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순신이 있었다>
7월 28일 교양 잠깐독서
그러나 이순신이 있었다
김태훈 지음
일상이상·2만8000원 ‘동아시아 7년전쟁’(임진왜란)이 일어난 뒤, 조선에 주둔한 일본군의 심장부는 역시 부산포였다. 뭍 전투에 별 희망을 품을 수 없었던 조선 조정은 이순신에게 부산포를 공격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이순신은 부산포로 가는 길목에 있는 웅포, 안골포에 주둔한 일본군의 위협 때문에 쉽게 공격을 하지 못하고 대치전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이순신 수군이 수많은 승리를 거뒀어도 전쟁이 7년이나 지속된 이유 가운데 하나다. 전문 사학자가 아니지만 ‘이순신 전문가’인 김태훈씨는 <그러나 이순신이 있었다>에서 “이순신이 전쟁을 조기에 끝낼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고 안타까워한다. 전쟁 초기에 이순신 함대가 부산포 앞에 있는 절영도에 주둔하는 모험을 폈더라면, 부산포의 일본군을 압박하는 한편 일본에서 오는 공급도 끊을 수 있었을 것이란 주장이다. 애초 이순신에게도 일본군의 상륙 자체를 저지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는 점도 밝힌다. 전국은행연합회에서 일하는 지은이는 10여년 전 이순신에게 푹 빠져든 뒤 평면적인 ‘위인전의 주인공’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인물’로 조명하려고 노력해왔다. 2004년 펴낸 <이순신의 두 얼굴>에 이어, 증보판에 가까운 이번 책에서도 꼼꼼한 사료 조사를 통해 ‘평범한 인간’에서 ‘비범한 용장’으로 나아간 이순신을 입체적으로 분석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김태훈 지음
일상이상·2만8000원 ‘동아시아 7년전쟁’(임진왜란)이 일어난 뒤, 조선에 주둔한 일본군의 심장부는 역시 부산포였다. 뭍 전투에 별 희망을 품을 수 없었던 조선 조정은 이순신에게 부산포를 공격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이순신은 부산포로 가는 길목에 있는 웅포, 안골포에 주둔한 일본군의 위협 때문에 쉽게 공격을 하지 못하고 대치전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이순신 수군이 수많은 승리를 거뒀어도 전쟁이 7년이나 지속된 이유 가운데 하나다. 전문 사학자가 아니지만 ‘이순신 전문가’인 김태훈씨는 <그러나 이순신이 있었다>에서 “이순신이 전쟁을 조기에 끝낼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고 안타까워한다. 전쟁 초기에 이순신 함대가 부산포 앞에 있는 절영도에 주둔하는 모험을 폈더라면, 부산포의 일본군을 압박하는 한편 일본에서 오는 공급도 끊을 수 있었을 것이란 주장이다. 애초 이순신에게도 일본군의 상륙 자체를 저지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는 점도 밝힌다. 전국은행연합회에서 일하는 지은이는 10여년 전 이순신에게 푹 빠져든 뒤 평면적인 ‘위인전의 주인공’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인물’로 조명하려고 노력해왔다. 2004년 펴낸 <이순신의 두 얼굴>에 이어, 증보판에 가까운 이번 책에서도 꼼꼼한 사료 조사를 통해 ‘평범한 인간’에서 ‘비범한 용장’으로 나아간 이순신을 입체적으로 분석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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