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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도축장과 아우슈비츠 사이

등록 2014-09-14 20:41

<동물 홀로코스트>
<동물 홀로코스트>
동물 홀로코스트
찰스 패터슨 지음, 정의길 옮김
휴·1만5000원

육식을 하면서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책을 읽기란, 문장 하나하나 세워진 날을 받아내는 결투 같다. 가해자인 것은 깨닫기 싫고, 싫은 일은 어렵다. 핑계는 많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조차 어려운 세상에, 우선순위는 사람이 아닌가? 하기야 이런 논리로는 늘 동물권도, 환경권도 가려지고 마는 일이다.

그럼에도 ‘연대’ 의식을 동물로 확장하려는 분투는 장강의 흐름처럼 도도하다. <동물 홀로코스트>는 인류사의 충격적인 단어 ‘홀로코스트’를 끌어왔다. 글쓴이인 찰스 패터슨은 종교학과 홀로코스트를 연구했다. 공장화된 도축장과 홀로코스트는 근대적 ‘집단 살해’의 닮은꼴이다. 나치 때문에 망명했던 독일의 유대인 철학자 테오도어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는 사람들이 도살장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곳에서 시작된다. 거기서 사람들은 단지 동물일 뿐이다”라고 쓴 바 있다. 단단한 마음의 벽을 둘러치고 맞설 준비를 한 이들이라면, ‘인종 청소’에 대한 익숙한 혐오감을 빌리려는 영리한 시도로 간주할 수도 있겠다. “인류는 자신이 희생물일 때는, 자신들에 가해지는 억압을 생생하게 본다.”

예민한 남성들이라면, 가축의 역사를 설명한 책 첫머리부터 무릎을 꿇을 수도 있다. “라프족은 순록을 잡아놓고는, 그 음낭을 천으로 싸서 이빨로 깨물어 씹어서 부서뜨린다.” 거세 공포는, 동물운동가들이 ‘길고양이 중성화’ 작업을 할 때 흔히 맞닥뜨리게 되는 일반적인 거부감과도 닿아 있다.

‘나치’가 학살 과정에서 왜 구태여 유대인을 조롱하며 ‘돼지’로 불러야 했는지를 보면, 역설적으로 ‘동물’과 인간 사이의 엄청난 감정적 거리감이 느껴진다. ‘살 가치가 없는 생명’, 유대인을 낙인찍은 논리다. 도살장에서 송아지들을 몰아넣고 도살총을 난사하는 장면을 묘사하는 대목(“어미와 떨어져 어쩔 줄 몰라 하는 작은 송아지가 우유를 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도축자의 손가락을 빨다가, 인간의 몰인정이라는 우유만 얻을 때”) 바로 다음 쪽엔, “엄마들은 대형 무덤으로 준비된 긴 구덩이까지 아기들을 안고 가야만 했다”(1942년 스몰렌스크 학살)로 시작하는 장면이 교차된다. 아무리 단단한 방어벽을 세워도, “동물의 착취와 학살을 토대로 세워진 문명에서는 인간 희생자들이 더 “열등하고”, 더 비하될수록 그들을 죽이는 일이 쉬워진다”는 문장을 외면하기는 쉽지 않다.

이 책을 번역한 정의길 <한겨레> 기자는 “책을 번역하면서 점점 고기를 먹을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안도현의 시 <스며드는 것> 이후로 간장게장을 먹지 못한 숱한 이들에겐 권하기 어렵다. 아니, 가장 먼저 권해야 하는 지도 모르겠다. 밭의 달팽이 하나 죽일 수 없는 생명론자는 되지 못해도, ‘두터운 무관심’을 걷어내는 것부터 시작하려면.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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