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구구 스니커즈
김유 지음, 오정택 그림
창비·9000원
김유 지음, 오정택 그림
창비·9000원
어린이책의 고전 가운데 ‘캐릭터’ 자체에 마법과도 같은 매력을 부여한 책이 있다. 얼굴 가득한 주근깨와 짝짝이로 신은 긴 양말, 두 갈래로 땋은 빨강머리와 어린아이라 믿을 수 없는 엄청난 힘. 바로 ‘삐삐’가 나오는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이다. 관습적인 고정관념을 깨는 삐삐의 자유롭고 상상력 넘치는 말과 행동은 전세계 어른과 아이를 모두 매혹시켰다.
17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에서 저학년 부문 대상을 받은 <내 이름은 구구 스니커즈>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삐삐 롱스타킹’에 대한 ‘오마주’(존경을 담아 비슷하게 따라하는 것)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캐릭터는 ‘구구 스니커즈’다. 구구는 배추처럼 곱슬곱슬한 머리에 늘 스니커즈(운동화)를 신고,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기상천외한 생각을 떠올린다.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었지만, 구구는 자신이 고아가 아니며 엄마 아빠가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올 것이라 생각한다는 사실을 보면 그의 기발함을 알 수 있다.
부모를 잃은 뒤 구구는 먼 친척인 키다리 아저씨의 집에서 살게 되는데, 동네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면서 구구의 본격적인 모험이 시작된다. 무지막지하게 공부를 시켜대는 통장 아줌마의 아들인 ‘에이뿔따구’, 머리를 잘 안 감는 ‘떡진머리’, 손재주가 으뜸이나 늘 코딱지를 파는 ‘코딱지’와 같은 친구들이 구구의 모험에 함께한다. 삐삐 롱스타킹처럼 구구 스니커즈는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읽는 이들에게 해방감을 선사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아빠가 없는 떡진머리가 다른 아이들에게 ‘아빠 없는 아이’라고 놀림을 당했다. 에이뿔따꾸는 “아빠 없는 게 무슨 잘못이라고!”라고 화를 내지만, 구구의 접근법은 전혀 다르다. 구구는 울거나 화내는 대신 “걱정 마. 아빠를 만들면 돼!”라고 한다. 눈썹이 치켜 올라가고 눈이 부리부리한 ‘아빠 가면’을 만들어서, 이걸 쓰고 떡진머리를 놀린 아이들을 혼내주는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구구의 후원자로 나선 스니커즈 회사 사장은 형식적인 위선만 부리는 인물이다. 구구는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 있는 스니커즈’ 사업을 벌여 사장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준다. 그 덕에 구구는 다른 스니커즈 회사로부터 ‘스니커즈 발견가’로 스카우트된다. 어린이의 자유로운 생각을 키우고 못된 어른을 통쾌하게 골려주는 구구의 모습에 삐삐 롱스타킹의 모습이 겹친다.
무엇보다도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유쾌하고 시원한 에너지가 읽는 아이들에게도 옮아갈 듯하다. 훈계하고 가르치려 들고 입바른 소리만 하는 책들이 넘치는 가운데 구구 스니커즈의 모험담은 한줄기 청량한 매력으로 다가가지 않을까. 당당하고 씩씩한 ‘한국형’ 삐삐 롱스타킹의 탄생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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