쑨거 중국 사회과학원 교수가 1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에서 이번 방한 때 특별강연하는 ‘방법으로서의 중국’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중국문학을 공부하다가 일본 사상사 연구로, 또 아시아 담론으로 자신의 연구 영역을 꾸준히 확장시켜 온 그는 최근 한국의 사상적 자원들을 탐사하는, ‘방법으로서의 한국’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중국 사회과학원 쑨거 교수
아시아는 하나의 실체가 아니라
다양한 경험 교차하는 ‘사유공간’
서구 중심주의 인식틀 비판하는
‘방법으로서의 아시아’ 담론 펴
백낙청 ‘분단체제론’ 깊은 인상
아시아는 하나의 실체가 아니라
다양한 경험 교차하는 ‘사유공간’
서구 중심주의 인식틀 비판하는
‘방법으로서의 아시아’ 담론 펴
백낙청 ‘분단체제론’ 깊은 인상
근대성, 이성, 개성, 자유, 민주와 같은 개념들이 과연 한국이나 중국, 일본과 같은 나라의 역사와 현실을 적확하게 설명해줄 수 있는가? 이런 의문을 갖는 이들 중 일부는 ‘서구 중심주의’를 비판하면서 아시아를 아우를 수 있는 거대 이론을 정립하려 애쓴다. 그렇지만 과연 ‘아시아’라는 실체는 존재하는 것일까? 이런 시도 또한 서구 중심주의의 틀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닐까?
아예 이렇게 쏟아지는 물음들이야말로 ‘아시아’라고 해보면 어떨까? 고정된 아시아를 정의하거나 규정하는 데 붙들리지 않고, 아시아를 끊임없는 비교와 물음이 만들어지는 장소로 만들어보는 것이다. 전후 일본의 사상가 다케우치 요시미(1910~77)는 일찍이 이처럼 아시아를 ‘방법’으로 삼아 일본의 근대를 따져묻는 작업을 펼쳤다. 쑨거(57) 중국 사회과학원 교수는 이런 지적 전통을 이어 오늘날 가장 심도 깊게 ‘방법으로서의 아시아’를 고민하고 연구하고 있는 학자로 꼽힌다.
방한 중인 쑨거를 14일 서울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에서 만났다. 이 연구원 초청으로 한국에 온 그는 지난 6일부터 매주 수요일에 한 달 동안 ‘방법으로서의 중국’이란 제목으로 특별강연을 펼치고 있다.
먼저 쑨거는 자기 연구의 주된 목적이 새로운 ‘인식론’을 만드는 데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어떤 국가든 사회든 인식 상대를 나와 관계 없는 외재적인 개체라고 생각하면, 상대를 숭배하거나 무시하게 되어 ‘평등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없습니다. 때문에 다케우치 요시미나 미조구치 유조(1932~2010) 같은 일본의 사상가들은 일본인이 일방적으로 미국을 숭배하는 현상을 보면서 어떻게 중국이나 아시아를 방법으로 삼아 이런 함정에 빠지지 않을까 고민했죠.”
인식 상대 속에 있는 내재적인 논리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한편, 이를 지렛대로 삼아 보편적인 것을 발견해내려는 시도가 그의 연구의 핵심이다. 얼핏 ‘모든 국가와 사회는 고유한 논리가 있다’는 문화 상대주의처럼 보인다. 하지만 쑨거의 연구는 그런 역사적 경험들의 비교와 소통을 ‘보편성’을 추구하기 위한 기본적인 틀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전혀 다른 차원의 과제를 제시한다. 일본 정치사상사 연구자인 그는 중국의 경험을 통해 일본의 근대를 사유했던 다케우치 요시미의 인식론에 영향을 받아, 서로 다른 경험들을 ‘역사화’하여 만나게 하는 가운데 새로운 사상과 지식이 형성될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해왔다. 예컨대 오늘날 중국 사회의 양극화와 관료체제의 부패 문제를 세상 어디에나 있는 ‘자본주의의 문제’로 풀이하는 것은 어떤 사상과 지식을 만들어낼 수 없으며, 중국의 경험과 다른 나라의 경험들을 ‘역사화’시켜 실질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절실하다는 입장이다.
“서구의 좌파 지식인들이 ‘다원화’를 얘기하지만, 전 세계 지식 생산의 흐름은 여전히 협소한 일원화 논리를 따르고 있습니다. 비서구 지역에서 재료를 찾아내어 서구 이론과 끼워맞춘다든가, 서구 중심주의를 비판한다면서 그것에 대립하는 이론만 찾아내어 제시한다든가 하는 흐름이 대표적이죠. 아시아의 사상은 이를 벗어나 진정한 의미의 다원화 원리, 곧 ‘다원화된 보편성’을 만들어내는 데 그 의의가 있습니다.”
‘방법으로서의 아시아’나 ‘방법으로서의 중국’과 같은 담론에서 나타나듯, 이런 인식론을 펼치기 위해서 아시아는 하나의 실체라기보다는 ‘사유 공간’으로 제시된다. 서로 다른 다양한 역사적 경험이 교차하는 공간을 떠올리는 것을 통해, 상대를 객관적이고 평등하게 인식하는 가능성을 탐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쑨거가 아시아 전역을 무대로 삼아 다양한 국가·사회의 지식인들과 교류해온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 정치사상사 연구자로서 그는 1990년대 후반에 미조구치 유조와 함께 ‘중일 지식공동체’를 조직한 바 있다. 또 대만과 한국의 다양한 연구자들과도 끈끈한 교류를 이어왔다.
이번 방한 목적도 ‘방법으로서의 한국’을 연구하는 길을 닦기 위한 것이라 한다. 한국어를 못 한다는 언어 장벽이 있긴 하지만, 중국 사회에 초보적인 단계나마 ‘방법으로서의 한국’을 제시하고 싶다고 했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의 <분단체제론>과 백영서 연세대 교수의 <동아시아를 사유하다>를 읽고 서평을 쓴 적도 있습니다. 특히 백낙청 교수의 분단체제론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는데, 국민국가·민주국가와 같은 서구 이론의 틀이 아닌 독자적인 풀이법으로 논술을 전개해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인식론을 가다듬기 위한 고민을 볼 수 있었습니다.”
쑨거는 학자로서 자신의 구실을 “예리한 관찰력과 독자적인 사고력을 바탕으로 삼아 사람들이 모두 상식으로 여겨오던 인식 방식을 없애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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