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캘리니코스 교수.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맑시즘 2014’ 온 앨릭스 캘리니코스 교수
트로츠키 노선 대표적 이론가
“피케티는 ‘자본’ 개념 잘못 이해해
마르크스학, 노동자 불안정성 포착”
“세월호 참사, 자본주의 탈규제 탓
‘자본론’은 한국인 처지 바꿀 도구”
트로츠키 노선 대표적 이론가
“피케티는 ‘자본’ 개념 잘못 이해해
마르크스학, 노동자 불안정성 포착”
“세월호 참사, 자본주의 탈규제 탓
‘자본론’은 한국인 처지 바꿀 도구”
마르크스주의 석학이자 영국 사회주의 노동자당 중앙위원장인 알렉스 캘리니코스 영국 런던 킹스칼리지 교수(유럽학)가 3년 만에 방한했다. 그는 7일부터 10일까지 고려대학교에서 열리는 국내 최대 마르크스주의 포럼 ‘맑시즘 2014’에서 <자본>의 해독, 제국주의, 국제 계급투쟁, 세월호와 노동자 저항을 주제로 강연한다. (http://www.marxism.or.kr/page/alex-callinicos)
캘리니코스 교수는 1950년 짐바브웨 출생으로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자본론의 논리학’이라는 논문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국 반신자유주의 단체인 ‘저항의 세계화’의 활동가로도 유명하다. 트로츠키주의의 대표적인 이론가로서 지금까지 <트로츠키주의의 역사>(백의), <포스트모더니즘 비판>(성림), <현대 철학의 두가지 전통과 마르크스주의>(갈무리), <칼 맑스의 혁명적 사상>(책갈피) 등을 낸 바 있다.
다음달 영국에서 그의 새 책인 <자본 해독하기: 마르크스의 <자본>과 그것의 운명>(원제: Deciphering Capital)이 발간될 예정이다. 여기서 그는 노동계급 구조의 변화를 서술하고 이와 관련해서 최근 진행돼온 논쟁에 대해서 다뤘다. 최근 영국에서는 데이비드 하비의 <자본> 강독이 큰 성공을 거두는 등 몇년 동안 마르크스의 <자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 때문에 그의 저작은 출간 전부터 화제가 됐다.
6일 오전 서울에 도착한 캘리니코스 교수를 그날 오후 인사동의 한 찻집에서 만났다. 유럽에서 한국까지 오랜 시간 비행기를 타고 온 탓에 조금 지친 기색이었지만, 그는 세계 좌파들의 위기와 오해에 대해 성심성의껏 신중하게 답했다.
-이번에 여러 건의 강연을 하는데, 어떤 내용을 강조할 것인가?
“나 개인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최근 쓴 책인 <자본 해독하기>에 대한 강의가 중요하다. 하지만 제국주의에 대한 논의도 중요하게 다룰 것이다. 오늘날 좌파들의 혼란이 제국주의에 대한 이해문제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보통 제국주의라고 하면, 미국만을 떠올리기 쉬운데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정의한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에서 발달해 나온 국가간의 경제적이고 지정학적인 경쟁체제를 말한다. 제국주의는 항상 복수 제국주의 국가들간의 이야기고, 이런 맥락에서 이해를 하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에 좀더 잘 들어맞는다.
-좌파가 제국주의의 어떤 측면을 특히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예를 들면 동아시아에서도 일본, 중국, 미국 등 여러 제국주의가 각축하고 있다. 중국은 특히 앞으로 점점 제국주의 국가로 중요하게 나아갈 가능성이 크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싸고도 러시아 제국주의가 미국·유럽연합과 대립하고 있는 국면이다. 좌파의 상당수가 이런 새로운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여러 제국주의들이 경합을 벌일 때, 특히 시리아 혁명을 대할 때도 많은 좌파들이 아사드 정권의 편을 들었다. 전통적으로 아사드 정권이 미국과 대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정권이 수만명을 학살하고 민주주의 대중운동을 파괴했다는 사실은 보지 못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문제에서도, 본질을 정확히 보자면 그곳의 민족주의자들 양 진영이 모두 각자 제국주의 후원세력이 있다. 경쟁하는 민족주의 집단들 때문에 나라가 절단나는 상황인 것이다. 그들 안에서도 친서방파와 친러시아파가 편이 갈려있고, 그들은 옮겨다니며 유동적이다. 또한 소비에트 연방 해체 이후 우크라이나의 국유재산을 강탈해간 올리가르히(러시아 신흥재벌)의 문제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번 강연에서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도 언급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점을 지적하고 싶은가?
