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
김동춘 지음
사계절·2만5000원
김동춘 지음
사계절·2만5000원
1950년 11월8일 전북 남원 강석마을에서 마을 청년 70여명이 국군에게 총과 칼로 학살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 전날 잠을 재워달라는 인민군의 요구를 받아들였다는 것이 이유였다. 죽은 사람들은 대부분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사상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말 그대로 ‘마을 청년’들이었다. 이 사건을 한국 사회는 어떻게 기억해왔을까? 유족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후환이 두려워 침묵했고, 국가와 사회는 철저한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다만 국군이 발간한 <공비토벌사>에 ‘국군 제11사단 9연대가 공비를 토벌한 전과를 올렸다’는 기록이 남았을 뿐이다.
지난 7월27일은 한국전쟁이 ‘정전’을 맞은 지 60년째 되는 날이었다. 보수화된 사회 분위기 탓인지 온갖 매체들은 ‘자유를 수호한 명예로운 전쟁’을 추어올리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나 한국전쟁의 진실은 오히려 제주 4·3사건, 거창사건, 노근리사건, 국민보도연맹사건 등에서 보듯 일일이 기억하기 힘들 정도로 만연했던 학살의 기억에 있다. 실천적·비판적 지식인으로 꼽히는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가 최근 펴낸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는 국가와 반공주의의 이름으로 억압됐던 한국전쟁의 진실, 곧 학살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책이다. 지은이는 과거에 벌어졌던 학살이 단지 피해 당사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국가가 저지르는 범죄는 학살과 인권침해의 피해 당사자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목격한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정치 공동체 구성원들의 건강한 의식과 사회 참여 의지를 마비시키고 위축시킨다.” 때문에 “‘기억의 정치’는 한 국가나 사회의 헤게모니, 국가 정체성의 문제이자 사회의 질서, 법과 도덕의 기본”이라는 것이다.
<전쟁과 사회>(2000)를 통해 한국전쟁의 정치사회학을 연구하는 데 빠져든 지은이는 학살과 국가폭력의 문제로부터 오늘날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탐사하는 길로 나아갔다. 그 뒤 진실 규명을 통해 과거 청산의 해법을 모색했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라는 정부 조직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주도했고, 진실화해위에서 10년 동안 일한 바 있다. 이 책은 과거 청산에 대한 문제의식이 어떻게 싹텄는지부터 시작해 진실화해위 활동이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종료된 뒤 남게 된 문제의식까지, 모든 과정을 집대성한 소중한 보고서다.
위원회 활동이 종료된 상황에서, 지은이는 ‘앞으로 계속해야 할 일들’의 첫번째로 ‘가해자 책임 묻기’를 꼽는다. 이것이 과거 청산 운동이나 위원회 활동에서 제대로 하지 못한 최대의 약점이라는 것이다. 지은이는 “처벌은 정의의 수립뿐 아니라 진실 규명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조항”이라고 생각하게 됐다면서, 과거 청산이 결코 지나간 사건을 정리하는 일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유효한 ‘정의’를 수립하는 일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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