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를 여는 생각
내가 골드만삭스를 떠난 이유
그레그 스미스 지음, 이새누리 옮김
문학동네 펴냄
내가 골드만삭스를 떠난 이유
그레그 스미스 지음, 이새누리 옮김
문학동네 펴냄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미국 월가에서 고액연봉을 받던 금융맨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행동했을까.
145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굴지의 금융회사 골드만삭스에서 애널리스트와 파생상품 사업 책임자로 일했던 그레그 스미스는 골드만삭스가 금융위기 이후 본격적으로 고객들을 속이기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설계한 사람들도 알 수 없는 복잡한 파생상품을 만들어 공포에 사로잡힌 ‘어리숙한’ 고객들을 낚는 데 열중했다는 것이다.
지은이의 고백을 보며, 한국의 독자들은 건실한 수출 중소기업들을 도산에 빠뜨렸던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를 돌이키지 않을 수 없다. 금융위기 당시 이들은 ‘어리숙한 고객’이었다. 한국의 재판부는 키코 소송에서 은행들의 손을 들어줬다. 그레그 스미스 같은 내부고발자가 있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고객에 대한 터무니없는 착취, 양심 없는 뻔뻔함…. 나는 그런 것들을 더이상 견딜 수 없었다. 금융회사는 돈을 ‘버는’ 곳이지 ‘뺏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세계 최고 투자은행은 어떻게 타락해갔는가 잘나가던 골드만삭스 부사장이 왜 갑자기 내부 고발자가 되었을까. 그는 고객의 성공이 곧 회사의 성공이라고 믿었던 골드만삭스의 전통이 금융위기 이후 급격히 무너졌다고 폭로한다. 고객의 공포심과 탐욕을 이용해 복잡한 파생상품을 사도록 부추겼고, 그 결과는 재앙이었다. “나는 라스베이거스의 뜨거운 물이 담긴 욕조에 앉아 있었다. 세 명의 골드만삭스 부사장과 한 명의 매니징 디렉터, 기업공개 전 파트너, 그리고 윗옷을 걸치지 않은 여성과 함께 말이다.” 금융시장이 9·11의 충격에서 벗어나 새로운 거품을 형성해가던 2006년 4월, 이 책을 쓴 그레그 스미스(왼쪽 사진)는 자본주의가 피워낸 꽃밭에 앉아 꿀을 빨아먹는 운 좋은 나비였다. 동석한 골드만삭스 멤버 중 최하위 직급으로서 약간 불편했지만, 오히려 좋았다. 토플리스 욕조 파티 초대는 상사가 그를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뜻했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조금만 더 환락을 추구하는 데 충실했다면 그는 지금도 여전히 운 좋은 나비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12년 만에 회사를 때려치웠다. 그가 회사를 그만둔 날(2012년 3월14일) <뉴욕 타임스>에는 이 책 <내가 골드만삭스를 떠난 이유>의 원제(Why I Left Goldman Sachs)와 시제만 다른 제목의 칼럼이 실렸고,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골드만삭스의 주가는 폭락했다. 혹독한 경쟁을 뚫고 인턴사원으로 뽑혔고, 몇차례의 정리해고에도 살아남아, 일주일에 85시간씩 일하며 남들보다 빨리 부사장에 오른 그가 갑자기 내부 고발자가 된 이유는 뭘까. 이 책은 짧은 칼럼에 미처 담지 못했던 골드만삭스와 월스트리트의 타락상을 일인칭 시점으로 솔직하고 풍부하게 적고 있다.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세계 최대 금융회사의 속살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흥미가 생길 만하다. 그가 골드만삭스에 뭔가 이상이 생기고 있다고 느끼기 시작한 건 2007년 여름 무렵부터였다. 회사에 막대한 수익을 올려주던 ‘퀀트 헤지펀드의 컴퓨터 모델’들이 붕괴하기 시작한 것이다. 월가에서 퀀트는 물리학이나 응용수학 등에서 박사학위를 딴 컴퓨터 달인들을 뜻한다. 퀀트 펀드는 이들이 만든 컴퓨터 프로그램에 따라 자동으로 매매하는 펀드다. 