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역사 식구들은 조용한 성격까지 닮아 보였다. 왼쪽부터 정호영·조현주·이보용·신상미·박혜숙·안혜연·허태영·변재원씨.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작지만 강한 출판사 ③ 푸른역사
‘조선의 뒷골목…’ 등 290권 펴내
전세금 빼내 아카데미 교실 열어
“월급 주고 술값만 남으면 돼요” 어느 날 갑자기 “읽을 책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서른 넘어 느지막이 사회에 나왔을 때였다.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닐 때는 또래들이 그랬듯 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했다. 90년대 들어 사회주의권이 몰락하고 보니 책, 특히 제대로 된 역사서에 갈증이 느껴졌다. 박혜숙(52) 푸른역사 대표는 “내가 읽을 만한 책을 만들면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겠지” 하고 생각했다. 1996년 기획안 한 장 없이 김혜경 도서출판 푸른숲 대표를 찾아가 “역사 전문 출판사를 차려 앞으로 역사 도서관도 만들고 역사 카페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여장부는 여장부를 알아본 것인지, 김혜경 대표는 별다른 질문도 없이 당돌한 사학도와 손잡고 역사전문 출판 자회사를 설립했다. ‘푸른역사’의 탄생이다. 훗날 박 대표가 김 대표에게 어찌 그리 흔쾌히 지원을 해줬냐 물으니 “네가 거짓말할 것 같진 않더라”는 답이 돌아왔다 한다. 그렇게 17년 외길이다. 2000년 푸른숲에서 독립한 푸른역사는 ‘역사서의 대중화’에 팔을 걷어붙였다. 그동안 290권이 넘는 역사서를 냈다. <정도전을 위한 변명>, <영조와 정조의 나라>, <호메로스에서 돈키호테까지>, <평양미술기행>, <미완의 문명 7백년 가야사>, <내 딸들을 위한 여성사>, <나치 대학살>, <독일 역사학의 신화 깨뜨리기>,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속물 교양의 탄생> 등 다양한 역사 연구가 푸른역사의 기획력과 만나 학술논문 출판 정도에 그치던 역사서 시장에 새바람을 불어넣었다. 한때 출판계에는 “연구 좀 한다 하는 역사학도 중에 푸른역사의 연락을 못 받아본 사람이 없다”는 말이 돌기도 했다. 박 대표는 “그때 계약해서 아직까지 책이 나오지 않은 경우도 많다”며 웃었다. 그렇게 발품 팔아 2003년 <조선의 뒷골목 풍경>(강명관), 2004년 <미쳐야 미친다>(정민) 등 인기작도 잇따라 나와 전성기를 누리기도 했다. 지난해 펴낸 <작지만 큰 한국사, 소금>(유승훈)은 푸른역사의 책으로는 세번째로 한국출판문화상을 받았다. 푸른역사에는 회의 시간이 없다. 아담한 한옥 사무실에는 그래서 회의 공간도 없다. 편집자 3명, 디자이너 2명, 마케터 1명이 각자 자리에서 일하고 모두의 의견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한 사람이 사무실을 돌며 의견을 구한다. 편집자들 모두 근속기간이 5년이 넘는데다 각자 관심 분야에 따라 책을 만들다 보니 “척하면 척”이란다. 2011년 푸른역사는 아카데미를 열었다. 역사를 기본으로 다양한 인문학 강의가 이뤄진다. 서울 통의동에 있는 푸른역사 사무실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터를 잡았다. 생각은 오래 했지만 실행은 즉흥적이었다. 술자리에서 박 대표가 지인들에게 “역사학자들이나 인문학자, 예술가까지 대중과 만나 강의하고 소통하는 아카데미가 있다면 어떨까” 묻자 모두들 좋은 생각이라 했다. 그길로 박 대표는 살던 집의 전세금을 빼서 아카데미를 차렸다. 2년 동안 밑 빠진 독처럼 돈이 들어갔지만 이제 적자는 아니다. 6월에는 일본 신문 사설 독해(다지마 데쓰오), 러시아 문학 읽기(로쟈) 등의 강의가 있고, 한 달에 한번씩 토요일에는 국악 공연과 인문학이 어우러진 콘서트 강의가 펼쳐진다. 아카데미를 열고 보니 다양한 연구자들 사이에 인문학적 소통이 이뤄지는 모습을 직접 보게 되고 대안대학 같은 것도 꿈꿔볼 수 있게 됐다. 출판계 불황을 묻는 질문에 답은 선선하다. “대단한 돈 벌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 아니다 보니 그냥 그러려니 한다”고 한다. 각종 사료와 그림이 가득한 역사서의 경우 편집에만 1년이 걸리기도 하고 책 한 권에 5만원을 넘기도 한다. 1쇄로 1000부를 찍어 몇 년 팔 생각으로 사회에 내놓는단다. 시장에 휘둘리지 않는 ‘작은 출판사’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그는 믿는다. “직원들 월급 주고 나면 내 술값 정도만 나와도 좋다”며 박 대표는 “500종의 책을 내고 나면 독자로 돌아가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출구가 바로 저기인데…‘노량진 참사’ 실종자 주검, 계단 1m 앞에서 발견
■ 전두환 장남, 금융실명제 직후 미술사업…은닉재산 세탁 가능성
■ 소문난 냉면 맛집, 수육 맛 비교해 보니…
