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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광부들은 왜 동성애자 행진에 갔나

등록 2014-08-03 19:43

<무지개 속 적색>은 진정한 성 해방은 오직 종합적인 사회 변혁의 전망과 함께했을 때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사진은 지난 6월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에서 열린 제15회 퀴어문화축제 모습. 
 이종근 기자 <A href="mailto:root2@hani.co.kr">root2@hani.co.kr</A>
<무지개 속 적색>은 진정한 성 해방은 오직 종합적인 사회 변혁의 전망과 함께했을 때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사진은 지난 6월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에서 열린 제15회 퀴어문화축제 모습.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무지개 속 적색-성소수자 해방과 사회변혁>
<무지개 속 적색-성소수자 해방과 사회변혁>
무지개 속 적색-성소수자 해방과 사회변혁
해나 디 지음, 이나라 옮김
책갈피·1만2000원

지난 세기 동안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의식에 큰 진전이 있었고 이에 근거한 제도 변화도 일부 이뤄져왔다. 그러나 이런 변화가 무색하게도 최근 우리는 성소수자와 성소수자 운동에 대한 공격 역시 급증하고 있는 현상을 보고 있다.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조직적인 반대,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성소수자들에게 가해지는 공공연한 테러. 이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로 묶인 전세계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영국의 성소수자 활동가인 해나 디는 2010년 펴낸 <무지개 속 적색>에서 “성소수자가 계속 억압받는 것은 그 억압이 자본주의 사회조직 전반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그의 문제의식은 비교적 간단명료하다. 주류 성소수자 정치는 오랫동안 평등을 주장하며 개혁 입법을 성취하는 일에만 매달려왔는데, 그보다 더 나아가 사회주의자와 노동계급과 함께 지배체제를 해체하고 세상을 바꾸는 더 넓은 투쟁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농경과 함께 시작된 성소수자 억압
자본주의 등장으로 더욱 체계화
계급투쟁 뒤엔 언제나 성 해방 투쟁
사회변혁 이뤄져야 진정한 결실 가능

지은이는 성소수자 운동의 실제 역사에서 이 주장의 정당성을 확인한다. 20세기 초 독일과 러시아에서 일었던 개혁과 혁명 속에 담겼던 성 해방, 성소수자 운동의 역사적 지표와 같은 미국 뉴욕의 스톤월 항쟁, 1980년대 대처리즘에 맞선 광원노조 파업 당시 광산 노동자와 동성애자들의 연대 등 우리가 미처 잘 몰랐던 역사 속에 “성소수자 투쟁과 더 넓은 사회적 반란을 연결하려는 노력이 마치 ‘무지개 속 적색’처럼” 알알이 배겨 있다.

수렵과 채집 사회에서는 사람을 성별에 따라 체계적으로 분류하거나 성적 관계를 엄격한 도덕률로 구속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농경을 통해 잉여 생산이 가능해진 뒤에야 성 행동과 성별 역할을 통제하는 일이 시작됐다. 여기에 자본주의의 등장은 새로운 억압과 새로운 저항을 함께 불러온다. 결혼을 구두 합의에서 법적인 계약으로 바꾸고 재산·소득·자녀에 대한 여성의 권리를 박탈한 1753년 영국의 혼인법이 대표적인 사례다. 가족제도는 점차 유일한 삶의 방식으로 굳어졌고, 국가는 동성애를 ‘일탈적 성행위’로 낙인찍어 처벌하는 등 성에 대한 체계적인 억압을 펴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배계급에 대한 저항에는 언제나 성 해방 투쟁이 함께 있었다. 1800년대 초중반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은 ‘성을 스스로 통제할 자유’를 주장한 최초의 선동가들이었다. 20세기 전환기 독일에서는 세계 최초의 동성애자 권리 조직인 ‘과학적 인도주의 위원회’(SHC)가 출범했고, 위원회는 사회민주당의 지지를 받아 동성애를 당대 중요한 정치 쟁점으로 만들었다. 1917년 러시아 혁명 뒤 혁명정부의 첫 조처 가운데에는 ‘동성애 비범죄화’가 포함됐다. 아울러 결혼을 등록 절차로 바꾸고 낙태를 합법화하는 등 부르주아 가족제도를 약화시키는 조처들이 내려졌다. 물론 그 뒤 나치와 스탈린에 의해 독일과 러시아의 노동계급 운동이 짓밟히면서 이러한 성 해방 투쟁의 승리 역시 무위로 돌아갔다.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에서 개화한 동성애 문화를 누리던 수많은 성소수자들은 한순간에 수용소로 끌려가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기대가 사그라진 뒤에도 노동계급 투쟁과 성 해방 투쟁은 그치지 않고 함께했다. 1969년 미국 스톤월이라는 술집에서 경찰의 단속에 맞서 성소수자들이 폭동을 일으킨 뒤 ‘동성애자해방전선’ 조직이 만들어졌다. 이들은 창립 선언에서 “우리는 기존 사회제도가 철폐되기 전에는 아무도 완전한 성 해방을 누릴 수 없다는 각성으로 뭉쳤다”고 밝혔다. 광산 폐쇄와 대량 해고에 맞서 싸우던 영국의 광산 노동자들은 1985년 동성애자 자긍심 행진(퀴어 퍼레이드)에 펼침막을 들고 참가했다.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조합은 “두 집단이 공통의 적을 상대하고 있음을 깨달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지은이는 지배계급의 ‘분열 지배’의 의도에 따라 성소수자 의제가 그야말로 개인별 성적 정체성에 기반한 성 해방에만 고정되는 것을 염려한다. 지금 우리가 꼭 갖춰야 하는 것은 “모두를 위한 해방을 쟁취할 사회주의 사회”에 대한 전망이라고 말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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