금융회사들에 천문학적인 수익을 안겨주던 퀀트 펀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미국발 금융위기의 시발점이 된 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위기가 서서히 현실화하면서 재앙으로 변한다. 모든 컴퓨터가 일제히 ‘매도’라는 같은 방향을 가리키자 매수할 사람이 없어졌고, 거래가 사라지고 펀드자산이 폭락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시장은 패닉에 빠졌고, 고객들은 돈을 돌려달라고 아우성을 쳤다.(펀드런 사태) 골드만삭스 경영진은 위기를 만회하기 위해 ‘코끼리 사냥’을 나가자고 독려했다. 코끼리는 ‘단 한번의 거래로 회사에 100만달러 이상의 수익을 가져다주는 눈먼 고객’을 말한다. 고객들의 공포심과 탐욕을 이용해 복잡하게 ‘구조화한 파생상품’을 파는 것이다. 골드만삭스는 세계 최고 투자은행답게 전세계 기관투자가들을 상대하므로, 눈먼 고객은 주로 “경찰관, 소방관, 교사들의 연금을 관리하거나 자선단체, 기부기금 또는 재단의 자산 포트폴리오를 운영하는 투자 매니저들”이었다. 핵심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대형 헤지펀드들은 골드만삭스와 동맹을 맺어 오히려 이익을 취했다.
골드만삭스 경영진은
‘코끼리 사냥’을 나가자고 독려했다
코끼리는 단 한번의 거래로 회사에
100만달러 넘는 수익을 가져다주는
‘눈먼 고객’을 말한다 파생상품은 참치캔과 비슷하다
캔 뒷면에 매우 작은 글자가 쓰여있다
‘내용물은 참치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개밥이 담겨 있을 수도 있습니다’
많은 고객이 캔에서 개밥을 발견했다 이런 대형 퀀트 펀드들을 관리하고 판매하는 일을 했던 스미스는 이렇게 묘사한다. “구조화 파생상품을 사는 것은 가게에 들어가서 참치캔을 사는 것과 비슷한 점이 있다. (…) 만약 어느날 캔을 사서 집에 갔는데 캔 안에 개밥이 들어 있다고 생각해보자. (…) 캔 뒷면에는 글자가 너무 작아서 거의 읽을 수 없을 정도의 문구가 쓰여 있다. ‘내용물은 참치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개밥이 담겨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와 이탈리아 정부나 리비아 투자청, 오클랜드 시, 앨라배마 주,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기금과 재단은 모두 캔을 땄을 때 개밥을 발견한 경우와 같다고 볼 수 있다.” 알다시피, 골드만삭스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최종적으로 5억5000만달러의 벌금을 물기로 합의했다. ‘서브프라임 주택모기지담보부증권’이라는 합성 CDO(부채담보부증권) 상품을 팔면서 (골드만삭스가 자문한) 주요 헤지펀드들이 고객이 투자한 방향과 반대 방향의 투자를 했다는 사실을 고객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혐의였다. 스미스는 의회 청문회 과정에서 공개된 헤지펀드 매니저의 이메일을 인용해 이 파생상품이 “고객들은 물론 상품을 만들어낸 사람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 흉물 덩어리”라고 말한다. 문제는 이런 악마적 거래를 잘 성사시키는 직원이 천문학적인 돈을 회사에 벌어줬고, 그 대가로 어마어마한 성과급을 챙겨갔다는 사실이다. 사소한 주문 실수를 자주 저지르기로 악명 높던 한 문제아는 어느새 공포 마케팅의 귀재가 되어, 낮 12시에 출근해도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거물이 됐다. 지은이는 골드만삭스가 고객을 바보 취급하는 것이 가장 견디기 어려웠다고 고백한다. 고객의 편에서 정직하게 조언하고, 고객의 성공이 곧 회사의 성공이라고 생각했던 전통적인 문화가 사라지는 걸 지켜보는 게 고통스러웠다는 것이다. 대신 회사는 어떻게 하면 고객의 지갑을 털어 이익을 낼 것인지만 생각하는 괴물이 됐다고 그는 폭로한다. 이를테면 자기자본으로 투자를 하면서 고객을 반대 방향에 투자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스미스가 회사를 그만두게 된 직전의 상황은 ‘오큐파이 월스트리트’ 운동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였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 유럽 나라들의 재정위기로 시장에 또다른 위기가 닥쳐올 때였다. 