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 겨울의 궁궐
소울 플레이스
한창훈 외 12명 지음, 양진아 그림
청어람미디어·1만3800원 떠올리는 것만으로 위안이 되는 공간, 거기가 어디냐 물었다. 요리사, 소설가, 기자, 카피라이터, 아나운서 등 13명이 은밀한 공간을 고백했다. 이름하여 <소울 플레이스>다. <소울 푸드> <소울 로드>에 이은 ‘솔 시리즈’ 세 번째 책이다. “뉴욕을 사랑하는 서울 토박이”라는 박소현 <문화방송> 아나운서는 정작 뉴욕에 살 기회가 생겨 그곳에 갔을 때 ‘쫄았다’.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가 되기는커녕 그런 친구도 없었고 인도 억양을 쓰는 은행원의 말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런 그를 위로한 공간이 옛 철로를 재활용해 만든 자연친화적 공원, 하이라인이었다. 그곳을 만난 순간 낯선 공간에 대한 두려움이 설렘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박찬일 요리사는 “꼬민차모(시작하세)!”라는 주방장의 선언으로 일제히 속도전을 벌이는 전사가 되곤 했던 시칠리아의 부엌 이야기를 풀어놨다. 소설가 김성종씨는 ‘선망’의 공간을 꼽았다. 파리의 고서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서 헤밍웨이가 표지 모델인 1952년산 <라이프> 잡지를 발견하던 때의 희열이란! 이유주현 <한겨레> 기자는 사람을 떠올렸다. 서른 살 가까이 연상인 건축가 정기용과 함께 갔던 겨울날의 창경궁 명정전. 암 투병 중이던 그와 화강석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 나누던 이야기, 따뜻한 햇살과 차가운 바람까지 모두 명정전에 새겨졌다. 그들의 공간이 준 위안이 글과 그림을 통해 독자에게까지 전해지니 고마운 일이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여성주의가 이렇게 웃겨도 되는 거야?
진짜 여자가 되는 법
케이틀린 모란 지음, 고유라 옮김
돋을새김·1만3500원 “내가 여러분에게 재촉하고 싶은 것은, ‘나는 여성주의자다’라고 외치는 거다. 나는 당신이 어서 의자 위에 올라가, 그렇게 외치기를 권한다.” 지은이는 독려한다. 기왕이면 ‘급진적인’이라는 수식어까지 붙이기를 권한다. 그렇다고 이 책이 다이어트와 옷차림을 걱정하고 연애가 안 풀려 의기소침한 평범한 여성들이 범접할 수 없는 책인가 하면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열다섯 살 때까지는 공주가 되고 싶었고 열여덟 살 때까지는 예술가의 뮤즈가 되고 싶었으나 (당연하게도) 이룰 수 없었던 괴짜 칼럼니스트가 솔직하고 발칙하게 풀어낸 자전적 성장담이기 때문이다. 가난한 집 여덟 남매의 첫째로 태어나 100㎏의 거구에 친구 하나 없는 십대 시절을 보냈다. 늘 자신이 남과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생리와 커지는 가슴, 체모, 몸무게 등으로 고민하는 평범한 소녀였던 시절을 추억하며 지은이는 여성들이 느끼는 혼란과 여성을 구석으로 내모는 왜곡된 시선들을 집어낸다. 예를 들어 고통스레 음모를 제거하는 브라질리언 왁싱이 마치 손톱을 손질하는 것처럼 젊은 여성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사실상 일상으로 침투한 포르노임을 까발린다. 첫 직장 시절 농담처럼 자신의 무릎에 앉아 기획안을 논의하자던 상사의 무릎을 깔고 앉아 줄담배를 피우며 상사를 골탕먹이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면서 점점 더 모호해지고 은밀해지는 성희롱 문제를 지적하는 것도 귀 기울일 만하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향수 탄생시킨 도시 여행의 향기
향수 그리고 향기
임원철 지음
이다미디어·1만5800원 프랑스 남부 그라스산의 재스민과 5월 장미를 비롯해 80가지가 넘는 재료로 만든 향수. 미국의 영화배우이자 섹시 아이콘인 마릴린 먼로가 잠들기 전에 잠옷 대신 입는다고 말해 더 유명해진 향수. 이 향수는 러시아 제정기 전설적인 조향사 에르네스트 보가 볼셰비키 혁명 뒤 러시아에서 추방돼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코코 샤넬과 극적으로 만나면서 만들어졌다. 1921년 세상에 나와 지금까지도 가장 많이 팔리고 있는 ‘샤넬 No. 5’다. 왜 사람들은 향수를 좋아할까? 향수에는 사람들의 욕구가 투영돼 있다. 향기는 추억이고, 유행이며, 개성이다. 세계적인 패션디자이너 도나 카란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만의 독특한 향기가 있다. 인간에게 가장 기본적이면서 특별한 소유물은 향기”라고 했다. 향기는 나를 표현하는 또다른 수단인 셈이다. <향수 그리고 향기>는 뉴욕의 캘빈 클라인, 런던의 버버리, 파리의 샤넬·디오르, 밀라노의 구치·프라다, 도쿄의 겐조 등 명품 향수와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향수의 탄생 배경, 특성 등 향수의 모든 것을 알려주는 한편의 가이드북 구실을 한다. 화장품 기술연구소에서 16년째 조향사로 일하고 있는 지은이는 “개성 넘치는 패셔너블한 도시의 추억을 품은 향기를 이야기하며, 향기가 얼마나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지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친숙하면서도 낯선 듀나의 SF