“이는 명백히 자유주의 시장의 자본주의적 탈규제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최대한 많은 인원과 화물을 배에 태우고 실으려 한 것이다. 구출에 실패한 무능한 국가의 문제, 안전관리 규정과 운항 규정을 눈감아준 해운 당국의 책임이 크다. 1989년 영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힐스보로 스캔들’이 있었다. 축구 경기장에서 96명이 사망했다. 책임 있는 경찰은 발뺌했고, 한국과 비슷하게 영국에서도 우파 여성 정치인인 대처가 지도자였다. 대처는 그로부터 몇년 전 그 지역 광부들의 파업을 분쇄하는 데 공로를 세운 경찰들에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정부는 힐스보로 사건 전말을 은폐했다. 리버풀 출신의 유가족들은 지난 25년 동안 끊임없는 진상규명 운동을 벌였고 이제야 정부의 은폐 공작이 어느 정도 드러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지기 시작했고, 책임자들에 대한 조사도 진행되고 있다. 세월호와 힐스보로 참사의 공통점은 한국 독자들이 판단하기 바란다.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진실을 요구하는 투쟁을 한다면 정의를 쟁취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란 점이다.”
캘리니코스 교수는 최근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에 대해 논평했다. 그는 “피케티의 책이 부(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데서 강점과 약점이 모두 나온다”고 보았다. 경제적 불평등을 다루는 연구들은 주로 소득의 차이를 보았지만, 피케티는 부의 분배에 대해 정교하게 접근했다는 것이다. 그는 피케티가 자료를 분석하고 표기하는 데 오류를 저질렀다면서 공격하는 <파이낸셜 타임스>를 비판하기도 했다. “피케티 공격은 일종의 이데올로기적 치안활동”이라는 것이다. 우파 경제학자들의 목적은 자본주의가 발달할수록 경제적 불평등이 증가한다는 피케티의 이론에 흠집을 내며 신뢰를 떨어뜨리는 데 있다고 본 것이다.
피케티는 자본의 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으면 부자들이 소득을 모아 부를 쌓게 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캘리니코스 교수는 여기서 피케티가 결정적으로 잘못된 이해를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피케티는 집을 포함한 모든 형태의 부가 자본이 될 수 있다고 보았지만, 이는 주류경제학이 말하는 자본의 규정이라고 캘리니코스 교수는 말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을 ‘사회관계망’으로 파악했기 때문에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 자본가들 사이의 경쟁적 관계를 중요하게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자가 집을 소유하고 있다고 해서 이윤의 원천이 되는 잉여가치를 얻을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된 건 아니라는 얘기다.
-피케티 <21세기 자본>이 한국에서도 관심을 끌고 있다. 어떤 장점과 한계가 있다고 보나.
“피케티는 매우 강력한 의미를 던져줬다. 서구 자본주의 아래서 경제적 불평등이 지난 100년 동안 얼마나 컸는지 부각시키고 자본주의 경제 동향을 맥락적으로 진단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본다.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구조적 문제 때문에 경제적 불평등이 증가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했다. 경제적 불평등이 20세기 초반 양차 세계대전 동안 크게 줄었지만, 그뒤로 다시 점점 심각해져 100년 전 수준으로 돌아갔다는 점을 입증한 것이다. 피케티 분석의 핵심은 ‘r(자본수익률)>g(경제성장률)’라는 유명한 공식이다. 문제는 이런 설명이 기본적으로 기계적이며, ‘자본’의 범주가 너무 넓어 어떤 자산도 자본으로 규정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주류 경제학의 ‘자본’ 규정이다. 이에 반해, 마르크스 경제학은 ‘자본’을 사회적 관계망으로 이해한다. 생산수단을 통제하는 자본가와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자 둘 사이의 관계를 중요하게 본 것이다. 집 같은 자산은 자본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자본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에 자본수익률이 수백년 동안 일정했던 것처럼 보게 됐다.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적 경제학 관점에서 이윤율은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경향적으로 하락한다. 이윤율의 등락은 경제성장률의 등락에도 영향을 끼친다. 이처럼 마르크스 경제학에서 자본주의는 피케티의 분석보다 훨씬 역동적이다. 그럼에도 피케티의 책이 준 정치적 영향력은 높이 산다.
-불안정 노동자(프레카리아트)가 등장하면서 노동자들 사이 계층화가 심화한 문제를 어떻게 보는가?
