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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60대가 된 ‘여공’이 직접 쓴 전태일 시대

등록 2014-05-18 19:55

서울 청계천 주변에서 빈민구호활동을 했던 일본인 노무라 모토유키가 1973년 7월에 찍은 평화시장 봉제공장 모습.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서울 청계천 주변에서 빈민구호활동을 했던 일본인 노무라 모토유키가 1973년 7월에 찍은 평화시장 봉제공장 모습.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열세살 여공의 삶>
<열세살 여공의 삶>
열세살 여공의 삶
신순애 지음
한겨레출판·1만4000원

고 조영래 변호사는 <전태일 평전>에 이렇게 썼다. “평화시장의 공장들이 닭장처럼 되어 있고 어두컴컴한 곳에서 어린 여공들이 쉴 새 없이 하루하루 자신의 목숨을 갉아먹고 있다. 하루 16~18시간씩 일을 하면서도 하루 일당은 불과 커피 한 잔 값 정도(…).” 그는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1960~70년대 평화시장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나이 어린 시다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묘사했는데, 이는 열세살 때부터 평화시장에서 일해왔던 여성 노동자 신순애씨와의 만남 덕분에 가능했다. 전태일의 어머니 고 이소선 여사가 당시 전국연합노동조합 청계피복지부(청계노조)에 갓 몸을 담았던 신씨를 소개해준 것이다.

<열세살 여공의 삶>은 신씨가 노동자로서 스스로의 역사를 다룬 자신의 석사 논문을 정리해 최근 펴낸 책이다. 신씨는 1966년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한 채 평화시장의 ‘여공’이 됐고, 청계노조와의 만남을 계기로 ‘노동자’가 됐다. 그 뒤엔 53살의 나이로 성공회대에 입학해 석사과정까지 마치는 등 만학의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남의 입을 통해 자신의 삶을 드러냈던 나이 어린 시다가, 이제 30년이 더 지난 지금 자신의 입으로 직접 자신의 삶을 말하고 나선 것이다.

‘7번 시다’의 이름 찾아준 청계노조
노동자의 자부심 찾으려 발버둥
가부장 문화 속 이중 차별에 신음

이런 작업은 최근 국내에서 주목받고 있는 ‘노동자 자기 역사 쓰기’ 시도의 일환으로 평가할 수 있다. 여태껏 지식인들이 노동자들의 경험과 인식을 대변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노동자 개인이 갖고 있는 주체적인 인식이 왜곡되거나 제대로 전달되기 어려웠다. ‘자기 역사 쓰기’는 이런 한계를 피하고자 하는 시도로, 특히 ‘주체’로서의 자격을 가장 심하게 박탈당했던 여성 노동자들을 위주로 이뤄지는 경향을 보인다.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여성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모은 <나, 여성노동자>(그린비, 2011)를 대표 사례로 꼽을 수 있다.

기존의 역사 서술을 통해 60~70년대 여성 노동자의 삶에 대해 대충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지은이가 써내려간 ‘자기 역사’ 속에서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드는 대목들을 새롭게 만나게 된다. 실제 현실에 더욱 가까이 맞닿은 구체적인 서술들이 그렇다. 지은이는 “나는 1966년부터 ‘7번 시다, 3번 미싱사, 1번 오야’로 불렸다. 내 이름을 다시 찾은 것은 1975년 청계노조에서였다”고 한다. 사람을 이름이 아닌 번호로 부른 것은, 옷이 잘못됐거나 불량이 나올 때 그것을 효율적으로 수선하기 위해서였다. 여성 노동자들은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 물 한 모금 마시는 데에도 눈치를 살피며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먼지를 뒤집어쓰고 일에만 몰두해야 했다. 오죽하면 나중에 경험한 수감 생활을 두고 ‘일하는 것보다 더 낫다’는 생각까지 했을까. 사장·공장장·재단사·미싱사·시다들 사이에 촘촘하게 이어진 권력 관계, 그 속에서 권력의 최하층에 있었던 자신의 일과 삶에 대한 구체적인 서술은 단지 한 개인의 경험으로 끝나지 않고 당시의 보편적인 삶의 현장을 고스란히 불러온다.

무엇보다 주목할 대목은 당시 여성 노동자들이 노동자, 여성, 시민으로서의 주체성을 획득해나가는 모습이다. 여성 노동자들은 고된 노동 속에서도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해 ‘노동교실’을 찾아갔고, 노조를 만들고 서로 연대하며 ‘1일 8시간 노동’ 쟁취 투쟁 등에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들은 70년대 민주노조 운동의 중심이었다. 그런데도 기존의 역사 서술은 ‘불쌍한 여공’들의 신산한 삶에만 시선을 고정했을 뿐 노동자로서의 자부심과 정체성을 스스로 획득하기 위해 발버둥쳤던 그들의 주체적인 움직임은 제대로 보지 못했다.

한편으론 가부장 문화 아래에서 외면당했던, 여성 노동계급이 겪었던 차별과 고통을 되새긴다. 1980년 대대적인 노동운동에 대한 탄압 속에서 공안기관에 끌려간 지은이는 담당자로부터 ‘한글도 모르는 여공 따위’ 식의 소름 끼치는 모멸을 당한다. 직장에서 성희롱·성폭력의 위협 아래 놓여 있던 여성 노동자들은 노조 활동가가 된 뒤에도 국가권력의 ‘성고문’ 위협을 두려워해야 했다. 여성 노조 활동가들은 80년대 들어 더 광폭해진 국가로부터 ‘빨갱이 낙인’, ‘경제적 어려움’ 등에 시달렸지만, 한편으론 이를 ‘어쩔 수 없었던 개인의 불행’으로 치부해버리는 가부장적인 시선에 이중으로 신음해야 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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