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달라도 같은 산을 오른다
길희성 지음/휴·1만3000원
길희성 지음/휴·1만3000원
오는 10월 말 부산에서 세계 7000여 종교지도자들이 모여 ‘기독교계의 유엔’ 격인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를 연다. 그런데 국내 보수 기독교계가 100만인 서명운동까지 벌이며 총회 개최 반대를 외치고 있다. 세계교회협이 다른 종교나 종파까지 수용하는 다원주의를 견지하고 있어 이단이라는 것이다.
유엔이나 국제올림픽위원회 등 국제기구가 종교·이데올로기를 넘어 서로 전쟁을 벌이는 당사국들까지도 모아 화해를 도모하는 것처럼, 지구에서 가장 큰 종교기구인 세계교회협의회가 7년마다 세계 기독교 지도자들이 함께한 가운데 다원주의적 화해와 일치를 모색하는 자리가 총회 행사다. 그런데 국내 보수 기독교계는 이마저 용납하지 않겠다는 태세다. 화해를 위한 행사가 자칫 분열과 다툼의 장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런 ‘광풍’ 속에서 길희성 교수가 펴낸 <길은 달라도 같은 산을 오른다>는 종교 다원주의를 인류의 공생 평화의 길로 제시한 책이다. 전쟁의 절반이 종교 갈등에서 비롯되는 지구촌에서, 어떤 종교를 믿든, 어떤 방편을 따르든 진실하게 길을 걷는다면 산 정상에서 함께 만난다는 다원주의를 설파한다.
길희성 교수는 서울대와 서강대에서 철학·종교학 교수를 지낸 학자다. 그가 주목받는 것은 미국 예일대와 하버드대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아서가 아니다. 인도·불교 철학 쪽에 단 한 명만 배정된 학술원 회원 자리를 수많은 불교학자를 제치고 기독교인으로서 차지한 실력파인 때문만도 아니다. 독단을 앞세우며 ‘정통’이라고 주장하는 골리앗에 주눅들지 않고 종교의 본질을 들이대는 용기 때문이다.
그는 타 종교의 기물을 파손하거나 경내로 들어가 선교행위를 하는 행위는 절대 용납할 수 없고, 지하철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친다면 법의 제재를 받아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건물을 갖지 않고 십일조 대부분을 빈민 구제에 사용하는 새길교회를 한완상 교수 등과 만들었던 인물이다.
그는 선교만을 앞세우고 독선적이고 배타적이고 폭력적인 이들은 크리스천이 아니라고 말한다. ‘크리스천’이란 말은 ‘그리스도를 닮은’, ‘그리스도를 따르는’이란 형용사로, 그리스도교라는 조직의 일원이라기보다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며 그의 인격을 닮고자 하는 사람의 내적 정신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길 교수는 노예에서 해방되고 우상을 거부한 데서 기독교가 시작됐지만 지금 기독교는 사람들을 다시 노예로 만들고, 문자나 건물, 성직자를 떠받드는 우상숭배 종교가 됐다고 통박한다. ‘인간을 가장 자유스럽게 해야 할 종교가 왜 인간을 가장 억압하는 도구가 되었느냐’는 일갈이다. 그는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신앙만큼이나 성스런 덕목이라며 겸허함을 권유한다. 특권이나 전통에 기대지 않고 종교 본연의 순수성을 회복하고, 초심을 회복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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