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자학이 배척한 묵자 사상 수용
신분제 철폐 등 ‘평등애’ 적극 추구
‘홍대용은 북학파’ 고정관념 깨뜨려
신분제 철폐 등 ‘평등애’ 적극 추구
‘홍대용은 북학파’ 고정관념 깨뜨려
조선 후기 실학자인 담헌 홍대용(1731~83)은 초정 박제가(1750~1815), 연암 박지원(1737~1805)과 같은 학자들과 함께 언급되며, 주로 ‘북학파’의 영수 또는 선구자로 알려져왔다. 자연과학 연구에 독보적인 업적을 쌓았고 ‘지전설’(지구는 돈다)과 ‘지구설’(지구는 둥글다)을 주장했기에, 담헌에 대한 연구는 주로 자연과학과의 연관에 주목해 진행됐던 측면도 있다.
박희병 서울대 교수(국문학)는 <범애와 평등-홍대용의 사회사상>에서 이런 담헌에 대한 기존 통념들을 와르르 무너뜨린다. 오랫동안 담헌을 연구해왔던 지은이는 담헌에 대해 그 동안 간과됐던 측면들을 부각시킨다. 특히 담헌이 그 당시 주류 학문인 유학, 특히 주자학에서 배척했던 묵자 사상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새롭게 조명했다. 이런 풀이에 따라 담헌은 북학파나 연암학파와는 다른, 18세기 동아시아에서 꼽을 정도의 독특한 사상적 지위를 얻게 된다.
여느 조선 학자들처럼 주자학을 학문의 기초로 배웠던 담헌은 서른다섯살 때인 1765년 중국 베이징을 여행했다. 이 여행은 담헌에게 큰 영향을 끼쳤는데, 지은이는 “담헌은 ‘중국’이라는 텍스트를 주의 깊게 읽음으로써 ‘조선’의 현실을 직시할 수 있었고, 조선에서는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던 제도상의 여러 문제점과 모순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고 말한다. 당연한 것으로 주어졌던 주자학의 테두리를 넘어, 서학과 다양한 사상들과의 조우를 통해 자신만의 사상을 주체적으로 만들어나갈 계기를 얻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담헌의 이러한 지적 여정을 ‘공관병수’(公觀倂受)라는 말로 집약해 설명한다. ‘공평무사한 눈으로 보아 다른 사상의 장점을 두루 받아들인다’는 뜻으로, 이는 기존의 인식틀과 사유의 패러다임을 뛰어넘으려 했던 담헌의 시도를 가장 잘 드러내는 말이라는 것이다.
담헌이 창조적으로 받아들인 사상들은 주자학부터 유형원과 이익의 실학, 서학, 양명학 등까지 다양하지만, 이 가운데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묵자와 장자의 영향이다. 묵자는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사랑하는 ‘겸애’, 곧 ‘평등애’를 주장했는데, 이는 유가의 본령인 ‘인’, 곧 ‘차등애’와 배척되는 것이었다. 담헌은 주자학을 유일한 진리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버렸기에 묵자의 ‘평등’ 이론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또 장자의 상대주의적 관점을 방법론으로 빌려오면서, “‘존재론적 평등’에 ‘인식론적 상대주의’라는 길을 깔아줬다.” 곧 인식론적으로 자기 중심주의를 해체하는 상대주의를 방법으로 삼아 존재론적으로 평등을 추구하는 사상을 정초했다는 것이다.
더구나 지은이는 담헌이 묵자의 ‘겸애’ 개념에 그치지 않고 이를 더욱 확장시켰다는 점에 주목했다. 묵자가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만 초점을 맞췄다면, 담헌은 평등의 개념을 사람과 사물의 관계에까지 적용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지은이는 담헌의 사상적 지향점을 ‘범애’라는 말로 일컫고, 이를 통해 인간 중심주의마저도 극복하려 한 사상·학문적 시도를 집중 조명한다.
담헌의 이런 생각은 사회 제도 개혁을 위해 쓴 <임하경륜>과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논의를 펼친 <의산문답>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임하경륜>에서 담헌은 토지의 균분과 ‘만민개로’(누구든 일을 해야 한다), 신분제 철폐 등을 주장하는데, 그 바탕에는 평등을 실현하고자 하는 지향점이 녹아 있다. 특히 ‘절검’(줄이고 아끼는 것)의 가치를 역설한 데에서는 생산력 제고를 추구했던 당시 북학파와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의산문답>에서 논의되는 지구설도 달리 풀이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지구설은 ‘지구는 둥글다’는 건조한 명제가 아니라, 사실상 중심과 주변이 따로 없다는 상대주의적 깨달음과 이를 통해 나와 너의 평등과 공생에 대한 고민을 이끌어내는 사상적 분투인 것이다.
지은이는 “담헌의 사상을 어떤 외부적 이론이나 지식의 결과물로 환원시켜선 안 되며, 여러 사상의 계기들을 주체적으로 포섭하고 변용하면서 새로운 사상을 창조해 간 담헌의 실존적 고민과 사상가로서의 창의적 면모를 읽어내야 한다”고 말한다. ‘홍대용은 북학파’라는 통념에 대한 문제 제기이다. 이에 따라 담헌의 실질적인 사상과 학문을 오늘날 과연 어디에 위치시킬지에 대한 고민이 찾아온다. 지은이는 ‘사상에 대한 비교 연구’를 통해 18세기 동아시아의 전체 흐름 속에서 담헌을 파악해야 할 절실한 필요성을 제기하며, “담헌 연구는 이제서야 시작됐다”고 말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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