그 와중에도 골드만삭스는 내부적으로 유럽 은행들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을 하면서도 고객들에게 ‘지금이 바로 매수할 시점’이라는 희망찬 얘기를 늘어놓았다. 증권거래위의 제재 이후에도 도덕적 해이는 계속됐다고 저자는 증언한다. 아마 지금도 그럴 것이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세계 최고 투자은행은 어떻게 타락해갔는가 잘나가던 골드만삭스 부사장이 왜 갑자기 내부 고발자가 되었을까. 그는 고객의 성공이 곧 회사의 성공이라고 믿었던 골드만삭스의 전통이 금융위기 이후 급격히 무너졌다고 폭로한다. 고객의 공포심과 탐욕을 이용해 복잡한 파생상품을 사도록 부추겼고, 그 결과는 재앙이었다. “나는 라스베이거스의 뜨거운 물이 담긴 욕조에 앉아 있었다. 세 명의 골드만삭스 부사장과 한 명의 매니징 디렉터, 기업공개 전 파트너, 그리고 윗옷을 걸치지 않은 여성과 함께 말이다.” 금융시장이 9·11의 충격에서 벗어나 새로운 거품을 형성해가던 2006년 4월, 이 책을 쓴 그레그 스미스(왼쪽 사진)는 자본주의가 피워낸 꽃밭에 앉아 꿀을 빨아먹는 운 좋은 나비였다. 동석한 골드만삭스 멤버 중 최하위 직급으로서 약간 불편했지만, 오히려 좋았다. 토플리스 욕조 파티 초대는 상사가 그를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뜻했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조금만 더 환락을 추구하는 데 충실했다면 그는 지금도 여전히 운 좋은 나비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12년 만에 회사를 때려치웠다. 그가 회사를 그만둔 날(2012년 3월14일) <뉴욕 타임스>에는 이 책 <내가 골드만삭스를 떠난 이유>의 원제(Why I Left Goldman Sachs)와 시제만 다른 제목의 칼럼이 실렸고,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골드만삭스의 주가는 폭락했다. 혹독한 경쟁을 뚫고 인턴사원으로 뽑혔고, 몇차례의 정리해고에도 살아남아, 일주일에 85시간씩 일하며 남들보다 빨리 부사장에 오른 그가 갑자기 내부 고발자가 된 이유는 뭘까. 이 책은 짧은 칼럼에 미처 담지 못했던 골드만삭스와 월스트리트의 타락상을 일인칭 시점으로 솔직하고 풍부하게 적고 있다.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세계 최대 금융회사의 속살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흥미가 생길 만하다. 그가 골드만삭스에 뭔가 이상이 생기고 있다고 느끼기 시작한 건 2007년 여름 무렵부터였다. 회사에 막대한 수익을 올려주던 ‘퀀트 헤지펀드의 컴퓨터 모델’들이 붕괴하기 시작한 것이다. 월가에서 퀀트는 물리학이나 응용수학 등에서 박사학위를 딴 컴퓨터 달인들을 뜻한다. 퀀트 펀드는 이들이 만든 컴퓨터 프로그램에 따라 자동으로 매매하는 펀드다. 금융회사들에 천문학적인 수익을 안겨주던 퀀트 펀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미국발 금융위기의 시발점이 된 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위기가 서서히 현실화하면서 재앙으로 변한다. 모든 컴퓨터가 일제히 ‘매도’라는 같은 방향을 가리키자 매수할 사람이 없어졌고, 거래가 사라지고 펀드자산이 폭락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시장은 패닉에 빠졌고, 고객들은 돈을 돌려달라고 아우성을 쳤다.(펀드런 사태) 골드만삭스 경영진은 위기를 만회하기 위해 ‘코끼리 사냥’을 나가자고 독려했다. 코끼리는 ‘단 한번의 거래로 회사에 100만달러 이상의 수익을 가져다주는 눈먼 고객’을 말한다. 고객들의 공포심과 탐욕을 이용해 복잡하게 ‘구조화한 파생상품’을 파는 것이다. 골드만삭스는 세계 최고 투자은행답게 전세계 기관투자가들을 상대하므로, 눈먼 고객은 주로 “경찰관, 소방관, 교사들의 연금을 관리하거나 자선단체, 기부기금 또는 재단의 자산 포트폴리오를 운영하는 투자 매니저들”이었다. 핵심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대형 헤지펀드들은 골드만삭스와 동맹을 맺어 오히려 이익을 취했다.
