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광기-왜 예루살렘이 문제인가?>
예루살렘 광기-왜 예루살렘이 문제인가?
제임스 캐럴 지음, 박경선 옮김
동녘·2만5000원
제임스 캐럴 지음, 박경선 옮김
동녘·2만5000원
민간인 학살에 가까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폭격이 벌어지고 있는 가자지구는 인류사를 관통해 이어져오고 있는 인간의 폭력과 종교의 관계를 묻는 처절한 현장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아브라함의 세 종교, 곧 유대교·이슬람교·기독교의 발원지인 예루살렘이 있다.
펜타곤과 미국 패권주의를 비판한 책 <전쟁의 집>으로 유명한 작가 제임스 캐럴이 2009년에 내놓은 <예루살렘 광기>는 예루살렘이란 도시를 통해 폭력과 종교의 뿌리깊은 역사를 탐구하는 책이다. 한때 가톨릭 사제였던 지은이는 예루살렘을 찾아가본 뒤 “예루살렘을 성스러운 곳으로 만드는 ‘여기’라는 개념은 하느님의 손길에서 생겨난 것이 아님을 알았다”고 한다. 유대교·이슬람교·기독교가 예루살렘 곳곳을 자신들의 성지로 만들고 저마다 신성시하고 있는데, 이는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 인간의 ‘열병’에 가깝다는 것이 지은이의 깨달음이다. 이런 열병은 인간이 종교의 본뜻에서 벗어나 끝없이 폭력을 주고받는 원천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서양 역사 전체를 관통하는 지은이의 탐구는 종교와 폭력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브라함의 세 종교가 탄생하게 된 배경과 그 의미에 대한 지은이의 풀이는 압권이다. 인간의 근원적인 존재 조건은 ‘타자를 죽임으로써 산다’는 데 있고, 이처럼 불가피한 폭력을 최소한도로 줄이려고 했던 인간의 노력이 종교를 낳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신을 ‘존재하는 모든 것’을 감싸는 단일한 하나로 이해한 유일신관의 의미는 남다르다. 신의 단일성은 “근본적으로 차별되고 우월한 전혀 다른 존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대립되는 모든 것을 조화시키는 존재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의식은 ‘나는 안다’(의식)로부터 ‘나는 내가 안다는 것을 안다’(자기의식)로, 또 스스로가 앎의 대상임을 깨닫는 상태(자기초월)로 변해왔는데, 이런 과정은 폭력의 심연 속에서 “폭력으로부터 희생양을 구제하려는” 종교의 탄생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는 아브라함의 세 종교에 모두 공통되는 특징이었다.
한편으로 예루살렘은 묵시종말론에 근거한 폭력을 끊임없이 불러일으키는 상징적 공간이기도 하며, 이 또한 종교의 본질이라는 것이 지은이의 풀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지은이는 ‘좋은 종교’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나쁜 종교는 존재하기 마련이고 순결한 종교 따위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는 종교가 바로 좋은 종교”라고 한다. 그는 신이 예루살렘이라는 환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 곧 내가 있는 현재의 삶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환기시킨다. “경험이 교리에 우선”하기에 종교의 의미를 끝없이 되묻고 개혁하려는 노력만이 답이라는 것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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