면세구역
듀나 지음
북스토리·1만3000원 ‘듀나’는 영화평론가로도 유명하지만, 국내에서 대표적인 에스에프(SF) 작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장르소설에 대한 편견이 유난히 심한 국내 문학계에서 그는 ‘얼굴 없는 작가’의 정체성을 고집하면서 20년 가까이 꾸준히 장르소설을 창작하는 활동을 계속해왔다. 그가 2000년에 펴냈던 단편집인 <면세구역>이 개정판으로 새로이 독자와 만난다. 표제작 ‘면세구역’을 비롯해 ‘사라지는 사람들’ ‘펜타곤’ 등 15편의 단편을 담고 있다. 이 책에서 지은이가 펼쳐내는 이야기들 가운데 일부는 ‘지금, 여기’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국외 에스에프 소설에 견줘 국내 독자들에게 조금 더 친숙하게 다가오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거침없이 펼치는 특유의 기발하고 기묘한 상상력은 읽는 이를 금방 낯설고 이상한 세계로 빠뜨린다. 많은 사람들에게 친숙했던 1990년대 신촌의 뒷골목에는 신비한 존재들이 숨어 살고 있는 ‘면세구역’이 있다.(‘면세구역’) 바로 옆에 있는 엄마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친구의 딸에 대한 우려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어느새 세상 사람들이 서로의 존재를 알아보지 못하는 이상한 ‘무관심병’이 횡행하는 이야기로 치닫는다.(‘사라지는 사람들’) 물론 고전적인 에스에프 문법에 충실한 작품들에서도 인과관계를 꿰뚫어 보는 능력을 지닌 사람들끼리의 다툼(‘나비전쟁’) 등 지은이만의 자유로운 상상력이 빛을 발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한창훈 외 12명 지음, 양진아 그림
청어람미디어·1만3800원 떠올리는 것만으로 위안이 되는 공간, 거기가 어디냐 물었다. 요리사, 소설가, 기자, 카피라이터, 아나운서 등 13명이 은밀한 공간을 고백했다. 이름하여 <소울 플레이스>다. <소울 푸드> <소울 로드>에 이은 ‘솔 시리즈’ 세 번째 책이다. “뉴욕을 사랑하는 서울 토박이”라는 박소현 <문화방송> 아나운서는 정작 뉴욕에 살 기회가 생겨 그곳에 갔을 때 ‘쫄았다’.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가 되기는커녕 그런 친구도 없었고 인도 억양을 쓰는 은행원의 말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런 그를 위로한 공간이 옛 철로를 재활용해 만든 자연친화적 공원, 하이라인이었다. 그곳을 만난 순간 낯선 공간에 대한 두려움이 설렘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박찬일 요리사는 “꼬민차모(시작하세)!”라는 주방장의 선언으로 일제히 속도전을 벌이는 전사가 되곤 했던 시칠리아의 부엌 이야기를 풀어놨다. 소설가 김성종씨는 ‘선망’의 공간을 꼽았다. 파리의 고서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서 헤밍웨이가 표지 모델인 1952년산 <라이프> 잡지를 발견하던 때의 희열이란! 이유주현 <한겨레> 기자는 사람을 떠올렸다. 서른 살 가까이 연상인 건축가 정기용과 함께 갔던 겨울날의 창경궁 명정전. 암 투병 중이던 그와 화강석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 나누던 이야기, 따뜻한 햇살과 차가운 바람까지 모두 명정전에 새겨졌다. 그들의 공간이 준 위안이 글과 그림을 통해 독자에게까지 전해지니 고마운 일이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케이틀린 모란 지음, 고유라 옮김
