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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할 수 없는 것 사유하면 새로운 사유 가능할 것”

등록 2013-02-26 19:59

학술연구공동체인 수유너머엔(N) 주최로 열리는 ‘부정신학-사유 불가능한 것에 대한 사유’ 강좌를 맡은 손기태씨가 25일 서울 연희동 수유너머엔 세미나실에서 ‘부정신학’의 현대적 의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학술연구공동체인 수유너머엔(N) 주최로 열리는 ‘부정신학-사유 불가능한 것에 대한 사유’ 강좌를 맡은 손기태씨가 25일 서울 연희동 수유너머엔 세미나실에서 ‘부정신학’의 현대적 의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수유너머N 손기태 연구원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중세 기독교 철학을 거쳐 현대 철학에 이르기까지, 서양철학의 주된 주제는 ‘신’이었다. 모든 존재의 근거인 신을 탐구한다는 것은 존재 자체를 사유하는 것과 통했다. 그런데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무한한 존재인 신을 사유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이 문제는 많은 사상가들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 있다.

학술연구공동체인 ‘수유너머엔(N)’은 다음달 4일부터 ‘부정신학-사유 불가능한 것에 대한 사유’라는 제목의 새 강좌를 연다. 지난 2년 동안 펼쳐온 ‘불온한 인문학’ 프로젝트의 하나다. 신학, 특히 이름도 생소한 ‘부정신학’을 주제로 삼았다는 점이 이채롭다. 25일 서울 연희동 ‘수유너머엔’ 세미나실에서 이 강좌 강사를 맡은 손기태(44) 연구원을 만났다.

“부정신학이란 단순하게 말해서 ‘사유할 수 없는 것을 사유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습니다. 부정신학을 다루기로 한 것도 기존 학문 체계나 개념틀 같은 통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유를 찾아보자는 취지죠.”

부정신학과 긍정신학은 신학에서 신을 사유하는 두가지 큰 갈래다. 쉽게 말해 “신은 완전하다, 신은 선하다, 신은 절대자다” 등 어떤 개념으로 신을 인식하려는 시도가 긍정신학이라면, “신은 어떠한 것이 아니다”라는 극히 제한적인 서술로 신을 파악하려는 것이 부정신학이라 할 수 있다. 곧 부정신학은 유한한 인간 존재의 인식을 초월한 신을 어떤 개념틀 안에 가두는 데 반대하는 흐름이다.

인간 인식 초월한 무한한 존재인 신
특정 개념에 가두지 않는 ‘부정신학’
하이데거 등 7명의 철학자 사상 연구
수유너머N 다음달 4일부터 새 강좌

긍정신학은 중세 형이상학의 기틀을 마련했고 그 뒤로도 서양 정신사의 압도적 흐름으로 이어져왔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은 이를 집대성한 기념비적 저작이다. 반면 부정신학은 ‘신을 지나치게 신비화한다’는 비판을 받으며 띄엄띄엄 그 흐름을 이어왔다고 한다.

“부정신학은 긍정신학과 달리 어떤 체계가 갖춰진 학문 영역이 아닙니다. 그래서 다양한 사상가들의 입장이나 태도 속에 녹아 있는 부정신학을 직접 발견해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번 강좌에선 사상가 7인을 살피며, 그들이 남긴 텍스트 가운데 부정신학과 관련된 것을 발췌해 읽을 예정이다. 3세기 신플라톤주의 철학자인 플로티노스, 5세기 철학자인 위(僞)디오니시우스(사도 바울이 아테네에서 개종시킨 디오니시우스라는 인물의 이름을 사용한 익명의 저자), 13세기 가톨릭 신비주의 사상가 에크하르트, 르네상스 신학자 니콜라우스 쿠자누스와 같은 고대·중세 철학자들은 물론이고, 마르틴 하이데거, 모리스 블랑쇼, 자크 데리다 같은 현대 철학자들도 있다.

예컨대 “존재하는 모든 것이 우리와 하나인 것(절대자)으로부터 나왔다”고 본 플로티노스의 관점을 부정신학 연구에 참조할 수 있다고 한다. 그는 빛이 태양에서 나오듯 모든 존재가 하나의 절대자로부터 비롯하지만, 태양과의 거리에 따라 빛의 밝기가 다르듯 각각의 존재들은 다 구분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분리되지 않지만 구분이 가능한 ‘유한과 무한의 공존’을 탐구해 인식불가능한 것을 인식하려는 시도를 보여줬다”는 것이다. 위디오니시우스와 에크하르트, 쿠자누스 등도 그 방향성은 각각 다르지만 저마다 신을 인식하기 위한 ‘부정의 길’을 보여줬다고 한다.

부정신학에 현대적 의미를 부여한 인물은 서구 형이상학의 역사 전체와 맞서려 했던 하이데거였다. ‘긍정의 길’에서 비롯한 서구 형이상학은 ‘주체-대상’의 관계에 매몰된 근대적 사유를 낳았다. 하이데거는 여기에 갇히지 않고 ‘존재’ 자체를 사유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손 연구원은 “하이데거는 ‘내가 어떻게 사유하느냐’를 넘어 ‘존재 자체가 어떻게 사유를 만들어내느냐’에 주목했다. 그의 존재론은 사유 불가능한 신을 사유하려 했던 부정신학의 현대적 의미를 끌어냈다”고 말했다. 문학·정치평론가인 모리스 블랑쇼에게서는 “내 인식 범주에 들어오지 않는 ‘낯선 것’(외부)에 대한 끊임없는 글쓰기”를, 해체론으로 유명한 자크 데리다로부터는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고 보여주는 방식들”을 부정신학의 흐름으로 짚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부정신학을 공부하는 배경에는 그동안 수유너머엔에서 계속해온 ‘차이의 철학’에 대한 탐구도 엿보인다. 하나의 체계로 줄세울 수 없는 존재의 다양성을 새롭게 사유하려는 시도다. “부정신학은 앎의 구축을 통해 사유 불가능한 것들을 소거하지 않고, 사유 불가능한 지점을 계속해서 드러내는 방식을 보여줍니다. 여기에서부터 새로운 사유의 가능성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요?”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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