들의 모습은 ‘내 자식은 공부도 못하고 왜 이 모양이냐’는 한탄을 부끄럽게도 한다.
그러나 그게 이 책의 전부는 아니다. 여기엔 도저히 어찌해볼 수 없을 것 같은 아이들을 껴안고 예방교육으로 만들어낸 기적 같은 실화들이 담겨 있다. 아이들보다 앞서 가 환대하며 맞는 ‘예방교육’은 살레시오회를 설립한 돈 보스코 성인(1815~1888)의 가르침에 따른 것이다. 살레시오회 소속이던 이태석 신부가 아프리카 남수단에서 흑인 아이들을 치유해 거듭나게 만든 바로 그 방법이다.
이들이 현재도 이루어내는 사랑과 변화의 기적은 교실이 붕괴되고 가정 교육이 길을 잃은 한국 사회에 놀라운 선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내 아이는 어떻게 해도 구제 불능’이라고 좌절하고 포기하는 부모들에겐 희망의 섬광을 비춘다. 삶의 벼랑 끝에서 자신과 남을 사랑하기보다는 해치는 데 익숙한 아이들조차 마침표를 찍지도 포기하지도 않고, 그 뿌리 속 생명력을 믿는 수도자들과 함께 마침내 봄을 맞는 모습이 짜릿한 감동을 전한다.
아프고 슬픈 아이들의 엄마 아빠가 되어준 수도자들은 “너는 안 돼!”라고 결코 말하지 않는다. 대신 “바로 ‘너’이기 때문에 사랑한다”고 말한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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