돋을새김·1만3500원 “내가 여러분에게 재촉하고 싶은 것은, ‘나는 여성주의자다’라고 외치는 거다. 나는 당신이 어서 의자 위에 올라가, 그렇게 외치기를 권한다.” 지은이는 독려한다. 기왕이면 ‘급진적인’이라는 수식어까지 붙이기를 권한다. 그렇다고 이 책이 다이어트와 옷차림을 걱정하고 연애가 안 풀려 의기소침한 평범한 여성들이 범접할 수 없는 책인가 하면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열다섯 살 때까지는 공주가 되고 싶었고 열여덟 살 때까지는 예술가의 뮤즈가 되고 싶었으나 (당연하게도) 이룰 수 없었던 괴짜 칼럼니스트가 솔직하고 발칙하게 풀어낸 자전적 성장담이기 때문이다. 가난한 집 여덟 남매의 첫째로 태어나 100㎏의 거구에 친구 하나 없는 십대 시절을 보냈다. 늘 자신이 남과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생리와 커지는 가슴, 체모, 몸무게 등으로 고민하는 평범한 소녀였던 시절을 추억하며 지은이는 여성들이 느끼는 혼란과 여성을 구석으로 내모는 왜곡된 시선들을 집어낸다. 예를 들어 고통스레 음모를 제거하는 브라질리언 왁싱이 마치 손톱을 손질하는 것처럼 젊은 여성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사실상 일상으로 침투한 포르노임을 까발린다. 첫 직장 시절 농담처럼 자신의 무릎에 앉아 기획안을 논의하자던 상사의 무릎을 깔고 앉아 줄담배를 피우며 상사를 골탕먹이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면서 점점 더 모호해지고 은밀해지는 성희롱 문제를 지적하는 것도 귀 기울일 만하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임원철 지음
이다미디어·1만5800원 프랑스 남부 그라스산의 재스민과 5월 장미를 비롯해 80가지가 넘는 재료로 만든 향수. 미국의 영화배우이자 섹시 아이콘인 마릴린 먼로가 잠들기 전에 잠옷 대신 입는다고 말해 더 유명해진 향수. 이 향수는 러시아 제정기 전설적인 조향사 에르네스트 보가 볼셰비키 혁명 뒤 러시아에서 추방돼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코코 샤넬과 극적으로 만나면서 만들어졌다. 1921년 세상에 나와 지금까지도 가장 많이 팔리고 있는 ‘샤넬 No. 5’다. 왜 사람들은 향수를 좋아할까? 향수에는 사람들의 욕구가 투영돼 있다. 향기는 추억이고, 유행이며, 개성이다. 세계적인 패션디자이너 도나 카란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만의 독특한 향기가 있다. 인간에게 가장 기본적이면서 특별한 소유물은 향기”라고 했다. 향기는 나를 표현하는 또다른 수단인 셈이다. <향수 그리고 향기>는 뉴욕의 캘빈 클라인, 런던의 버버리, 파리의 샤넬·디오르, 밀라노의 구치·프라다, 도쿄의 겐조 등 명품 향수와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향수의 탄생 배경, 특성 등 향수의 모든 것을 알려주는 한편의 가이드북 구실을 한다. 화장품 기술연구소에서 16년째 조향사로 일하고 있는 지은이는 “개성 넘치는 패셔너블한 도시의 추억을 품은 향기를 이야기하며, 향기가 얼마나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지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듀나 지음
북스토리·1만3000원 ‘듀나’는 영화평론가로도 유명하지만, 국내에서 대표적인 에스에프(SF) 작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장르소설에 대한 편견이 유난히 심한 국내 문학계에서 그는 ‘얼굴 없는 작가’의 정체성을 고집하면서 20년 가까이 꾸준히 장르소설을 창작하는 활동을 계속해왔다. 그가 2000년에 펴냈던 단편집인 <면세구역>이 개정판으로 새로이 독자와 만난다. 표제작 ‘면세구역’을 비롯해 ‘사라지는 사람들’ ‘펜타곤’ 등 15편의 단편을 담고 있다. 이 책에서 지은이가 펼쳐내는 이야기들 가운데 일부는 ‘지금, 여기’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국외 에스에프 소설에 견줘 국내 독자들에게 조금 더 친숙하게 다가오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거침없이 펼치는 특유의 기발하고 기묘한 상상력은 읽는 이를 금방 낯설고 이상한 세계로 빠뜨린다. 많은 사람들에게 친숙했던 1990년대 신촌의 뒷골목에는 신비한 존재들이 숨어 살고 있는 ‘면세구역’이 있다.(‘면세구역’) 바로 옆에 있는 엄마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친구의 딸에 대한 우려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어느새 세상 사람들이 서로의 존재를 알아보지 못하는 이상한 ‘무관심병’이 횡행하는 이야기로 치닫는다.(‘사라지는 사람들’) 물론 고전적인 에스에프 문법에 충실한 작품들에서도 인과관계를 꿰뚫어 보는 능력을 지닌 사람들끼리의 다툼(‘나비전쟁’) 등 지은이만의 자유로운 상상력이 빛을 발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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