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피를 나눠야만 가족이 되는 것도 아니고, 가족이라야만 서로 돌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살아 있는 존재라면 무엇이든 다른 존재와 어우러질 수 있고 서로를 돌볼 수 있다.
‘농부철학자’ 윤구병씨가 전북 부안군 변산 땅으로 가 ‘변산교육공동체’라는 농촌 공동체를 일구기 시작한 지 벌써 18년이 흘렀다. 그는 최근 펴낸 그림책 <다복이>에 담긴 작가의 말에서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새끼 고양이를 수탉이 깃털로 따뜻하게 감싸주는 모습을 봤다”고 했다. 아무리 어리다지만 사나운 짐승 무리에 드는 고양이를 닭이 품에 품다니, 있을 수 없는 일 같지만 윤씨가 직접 목격한 사실이라 한다. <다복이> 역시 그가 변산공동체에 살면서 직접 겪은 일들을 담은 책이다. 살아 있는 존재라면 누구나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는 메시지도 겹친다.
아빠 없이 태어난 다복이는 직장을 다니는 엄마 손에서 자랐다. 다복이 엄마는 가까운 동무로부터 “이 험한 도시에서 혼자 애를 어떻게 키우려고 그래?” 하는 말을 들었을 때 “이것도 ‘다 복’이라고 여긴다”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그렇지만 생계를 꾸리면서 다복이까지 보살피는 것은 다복이 엄마에게 너무도 힘든 일이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조그만 가게를 냈지만 하루 두 끼 라면도 사먹기 힘들 정도로 장사가 안됐다. 결국 새 직장을 찾아나서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책을 파는 일을 얻었지만, 대신 한 해 가까이 다복이를 집에 홀로 둬야 했다. 세살이 됐을 때 다복이는 걷기도 힘들어하고 고개를 잘 들지 못했다고 한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었던 그때 다복이 엄마는 시골에 있는 공동체 마을을 알게 됐고, 다복이와 더불어 공동체 마을에서 살게 됐다. 그 뒤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엄마만 찾는 연약한 울보였던 다복이는 튼튼하고 잘 웃는 아이가 됐고, 다섯살 때에는 새아빠를 얻었다. 엄마 아빠 손에 매달려 그네를 뛰며 큰 웃음을 지을 정도로 행복하게 된 것이다.
담담한 이야기 속에 윤구병씨와 변산공동체의 철학이 짙게 배어들어 있다. “모든 아이들은 보살핌을 받으며 행복하게 자라야 한다”는 것이다. 동물들마저 제 피붙이가 아닌 동물의 새끼를 감싸는데, 공동체가 무너진 우리들 세상에선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너무 많다는 지적이다. 다복이를 보살피고 싶지만 그럴 형편이 안 되는 다복이 엄마의 처절한 현실은 서로를 보살피는 공동체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드러내어 준다.
윤씨는 “어른들이 먼저 읽고 함께 느끼고 생각하며 머리를 맞대자고” 이 책을 지었다고 한다. 좋은 세상은 저절로 오지 않으며, 아이들의 밝고 행복한 미래는 무엇보다 어른들의 생각과 노력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그림 휴먼어린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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