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 다시 생각하기>
협동조합 다시 생각하기
신성식 지음
알마·1만8000원
신성식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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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협동조합 운동의 모범 사례로 칭송받아온 스페인 몬드라곤 협동조합의 가전회사인 파고르가 파산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협동조합 운동이 이제 서서히 싹을 틔우고 있는 국내에선 꽤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몬드라곤의 또다른 축인 에로스키 생협 역시 위기에 봉착했고, 영국 최대협동조합 코옵의 은행 사업은 헤지펀드에 장악됐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장밋빛처럼 느껴지기 쉬운 협동조합 운동이 사실은 얼마나 냉엄한 현실 속에 놓여 있는지 보여주는 적나라한 사례들이다.
한국 생활협동조합 운동의 1세대로서 20년 넘도록 협동조합 운동 현장을 지켜온 신성식 아이쿱생협 경영대표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그는 새로 펴낸 책 <협동조합 다시 생각하기>의 앞머리에서 협동조합 운동의 선구자인 알렉스 레이들로 박사에게 편지를 띄운다. 레이들로는 1980년 국제협동조합연맹 모스크바 총회에서 제출한 ‘서기 2000년의 협동조합’이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협동조합의 문제점과 취약점을 11가지로 제시한 바 있다. 지은이는 “33년이 지난 지금, 협동조합은 당시의 고민에 대한 해법을 완전히 찾지 못했다”고 인정하며, 그동안 현장에서 갈고닦은 생각들을 모아 새로운 해법을 제시하려 든다.
협동조합은 경제적 가치 외에도 환경적·사회적·윤리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비용(가치비용)을 투여하기 때문에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이 때문에 자본 중심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쉽사리 이길 수 없는 모순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렇다 보니 협동조합은 언제나 대세가 되지 못한 채 소수에 머무르고, 협동조합 안에서는 ‘우리끼리 잘하면 된다’ 식의 공동체 편향, 관제화, 기득권화 등이 진행되곤 한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최근 협동조합의 위기에 대해 “원칙을 경전으로 받아들이거나 생존만을 중시하는 경향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짚으며, 30여년 전 레이들로의 문제의식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이에 대해 지은이는 “협동조합이 새로운 상품을 개발해, 기존 시장과 다른 규칙과 질서가 가능한 새로운 시장을 설립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큰 틀을 먼저 제시한다. 그렇다면 새로운 시장을 설립할 수 있는 협동조합의 동력은 어디서 찾을 것인가? ‘조합원의 결의가 낮다’는 레이들로의 문제 지적에 대해, 지은이는 적극적인 참여자에게 더 큰 이익을 주는 ‘기여자우선원칙’을 통해 조합원 개인의 책임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임출자금, 활동가 사회보장제도 등을 통해 명목만 주인인 조합원들을 실질적인 ‘주인’으로 바꿔보자는 제안이다.
무엇보다도 ‘실사구시’에 대한 강조가 책 전반에 깊게 배어 있다. 지은이는 “협동조합은 이념운동이 아니라 대중운동이며, 그 해법은 경전에 있지 않고 현실에 있다”고 말한다. 협동조합이란 말 속에 담긴 이념적인 당위가 아니라, 무엇을 실천해서 어떤 결과를 만들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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