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큼 가까이>로 창비장편소설상을 거머쥔 정세랑. “소설이 웹툰이나 드라마, 영화보다 더 재미난 이야기를 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문장으로만 포착할 수 있는 감각이 따로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초기 일산 신도시의 황량한 풍경
성장의 고통 상쇄하는 우정의 세월
오지 않은 그리움을 예감하는 영상
성장의 고통 상쇄하는 우정의 세월
오지 않은 그리움을 예감하는 영상
정세랑 지음
창비·1만2000원 작가로서 정세랑(30)의 출발은 2010년 장르문학 잡지 <판타스틱>에 발표한 단편 <드림, 드림, 드림>이었다. 신춘문예나 잡지 신인상 등에 여러번 응모했지만 그때마다 ‘장르적’이라는 이유로 최종심에서 떨어뜨리길래 아예 장르 잡지에 응모했더니 덜컥 당선된 것이라고. 대학에서 국문학과 역사학을 전공했지만, 졸업 뒤 출판사에 들어간 것은 선망하던 작가들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다는 ‘팬심’이었지 스스로 창작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단다. 문학잡지와 시집을 주로 편집했고, 책을 만들기 위해 원고를 읽다 보니 어느 순간 제 안에서도 글이 만들어져 나왔다고. 그동안 <덧니가 보고 싶어> <지구에서 한아뿐> 두 장편을 냈는데 둘 다 이른바 장르물이다. 그의 세번째 장편이자 제7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인 <이만큼 가까이>는 그러나 장르물과는 거리가 먼, ‘정통’ 소설이다. 작가는 “장르와 비장르를 구분해서 쓰지는 않고, 쓰려는 이야기에 장르적 장치가 필요하면 쓰고 아니면 쓰지 않을 뿐”이란다. <이만큼 가까이>의 무대는 세기말 파주와 개발 초기의 일산 신도시. 화자 ‘나’를 비롯한 여고생 넷과 남자 동급생 둘 그리고 ‘나’의 또래 남자친구가 등장하는 일종의 성장소설이다. “새로 세운 신호등에는 불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파란 비닐이 높은 신호등에 친친 감겨 있었다. 차도 거의 없었다. (…) 해가 진 후 돌아올 때는 온통 깊이 땅을 파놓은 공사장들 사이로 다른 단지보다 먼저 들어선 아파트에 반쯤 불이 들어와 있었다. 좁은 길 양편으로는 깊은 구덩이인 경우가 허다해서, 마치 절벽 사이로 길이 난 것 같았다. 아파트 단지는 그 길 끝의 마왕성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개발 초기 일산 신도시의 황량하고 기괴한 풍경을 그린 대목이다. 얼마 전 출간된 은희경 소설집에도 비슷한 풍경이 나오는데, 그 자신 개발 초기 신도시에서 성장했다는 정세랑은 “그 독특한 풍경이 먼저 강렬하게 다가왔고 인물은 오히려 나중에 떠올랐다”고 말했다. 소설은 영화미술 일을 하는 ‘나’가 친구들 인터뷰를 영상에 담은 짧은 컷들 그리고 그 컷들과 연결되는 학창시절의 일화들이 교차하면서 십수년에 걸친 우정과 성장의 세월이 모자이크처럼 직조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냥 십대를 보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세기말에 십대를 보내는 건 더 죽을 것 같은 경험이었다.”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은 많은 것을 배우지만, 모두 결국은 거절당하는 법을 배운다. 예쁜 여자애에게 거절당하기도 하고 공부에 당하기도 하고 재능과 미래에 당하기도 하고…” 인용한 문장들은 주인공들의 성장이 결코 녹록하지 않으리라는 걸 시사한다. 두발단속을 하는 학생주임에게 신발을 벗어던지기도 하고 연인 관계이던 여학생에게 하루아침에 차이기도 하며 상상하기 힘든 가족 내의 언어폭력과 물리적 폭력에 노출되기도 한다. 파주에 사는 여섯 동급생이 신도시에 있는 학교로 오가기 위해 탔던 ‘망할 놈의’ 2번 버스는 주인공들이 거쳐야 하는 성장의 고통 그리고 그 고통을 상쇄시키는 우정의 테두리를 상징한다. “잘생긴 대머리가 되지 못하고 죽어버”린 첫사랑 주완 그리고 그 죽음에 대한 책임으로 친구 동아리에서 떠나버린 수미의 이야기는 이 ‘사랑스러운’(소설가 정이현) 소설이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와도 같다. “아무도 깨어 있지 않은 시간에 나만 깨어서 영상들을 돌려보면, 영상 속의 사람들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나 언젠가 이 순간을 그리워하게 될 거야’ 하고 일찍 예감한 것 같은 표정들을 지었다. 현재를 살면서 아직 오지 않은 그리움을 먼저 아는 종자들이 특이하게 느껴졌지만, 내 주변엔 그런 이들이 많았다.” 영화 <써니>를 떠오르게도 하는 여섯 아이들의 성장담을 작가는 여백이 풍부한, 세련되고 감각적인 문장에 담아 그려 보인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사설] 노동자 안전 뒷전 중대재해법 후퇴가 민생 대책인가 [사설] 노동자 안전 뒷전 중대재해법 후퇴가 민생 대책인가](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300/180/imgdb/child/2024/0116/53_17053980971276_20240116503438.jpg)

![[올해의 책] 숙제를 풀 실마리를 찾아, 다시 책으로 ①국내서 [올해의 책] 숙제를 풀 실마리를 찾아, 다시 책으로 ①국내서](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800/320/imgdb/original/2023/1228/20231228503768.jpg)
![[올해의 책] 숙제를 풀 실마리를 찾아, 다시 책으로 ②번역서 [올해의 책] 숙제를 풀 실마리를 찾아, 다시 책으로 ②번역서](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original/2023/1228/20231228503807.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