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게더-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리처드 세넷 지음, 김병화 옮김/현암사·1만8000원
리처드 세넷 지음, 김병화 옮김/현암사·1만8000원
노동·도시화 연구 권위자 세넷
‘비협동 자아’ 낳는 자본사회서
협력을 만들어내는 기술 제시 진화심리학과 생물학, 사회학, 정치학, 경제학, 인류학 등 분과학문의 경계를 가리지 않고 ‘공유’와 함께 ‘협력’이란 단어가 주목받고 있다. 그 배경은 두말할 나위 없이 전쟁과 불평등, 빈곤과 같이 그칠 줄 모르는 자본주의 체제가 낳고 있는 수많은 고통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원래 협력하는 유전자를 갖고 있다’고 규정하거나 협력을 윤리적으로 긍정적인 특성으로 단정하는 것만으로 오늘날 협력의 진정한 의미를 밝히는 데엔 부족함이 있다. 노동·도시화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미국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70·사진)의 <투게더-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는 색다르고 폭넓은 접근을 통해 협력의 사회학적 의미를 고찰한 책이다. 이 책은 세넷이 구상하고 있는 ‘호모 파베르 프로젝트’의 두번째 책이기도 하다. 인간이 스스로의 삶을 만들어내는 데 필요한 기술에 대해 설명하려는 프로젝트로, 인간이 물질적인 것을 만들어내는 기술에 대한 책인 <장인>(21세기북스)이 이미 국내에 소개된 바 있다. 이번에 나온 <투게더>는 인간이 사회적인 협력을 만들어내는 기술에 대한 책이다. 이 책은 전근대, 르네상스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협력과 관련된 무수한 사례와 이론을 끌어다 펼쳐놓는데, 이를 관통하는 지은이의 주된 문제의식은 협력이 ‘사회적인 것’을 구성하는 원리가 될 수 있다는 것과 이를 위해서는 협력을 하나의 ‘실기’(實技, craft), 곧 기술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1장 첫머리에서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펼쳐졌던 작은 전시회, ‘뮈제 소시알’(사회박물관)의 모습을 그려낸다. ‘산업과 제국의 승리’를 축하하는 요란한 만국박람회 속에서 뮈제 소시알은 자본주의와 그로 인해 나타나는 불평등과 억압에 대항해 ‘사회란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가’ 하는 원초적인 질문을 던졌다는 것. 여기서 지은이는 ‘연대’에 대한 두 가지 서로 다른 좌파의 해석을 발견해내는데, 하나는 독일 노동조합 운동에서 나타나는 중앙집권적 ‘하향식’ 연대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의 지역 작업장 운동에서 나타나는 ‘상향식’ 연대다. 흔히 ‘정치적 좌파’와 ‘사회적 좌파’로 구분될 수 있는 이 두 흐름에서 지은이는 협력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 차이를 지적해낸다. 곧 정치적 좌파가 협력을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다면, 사회적 좌파는 협력 자체를 하나의 목적으로 받아들이려 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갈랫길은 ‘서로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함께 일하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한다면 언제든 나타나는 딜레마인데, 지은이는 통일성보다는 포괄성에 뜻을 두는 사회적 좌파를 더 주목해서 본다. 미국의 공동체 조직가였던 솔 앨린스키(1909~1972)나 미국 사회당 지도자였던 노먼 토머스(1884~1968) 등을 주요하게 언급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정치적 좌파와 사회적 좌파의 비교와 함께 이 책의 중요한 모티프가 되는 것은 ‘변증법적 대화’와 ‘대화적 대화’의 비교다. 그리고 ‘공감’과 ‘감정이입’의 비교다. 변증법적 대화가 서로의 공통된 것을 감지해내어 하나의 종합으로 향해 간다면, 대화적 대화는 어떤 합의를 전제하기보다는 서로의 차이를 포괄하여 이해를 넓혀간다는 특징을 가진다. ‘난 너의 고통을 똑같이 느낀다’는 공감은 타인과의 동일시를 전제하는 반면, 감정이입은 ‘나는 네가 느끼는 고통에 관심을 쏟는다’며 너와 나의 구분을 전제하면서도 서로에게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연다.
지은이는 이런 비교의 구도에서 대화적 대화와 감정이입에 더 무게를 싣는데, 이들이 현대 사회에서 약해질 대로 약해진 협력의 기술을 갈고닦는 데 더 도움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불평등이 만연하고 노동 공간에서 사회적 관계를 제거하는 현대 사회가 남과의 차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자기 안으로 움츠러드는 ‘비협동적인 자아’를 낳고 있다고 진단했다. 때문에 지은이는 협력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인 것’을 되살리기 위해선 나와 남의 차이에 기초한 대화적 대화, 감정이입이 더욱 필요하다고 보며, 이런 능력은 어떤 이념이나 제도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삶의 ‘작업장’에서 ‘실기’로서 얻어질 수 있다고 한다.
지은이는 “20세기는 연대의 이름을 내걸고 협력을 왜곡했다”고 진단한다. “경제적 불안정 속에서 확신감을 되살리려는 연대감에 대한 요구가 사회적 생활을 잔인할 정도로 단순하게 만드는 효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적인 것’을 이룰 수 있는 인간의 원초적인 역량에 더욱 주목해보자는 제안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사진 <현암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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