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서(61) 연세대 국학연구원 원장
[짬] ‘사회인문학의 길’ 펴낸 백영서 연세대 교수
학문은 어떤 역할을 할까
‘사회인문학’이란 화두 던져
“역사학은 열려있어야 현실과 소통
구체적 삶의 이야기 복원 중요” 백 교수는 고담준론이나 정신유희에 그치는 학자로만은 살 수 없었다. 그는 1974년 학생운동을 하다 서울대에서 제적당하며 10개월 남짓 옥살이를 했다. 그뒤 재입학이 허용되지 않아 78년까지 창작과비평사에서 일하다 80년 ‘서울의 봄’에 복학한다. 결혼 뒤 뒤늦게 대학원에 가기 전까지 노동현장이냐 대학원이냐를 놓고 갈등했다. 교수가 된 뒤에도 “제도와 운동 사이에 길을 터야 한다”는 생각으로 창작과비평 주간을 맡았다. 그의 고민은 2007년 연세대 국학연구원장을 맡아 ‘21세기 실학으로서의 사회인문학’이란 주제 아래 2008년부터 진행해온 인문한국(HK)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한층 구체화했다. “책 제목인 ‘사회인문학’(소셜 휴머니티스)이란 개념은 연구원에서 처음 제안한 것이다. 인문학의 사회성과 사회의 인문성을 구현하는 비판적 학문 활동이다.” 제도권 안에서 ‘인문학’은 구조조정과 학생수 감소로 인한 ‘위기론’이 10여년 전부터 터져나온다. 평가지표에 맞춰야 한다는 부담이 크기 때문에 비판성이 약해지는 한계도 있다. 반면, 대중적으로 인문학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될 만큼 큰 유행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지식’의 재생산이라는 면에서 깊이가 부족하고 불안정하다. 따라서 사회인문학은 이 두 문제에 대한 대안이 되고자 했다고 백 교수는 말했다. “가능하면 현장에 밀착한 문제의식을 갖고 우리가 발 딛고 선 동아시아 현장에서 역사적·사상적 과제를 읽어내는 글을 쓰려고 했다. 그러면서 나 또한 ‘성찰하고 운동하는 삶’의 긴장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의 전공인 역사학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쑨거(孫歌) 중국 사회과학원 문학연구소 교수는 백 교수의 연구를 가리켜 “문제의식 자체에 매우 강렬한 내재적 긴장감이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 ‘긴장감’은 학자로서 성찰하려는 자세와도 연관된다. 이번 책에서도 그는 기존 학계의 문제를 낱낱이 질타했다. “동아시아 근대 역사학이 자신의 역사를 온전히 해명할 언어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거나 “지식과 일반 대중이 분리된 지적 식민성에서 벗어나기 힘들어졌다”고 했다. 일본이 서구 역사학을 수용하면서 탄생한 동양사학의 문제점도 비판했다. 그는 ‘공공성의 역사학’을 강조한다. “역사학은 현실과 소통해야 한다. 책에서 ‘소통적 보편성’이라는 개념을 제기했는데, 개별성과 상호이해의 가능성을 찾으려는 것이다. 각 개체 안에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보편적 요소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는 과거 사람들과 공감하면서 우리의 정체성을 돌이켜보는 것이다. 공문서같은 1차 사료가 아니라 개인의 구체적인 삶의 이야기를 복원하는 것, 드라마나 영화 등 유행하는 이야기로서의 역사에 대한 비평을 하고 공론장에 개입하는 일도 포함한다. 나아가 ‘수양론’이나 ‘교양’으로서 역사학의 구실까지 고민한다. “이런 역사학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열려 있음’을 전제로 한다”. 그게 바로 ‘소통’이라는 얘기다. “새로운 어휘로 말하자면 ‘역사하다’가 될 것이다.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역사하는’, 사물을 변화하는 시간 속에서 파악하고 기록을 중시하는 자세를 익힌다면 공공성의 역사학은 내용이 더 풍부해질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는 역사나 인문학을 할 때 서구인이 아닌 동아시아인의 시각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는 ‘내가 누구인가’를 규명하는 정체성의 문제다. “한국 연구자들마저 동아시아 사상 자원을 활용하려 들지 않아 안타깝다”고 했다. 물론 학계와 현실은 사뭇 다르다. 학자들은 ‘탈민족주의’를 강조하지만, 대중적으로는 축구 경기 때마다 대리전 양상이 벌어지는 등 ‘민족주의적’ 감성이 점점 강화되고 있다. 한국의 민주화가 중단되면서 동아시아 시민사회 전체가 침체된 것도 문제다. 하지만 그는 우리뿐 아니라 대만, 오키나와처럼 서구 중심 세계관에서 벗어난 ‘주변’, 중국과 일본 본섬 중심의 동아시아 위계질서에서도 벗어난 ‘이중적 주변의 시각’을 가져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그것이 바로 주류가 아닌 비판적 시각을 가지면서도 ‘주체’가 되는 정체성의 회복이자 인문학의 정신을 되살리는 길이다. 백 교수는 자신에게 이런 비판적 시각을 심어준 스승들이 있다고 강조했다. “리영희 선생, 민두기 선생, 백낙청 선생이다. 세 분 스승들이 늘 내 안에서 야단치고 격려하면서 ‘운동과 제도로서의 학문’을 넘나들게 한다. 리영희 선생으로부터는 ‘온몸을 걸고 하는 게 중요하다’고 배웠다. 가수도 목소리와 뱃소리가 다르지 않나. 글을 쓸 때도 그렇게 자기의 전부를 걸어야 한다.” 오는 9월부터 그는 국학연구원장 임기를 마치고 1년 안식년에 들어간다. “이제야 비로소 제도 안에서 전문 지식을 축적하는 ‘학술’에서, 지혜를 깨닫고 사람을 변화시키는 ‘학문’의 길로 나아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유진 기자frog@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연재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