그레그 스미스
‘코끼리 사냥’을 나가자고 독려했다
코끼리는 단 한번의 거래로 회사에
100만달러 넘는 수익을 가져다주는
‘눈먼 고객’을 말한다 파생상품은 참치캔과 비슷하다
캔 뒷면에 매우 작은 글자가 쓰여있다
‘내용물은 참치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개밥이 담겨 있을 수도 있습니다’
많은 고객이 캔에서 개밥을 발견했다 이런 대형 퀀트 펀드들을 관리하고 판매하는 일을 했던 스미스는 이렇게 묘사한다. “구조화 파생상품을 사는 것은 가게에 들어가서 참치캔을 사는 것과 비슷한 점이 있다. (…) 만약 어느날 캔을 사서 집에 갔는데 캔 안에 개밥이 들어 있다고 생각해보자. (…) 캔 뒷면에는 글자가 너무 작아서 거의 읽을 수 없을 정도의 문구가 쓰여 있다. ‘내용물은 참치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개밥이 담겨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와 이탈리아 정부나 리비아 투자청, 오클랜드 시, 앨라배마 주,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기금과 재단은 모두 캔을 땄을 때 개밥을 발견한 경우와 같다고 볼 수 있다.” 알다시피, 골드만삭스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최종적으로 5억5000만달러의 벌금을 물기로 합의했다. ‘서브프라임 주택모기지담보부증권’이라는 합성 CDO(부채담보부증권) 상품을 팔면서 (골드만삭스가 자문한) 주요 헤지펀드들이 고객이 투자한 방향과 반대 방향의 투자를 했다는 사실을 고객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혐의였다. 스미스는 의회 청문회 과정에서 공개된 헤지펀드 매니저의 이메일을 인용해 이 파생상품이 “고객들은 물론 상품을 만들어낸 사람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 흉물 덩어리”라고 말한다. 문제는 이런 악마적 거래를 잘 성사시키는 직원이 천문학적인 돈을 회사에 벌어줬고, 그 대가로 어마어마한 성과급을 챙겨갔다는 사실이다. 사소한 주문 실수를 자주 저지르기로 악명 높던 한 문제아는 어느새 공포 마케팅의 귀재가 되어, 낮 12시에 출근해도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거물이 됐다. 지은이는 골드만삭스가 고객을 바보 취급하는 것이 가장 견디기 어려웠다고 고백한다. 고객의 편에서 정직하게 조언하고, 고객의 성공이 곧 회사의 성공이라고 생각했던 전통적인 문화가 사라지는 걸 지켜보는 게 고통스러웠다는 것이다. 대신 회사는 어떻게 하면 고객의 지갑을 털어 이익을 낼 것인지만 생각하는 괴물이 됐다고 그는 폭로한다. 이를테면 자기자본으로 투자를 하면서 고객을 반대 방향에 투자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스미스가 회사를 그만두게 된 직전의 상황은 ‘오큐파이 월스트리트’ 운동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였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 유럽 나라들의 재정위기로 시장에 또다른 위기가 닥쳐올 때였다. 그 와중에도 골드만삭스는 내부적으로 유럽 은행들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을 하면서도 고객들에게 ‘지금이 바로 매수할 시점’이라는 희망찬 얘기를 늘어놓았다. 증권거래위의 제재 이후에도 도덕적 해이는 계속됐다고 저자는 증언한다. 아마 지금도 그럴 것이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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