■ 여기자들 앞에서 “처녀가 임신하는…”, 민주당 의원 또 ‘망발’
■ [화보] 경복궁에서 ‘한·일 투견대회’가…그시절 경복궁에선 별의별 일들이
전세금 빼내 아카데미 교실 열어
“월급 주고 술값만 남으면 돼요” 어느 날 갑자기 “읽을 책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서른 넘어 느지막이 사회에 나왔을 때였다.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닐 때는 또래들이 그랬듯 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했다. 90년대 들어 사회주의권이 몰락하고 보니 책, 특히 제대로 된 역사서에 갈증이 느껴졌다. 박혜숙(52) 푸른역사 대표는 “내가 읽을 만한 책을 만들면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겠지” 하고 생각했다. 1996년 기획안 한 장 없이 김혜경 도서출판 푸른숲 대표를 찾아가 “역사 전문 출판사를 차려 앞으로 역사 도서관도 만들고 역사 카페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여장부는 여장부를 알아본 것인지, 김혜경 대표는 별다른 질문도 없이 당돌한 사학도와 손잡고 역사전문 출판 자회사를 설립했다. ‘푸른역사’의 탄생이다. 훗날 박 대표가 김 대표에게 어찌 그리 흔쾌히 지원을 해줬냐 물으니 “네가 거짓말할 것 같진 않더라”는 답이 돌아왔다 한다. 그렇게 17년 외길이다. 2000년 푸른숲에서 독립한 푸른역사는 ‘역사서의 대중화’에 팔을 걷어붙였다. 그동안 290권이 넘는 역사서를 냈다. <정도전을 위한 변명>, <영조와 정조의 나라>, <호메로스에서 돈키호테까지>, <평양미술기행>, <미완의 문명 7백년 가야사>, <내 딸들을 위한 여성사>, <나치 대학살>, <독일 역사학의 신화 깨뜨리기>,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속물 교양의 탄생> 등 다양한 역사 연구가 푸른역사의 기획력과 만나 학술논문 출판 정도에 그치던 역사서 시장에 새바람을 불어넣었다. 한때 출판계에는 “연구 좀 한다 하는 역사학도 중에 푸른역사의 연락을 못 받아본 사람이 없다”는 말이 돌기도 했다. 박 대표는 “그때 계약해서 아직까지 책이 나오지 않은 경우도 많다”며 웃었다. 그렇게 발품 팔아 2003년 <조선의 뒷골목 풍경>(강명관), 2004년 <미쳐야 미친다>(정민) 등 인기작도 잇따라 나와 전성기를 누리기도 했다. 지난해 펴낸 <작지만 큰 한국사, 소금>(유승훈)은 푸른역사의 책으로는 세번째로 한국출판문화상을 받았다. 푸른역사에는 회의 시간이 없다. 아담한 한옥 사무실에는 그래서 회의 공간도 없다. 편집자 3명, 디자이너 2명, 마케터 1명이 각자 자리에서 일하고 모두의 의견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한 사람이 사무실을 돌며 의견을 구한다. 편집자들 모두 근속기간이 5년이 넘는데다 각자 관심 분야에 따라 책을 만들다 보니 “척하면 척”이란다. 2011년 푸른역사는 아카데미를 열었다. 역사를 기본으로 다양한 인문학 강의가 이뤄진다. 서울 통의동에 있는 푸른역사 사무실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터를 잡았다. 생각은 오래 했지만 실행은 즉흥적이었다. 술자리에서 박 대표가 지인들에게 “역사학자들이나 인문학자, 예술가까지 대중과 만나 강의하고 소통하는 아카데미가 있다면 어떨까” 묻자 모두들 좋은 생각이라 했다. 그길로 박 대표는 살던 집의 전세금을 빼서 아카데미를 차렸다. 2년 동안 밑 빠진 독처럼 돈이 들어갔지만 이제 적자는 아니다. 6월에는 일본 신문 사설 독해(다지마 데쓰오), 러시아 문학 읽기(로쟈) 등의 강의가 있고, 한 달에 한번씩 토요일에는 국악 공연과 인문학이 어우러진 콘서트 강의가 펼쳐진다. 아카데미를 열고 보니 다양한 연구자들 사이에 인문학적 소통이 이뤄지는 모습을 직접 보게 되고 대안대학 같은 것도 꿈꿔볼 수 있게 됐다. 출판계 불황을 묻는 질문에 답은 선선하다. “대단한 돈 벌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 아니다 보니 그냥 그러려니 한다”고 한다. 각종 사료와 그림이 가득한 역사서의 경우 편집에만 1년이 걸리기도 하고 책 한 권에 5만원을 넘기도 한다. 1쇄로 1000부를 찍어 몇 년 팔 생각으로 사회에 내놓는단다. 시장에 휘둘리지 않는 ‘작은 출판사’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그는 믿는다. “직원들 월급 주고 나면 내 술값 정도만 나와도 좋다”며 박 대표는 “500종의 책을 내고 나면 독자로 돌아가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출구가 바로 저기인데…‘노량진 참사’ 실종자 주검, 계단 1m 앞에서 발견
■ 전두환 장남, 금융실명제 직후 미술사업…은닉재산 세탁 가능성
■ 소문난 냉면 맛집, 수육 맛 비교해 보니…
■ 여기자들 앞에서 “처녀가 임신하는…”, 민주당 의원 또 ‘망발’
■ [화보] 경복궁에서 ‘한·일 투견대회’가…그시절 경복궁에선 별의별 일들이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