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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한국 노동시장, 기업규모별 격차 심한 분절체제”

등록 2013-09-01 18:45

정이환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가 지난 29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한국 고용체제의 특성과 문제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A href="mailto:wjryu@hani.co.kr">wjryu@hani.co.kr</A>
정이환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가 지난 29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한국 고용체제의 특성과 문제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한국고용체제론’ 출간 정이환 교수
“우리의 소원은 통일? 아니다. 정규직이다.” 얼마 전 방영된 한 드라마의 대사다. 한국 노동시장이 보통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옥죄고 있는지를 잘 드러낸다. 한국의 노동시장이 다른 나라와 비교해 어떤 특성과 문제점을 지니고 있는지를 실증 자료를 분석해 종합적으로 정리한 학술서가 출간됐다. 정이환 서울과학기술대 기초교육학부 교수의 <한국 고용체제론>(후마니타스)이 그것이다. 지난 29일 <한겨레>에서 정 교수를 만나 책의 내용과 정책적 시사점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정 교수는 현재 한국의 고용체제를 ‘신자유주의적 분절체제’라고 규정한다. ‘신자유주의’와 ‘분절체제’(성격이 이질적인 부분들로 이루어진 체제)의 성격을 동시에 강하게 지닌 체제라는 의미다. 신자유주의적 성격은 노동시장 전반적으로 시장원리가 강하게 관철된다는 점에 있다. 고용이 매우 불안정하고, 실업수당 같은 사회안전망도 허술하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조차 정리해고, 명예퇴직, 권고사직 같은 강제적 감원 위험에 노출돼 있다.

하지만 정 교수의 연구는 ‘분절체제’라는 특성에 좀더 무게를 둔다. “한국의 노동시장은 어느 나라보다 분절적 성격이 강합니다. 즉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가 매우 크다는 것입니다.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의 정규 노동자들도 고용불안에서 자유롭지 않지만, 중소 영세기업 노동자나 비정규 노동자에 비하면 훨씬 고용 안정성이 높습니다. 임금 차이도 많이 나고요.”

요컨대, 근로조건이 시장원리 같은 전체 노동시장 규칙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소속 기업의 규칙에 의해 결정되는 ‘기업 내부 노동시장’, 즉 1차 시장과 시장원리가 별 규제 없이 관철되는 ‘기업 외부 노동시장’, 즉 2차 시장 간의 격차가 심각한 상태라는 것이다.

정 교수는 공공부문과 민간부문 30인 이상의 중견·대기업의 정규 노동자 등을 기업 내부 노동시장에 속한 사람들로, 10인 미만 기업에 고용된 정규직과 전체 비정규 노동자(한시적·기간제 근로자, 단시간 근로자, 파견·용역·일용 근로자, 특수형태 근로자 등)를 외부 노동시장에 속한 사람으로 나눴다. 내부 노동시장 노동자의 월평균임금은 281만원인 데 반해, 외부 노동시장의 임금은 145만원으로 절반에 불과하다. 평균 근속기간 역시 8.9년과 2.5년으로 세 배 이상 차이가 난다. 사회보험 적용 비율과 근로기준법 적용 비율도 격차가 크다. 더구나 내부 노동시장 규모는 전체 근로자의 32%(2010년 기준)에 불과하다.

그러면 기업 규모(대기업/중소기업)와 고용형태(정규직/비정규직) 가운데서는 어떤 요소가 노동시장 불평등에 더 중요한 요인일까? 정 교수는 기업 규모 문제에 좀더 주목한다. 쉽게 말하면 대기업의 비정규직이 영세사업체의 정규직보다 상황이 낫다는 것이다. “중소 영세사업체는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이나 별 차이 없이 다 열악합니다. 비정규직 문제에만 집중할 경우 이 부분을 놓치게 될 우려가 있습니다.”

중견·대기업 정규직
전체 근로자의 30% 그쳐
대기업 비정규직에 견주어
중소기업 정규직이 더 열악

우리나라 고용불안 중 상당부분이 이런 중소 영세사업체의 열악함에 기인한다고 정 교수는 지적했다. 이직의 60% 정도가 30인 미만 중소업체에서 발생하는데, 중소업체의 경우 나쁜 근무조건과 일거리 부족, 낮은 임금 등 탓에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사실상 비자발적으로) 다른 업체로 옮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정리해고 등 감원으로 인한 이직은 전체 이직의 10% 미만이다.

“이 정도로 1차 시장과 2차 시장 간의 격차가 큰 나라는 주요 나라 가운데서는 일본밖에 없습니다. 일본은 그나마 1차 시장 규모가 우리보다는 큽니다. 1차 시장 내부의 안정성도 ‘종신고용’ 전통으로 우리보다는 낫고요. 같은 업종에선 초임이 비슷해야 한다는 사회적 원칙도 있습니다.” 한국 젊은이들이 대기업 정규직 취업에 ‘목을 매는’ 현상에는 노동시장의 이런 구조적 특성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왜 이렇게 분절체제가 심각해진 것일까? 대기업들이 1997년 외환위기 등을 거치면서 비정규직 고용과 사내 하청을 늘리고 수익성이 떨어지는 부문은 계속 외주화(아웃소싱)한 영향이 크다. 단가 후려치기 등 불공정한 하도급관계를 통해 중소기업을 계속 ‘쥐어짠’ 것도 중소기업의 낮은 수익성과 이에 따른 저임금의 원인이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영세업체들이 저임금에만 기대 명맥을 유지하는 측면도 있다.

정 교수는 대기업 노조들이 임금 올리기에 몰두하는 행태에 대해서도 비판적 태도를 보였다. “노동운동의 기본 정신은 연대입니다. 자기가 속한 기업뿐 아니라 전체 노동시장의 규율을 어떻게 만들지도 고민해야 합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기본이고 나아가 다른 직무·직종 간 임금격차도 줄이려고 노력한 것이 다른 나라 노동운동의 역사입니다. 이제는 우리나라 대기업 노조도 변해야 합니다.”

그는 영세업체 노동자 대책과 분절체제 극복을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치코바, 식당종업원, 아르바이트생 등 영세업체 노동자들의 사정이 너무 심각합니다. 최저임금을 대폭 올리고 근로기준법의 실질 적용범위를 확대해야 합니다. 노동시장 양극화 해소를 위해서는 비정규직에 대한 관심을 넘어서는 종합적인 시각이 필요합니다. 기업규모 간 근로조건 격차를 줄이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돼야 합니다.” 노동시간 단축,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1차 노동시장 규모를 키우려는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고 정 교수는 덧붙였다.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고용 안정성이 낮고 임금 불평등도 심합니다. 비정규직 비율도 아주 높습니다. 1차 시장 규모가 작은데다 1차·2차 시장 간의 격차는 아주 큽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는 찾기 어려운 극단적 유형입니다. 갈 길이 멀지만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나씩 풀어나가야 합니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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