“‘불안정성’이란 개념은 현상을 드러내는 것 말고는 유용하지 않다고 본다. 나는 노동자계급의 계층화가 극단적이거나 공고화했다고 보지 않는다. 정규직들과 ‘산업예비군’의 경계도 불분명하다. ‘산업예비군’은 마르크스의 자본 분석에서 중요한 개념 중 하나로서, 임금노동자로 완전히 통합되지 않는 군까지 포착한 것이다. 산업예비군은 경제적 기능과 생활의 비참함 정도에 따라 구분된다. 정규직 고용 노동자들과 산업예비군은 명확하게 나누기 어려워졌다. 예컨대 영국에서는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기한을 정하지 않는 근로계약을 맺고 일한다. 노동법이 개악되면서 정규직 노동자의 해고도 쉬워졌다. 나 또한 대학교수로서 고임금에 안정적 직장을 갖고 있지만 쉽게 해고당할 수도 있다. 신자유주의의 특징 중 하나는 이처럼 급격한 프롤레타리아화가 진행된다는 것이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잘 조직됐던 육체노동자 조직들의 쇠퇴와 이런 과정이 맞물려 벌어졌다. 예컨대 영국의 공공영역, 보건의료직군, 교사집단 등이다. 지난달에도 내가 속한 대학에서 정리해고 반대 파업을 벌인 바 있는데,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 모든 노동자들의 처지가 이처럼 더욱 불안정해지고 있는 것이다. 노동조합이 없는 조직, 청년노동자와 같은 취약한 집단을 조직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취약한 집단인데 어떻게 조직화를 할 수 있는가?
“새로운 분야를 잘 조직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예컨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우에도 플래티늄 광산 노동자들이 10개월 동안 파업한 사례가 있다. 노동자들은 극도의 저임금을 받았고, 아파르트헤이트 정권 아래에서도 있었으며 계절노동시장에 있었던 사람들이다. 2년 전 그들은 마리카나 광부 학살을 겪으며 엄청난 국가폭력에 직면했다. 자신들의 노조 대표와도 싸워야만 했다. 하지만 새로운 노조 세워서 강경한 고용주의 굴복을 얻어냈다. 지난 6월쯤 결국 승리를 쟁취했다.”
-세계 곳곳의 노동자들 움직임에서 긍정적인 신호를 잘 찾아내는 것 같다. 희망을 주려 함인가?
“유럽의회 선거에서 포퓰리즘 정당이 1위에 득표하는 등 상황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으며, 나는 이와 관련해 어떤 환상도 갖고 있지 않다. 몇년 전 오큐파이 운동이나 아랍혁명 등이 일어났는데, 그때에 견줘 많은 실망과 좌절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수많은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조직화를 해 싸워 이길 수 있다는 사례를 많이 본다. 그 점이 희망을 준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세계 자본주의는 1930년대 이래 최악의 위기상황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 안에서 특히 정치적 불안정성이 두드러진다. 유럽에서 한국까지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우크라이나, 중동 같은 분쟁지역을 피해다녀야 했다. 이런 신호는 세계자본주의의 지배계급이 세계를 안정적으로 통치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징조이기도 하다. 자본주의가 역동적 체제이다보니 노동계급에서 새로운 부문이 탄생하기도 하고, 확장되기도 한다. 내가 처음 마르크스주의자가 된 1970년대에도 베트남의 강력한 산업노동계급이 등장할지 아무도 몰랐다. 이는 새로운 노동계급에게 미래가 있다는 점을 일러주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승리가 보장됐다는 건 아니다. 20세기 역사 전체가 혁명의 성공은 필연적이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나는 마르크스가 가진 과학적 엄밀함과 더불어 피억압자들에 대한 뜨거운 연대감에 대해 깊은 매력을 갖고 있다. 그의 정교한 경제학 저작들을 보면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가진자들에 대한 분노가 문장마다 흘러넘친다.”
-오늘날 한국인들이 마르크스주의에서 어떤 점을 발견하길 바라나?
“한국인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끝낼 수 있는 도구를 발견했으면 좋겠다. 계급투쟁은 마르크스를 모른다 할지라도 현실에서 늘상 일어나는 일이다. <자본>이 성경은 아닐지라도, 핵심적인 중요한 가이드가 될 수는 있다. 오늘날 좌파들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패배의 경험을 내면화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짧은 시간 안에 산업화와 잘 조직화되었던 노동조합의 패배 같은 일을 겪어 상황이 더 극단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항상 우리가 패배할 것이라 가정한다면 투쟁을 벌이는 사람들에게 좌파는 완전히 쓸모 없는 존재일 것이다. 나는 거짓 낙관의 위험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결국 이길 수 있다고 믿는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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