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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6월 3일 교양 잠깐독서

등록 2013-06-02 20:38

운명을 거부하는 희랍의 분투

비극의 비밀
강대진 지음/문학동네·2만2000원

고전은 부담스러운 존재다. 꼭 읽어야만 한다고 생각하지만 엄두가 나지 않거나 시작은 했지만 끝내지 못한 미완의 작업, 아니면 겨우 다 읽었지만 왜 좋은지 이해가 가지 않는 작품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도 우린 왜 고전을 읽어야 할까? 지은이는 고전이 소통의 기반이 되어주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고전은 소통을 위한 공동 재산이다. 우리는 옛사람들의 글을 읽으며 그들과 소통한다”고 말한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던 한 역사가의 말에 비춰보면, 고전은 곧 역사가 된다

<비극의 비밀>은 고전 읽기의 친절한 안내서 구실을 하는 책이다. 고대 서양 고전 중 어렵기로 소문난 희랍(그리스) 비극에 대한 해설이 구체적인 작품과 함께 소개돼 있다.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등 희랍 3대 비극 작가의 12개 작품을 하나하나 톺아보며 고전 읽기의 재미를 준다. 작품의 행간에 녹아 있는 고대 희랍인의 다양한 생각들과 그 문학적 성취를 <비극의 비밀>은 읽어간다.

지은이는 “인간의 슬픈 운명에 대한 탄식이 아니라, 존재의 불완전함에 좌절하지 않고 운명에 맞서는 인간의 위대한 분투를 찬송하고 있는 것이 희랍 비극”이라고 말한다. 기원전 5세기에 만들어진 3대 비극 작가의 작품들은 25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재해석, 재창작되고 있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자본주의 화염 마다않는 예술

그을린 예술
심보선 지음/민음사·1만5000원

2012년 세밑. 뺨을 얼리는 칼바람보다도, 자칫 발을 헛디디면 즉사하는 ‘크레인 절벽’보다도, 노동자를 기계처럼 쓰다 버리는 현실이 무서웠다. 그래서 그들은 철탑에 올라갔다. 세상의 무관심으로 외로운 이들에게 어느 날 심보선 시인이 제안한 ‘소리연대’가 찾아왔다. 그들은 트위터를 통해 안부를 묻고 책 구절을 읽어주며 “소곤소곤, 웅성웅성” 저 아래 목소리를 전했다.

이 책은 사회학자이자 시인인 심보선씨가 신자유주의 광풍 속에서 예술과 사회가 만나는 비좁은 공간을 모색하는 탐험기다. 문학과 음악을 라이프스타일로 소비하는 스노비즘이 만연하고 생활고로 허덕이는 젊은이들을 광장의 붉은악마로 변신케 하는 오늘날. 시 한 줄이 “늦은 밤 반딧불처럼 어렴풋하게 빛나는 행복의 미광”이 될 순 없을까. 시인은 철거민들의 절박한 호소가 메아리치는 용산에서, 두리반에서 우정과 연대가 빛나는 새로운 예술을 발견한다. ‘개인의 감성활동’에서도 예술과 사회는 공존한다. 일흔 살에야 글을 배워 시를 쓰는 할머니, 33년 동안 길에서 주운 자갈과 조개껍질로 자신만의 성을 짓는 우편배달부가 그러하다. 하릴없이 거리를 돌아다니다 겨우 시 한 줄 쓰는 시인은 예술을 통해 불안을 ‘파업’해 버린다. 세상을 다 태워버릴 듯한 뜨거운 자본주의의 화염에 그을리면서, 그렇게 예술은 사회를 살아간다.

이유주현 기자 digna@hani.co.kr


나비의 날갯짓 속 우주의 질서

카오스
제임스 글릭 지음, 박래선 옮김
동아시아·2만2000원

1961년, 미국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는 컴퓨터로 기상 예측 시뮬레이션을 반복했다. 그런데 똑같은 데이터를 입력했는데도 결과가 천양지차였다. 조사해보니 초기 조건에 미세한 차이가 있었다. 컴퓨터엔 0.506127을 입력했는데, 시뮬레이션 결과를 출력할 때는 인쇄 분량을 줄이려 0.506만 나타나게 한 게 문제였다. 초기 조건에서 0.000127의 차이는 시험 결과에 영향을 주지 않을 사소한 축약이라 여겼다. 그런데 아니었다. 실제론 하늘과 땅만큼이나 큰 차이를 낳았다. ‘카오스’의 발견이다. 로렌츠는 이 우연한, 그러나 인류의 자연관을 뒤엎은 위대한 발견에 담긴 의미를 “브라질에 사는 나비 한 마리의 날갯짓이 텍사스주에서 토네이도를 일으키는가?”(1972년 미국과학진흥협회 강연 제목)라는 문학적 비유에 기대어 설명했다.

인류가 오랜 세월 무질서라 치부해온 자연·사회 현상에 ‘질서’가 숨겨져 있다는 과학적 발견, 그게 바로 카오스 혁명이다. 한 줄기 담배 연기, 바람에 흔들리는 깃발, 도로 위의 차량 행렬…. 카오스는 어디에나 있다. ‘나비의 날갯짓이 토네이도를 일으킬 수 있다’는 카오스적 통찰이 뜻하는 바는 무엇인가. 세상 모든 것은 서로 연결돼 있고, 무시하거나 배제해도 좋을 사소한 존재는 없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조선 최고 지식인들의 독서법

오직 독서뿐
정민 지음/김영사·1만3000원

“한밤중에 가만히 앉아 등불을 켜고 차를 끓이노라면 온 세상은 적막한데 성근 종소리가 이따금 들려온다. … 사람의 왕래도 끊고 서책만 앞에 가득하다. …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귀에 들려, 처마에 떨어지는 빗물로 벼루를 씻는다.” 책 읽기 좋은 때를 꼽는 허균의 글이다. 고즈넉한 밤, 마음에 맞는 책을 들고 앉아 누리는 기쁨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오직 독서뿐>은 한문학자 정민 교수가 허균, 이익, 안정복, 박지원, 홍대용, 이덕무 등 조선 시대 최고 지식인들의 독서법을 소개한 책이다. “역사란 것은 성패가 이미 정해진 뒤에 쓴다”며, 의문을 품는 것을 독서의 시작으로 여기는 성호 이익의 말은 지금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딱딱한 책일 것 같지만, 15살 아이에게 “책을 읽어야지 잘생긴 얼굴만 믿느냐”고 나무라는가 하면 “남의 집 책장 보면 첫 권만 손때가 묻고 둘째권부터는 깨끗하다”고 쓴 이덕무의 글에 이르면 웃음도 비죽 난다. “솔바람 소리, 시냇물 소리, 바둑돌 놓는 소리, 비가 섬돌에 떨어지는 소리, 창으로 눈이 흩날리는 소리, 차 달이는 소리”처럼 듣기 좋은 소리 중에서도, “다른 사람이 책 읽는 소리를 들으면 그렇게까지 기쁘지는 않지만, 자제가 책 읽는 소리만큼은 기쁨을 이루 말로 다 할 수가 없다”는 옛사람의 솔직한 고백도 그렇다.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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