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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주자학 깨치고 주자학 비판한 진사이

등록 2013-02-01 19:57수정 2013-02-01 22:21

이토 진사이(1627~1705)
이토 진사이(1627~1705)
에도시대 대표 학자 책 첫 번역
주자학 형이상학 전통 벗어나
실천윤리로서 유학 해석·수용
동자문-주자학이 아닌 유학을 묻는다
이토 진사이 지음, 최경열 옮김/그린비·2만3000원

이토 진사이(1627~1705·그림)는 오규 소라이(1666~1728)와 함께 일본 에도시대를 대표하는 유학자로, 일본 근대 사상사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겼다. 그는 당시 동아시아의 주된 사상 흐름이었던 주자학에 대한 비판을 통해 유학을 자기 식으로 이해하는 새로운 길을 처음 텄다. 바로 뒷세대인 오규 소라이는 그의 영향을 받아 아예 ‘반주자학’을 내세우며 본격적으로 ‘유학의 일본화’를 추구했다. 오늘날 일본 사상사 권위자인 사카이 나오키(66) 미국 코넬대 교수도 18세기 일본의 담론 형성을 추적한 <과거의 목소리>에서 이토 진사이 사상을 집중 조명한 바 있다.

진사이는 원래 자신의 호를 ‘교사이’(敬齋)라고 지을 정도로 주자학, 특히 조선의 성리학에 심취했다고 한다. ‘경’(敬)은 성리학의 핵심적인 수양 방법을 뜻한다. 그러나 청년 시절 긴 은둔 기간을 거친 뒤 그는 자신의 호를 ‘진사이’(仁齋)로 바꾼다. 여기에서 ‘진’(仁, 인)은 <논어>가 품고 있는 핵심 사상을 가리키며, 이와 같이 호를 바꾼 데에는 성리학에 얽매이지 않고 <논어>로 대표되는 유학의 본령을 자기 식으로 추구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논어> <맹자>와 같은 성인의 가르침을 직접 읽고 원뜻을 구하겠다는 진사이의 노력은 ‘고의학’(古義學)이라 불리는 독창적인 학문 흐름을 만들어냈다.

진사이의 책으로는 국내 처음 완역된 <동자문>은 이런 그의 학문적 성취를 고스란히 담은 대표 저작이다. 어린아이와의 문답을 통해 자신의 사상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형식으로 돼 있으며, <논어> <맹자>에 담긴 성인의 진정한 가르침이 무엇인지 밝혀주는 과정에서 도가·불가 사상뿐 아니라 당시 도쿠가와 막부가 통치 이념으로 삼고자 했던 주자학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들이댄다. 고의학의 관점으로 <논어> <맹자>에 대해 직접 풀이를 시도했던 <논어고의> <맹자고의> <어맹자의> 등 그의 다른 책들도 ‘이토 진사이 선집’으로 묶여서 출간될 예정이다.

<동자문>에서 드러나는 진사이 사상의 고갱이는 ‘실’(實), 곧 ‘실질적인 것’에 대한 강조다. 그 대척점에는 주자학이 매달려왔던 유학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풀이가 있다. 진사이는 성인의 도리가 송나라 유학자들이 강조하는 것처럼 ‘고원한’(높고 먼) 것이 아니라 ‘비근한’(낮고 가까운) 것이라고 보고, “(일상생활에서 쓸 수 있는) 실질적인 덕(實德)을 알고 난 다음에 비근을 숭상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며, 비근을 숭상할 수 있게 된 다음에야 <논어>의 오묘한 경지를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곧 공자의 가르침은 일상생활에서 실제로 알 수 있고 행할 수 있는 도리를 말할 뿐인데, 현실에서 벗어난 무익한 논의들은 모두 이런 가르침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진사이는 성인의 가르침을 직접 담고 있는 <논어>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논어>의 핵심은 ‘인’(仁)이라고 짚는다. 그는 “인은 곧 ‘사랑’(愛)이며, 실질적인 덕(實德)”이라고 풀이한다. 진사이의 해석은 인을 “‘마음의 덕’(心之德)이며 ‘사랑의 이치’(愛之理)”라고 봤던 주자의 시각과 비교된다. 주자학에서는 인이라는 본체와 그것을 움직이는 이치를 따로 상정했지만, 진사이는 아예 그런 구분을 두지 않은 것이다. 이에 대해 옮긴이는 해제에서 “진사이는 인을 자신의 마음속에 내재된 덕성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에서 베풀게 되는, 인간관계의 구체성 속에서 볼 수 있는 덕성으로 풀이했다”고 설명한다. 곧 주자학의 형이상학 전통에서 벗어나 “사회의 실천윤리로 유학을 해석하고 수용했다”는 것이다.

진사이의 이런 면모는 주자학의 핵심 개념인 ‘이’(理·이치)를 직접 공격하고, 이에 맞서 세상이 하나의 살아 있는 거대한 생물이라는 ‘천지일대활물’(天地一大活物) 사상을 펴는 데에서도 두드러진다. 그는 “‘이’는 만물에 존재하기는 하지만 만물을 주재할 수 없는 죽은 글자”라며 “천지는 하나의 거대한 생물이라서 ‘이’ 하나로 다 덮을 수 없다”고 말한다. 또 “(북송대 주자학을 일으킨) 정씨 형제와 주희(주자)는 천도를 논하면서 오로지 ‘이’로 결단했으니 천도를 죽였다고 말할 수 있다”고 맹비판하기도 한다.

주자학에 통달했으면서도 그 전통을 반성적으로 검토하고, 고전을 직접 다시 풀이하려 했으며 구체적인 인간의 삶을 근거로 한 ‘실학’을 내세웠다는 점에서 진사이는 여러모로 조선의 실학자 정약용(1762~1836)을 떠올리게 만든다. 진사이 사상이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되면서, 17~18세기 동아시아권의 사상 흐름에 대해 한층 더 깊은 연구 성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그림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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