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산업자동화 회사 리싱크 로보틱스는 공장 안에서 노동자가 하는 일을 대체할 수 있는 로봇 ‘백스터’를 만들어 ‘로봇과 일자리’ 논쟁에 본격적인 불을 붙였다. <한겨레> 자료사진
편향적 기술변화가 편향적 부 불러
기계에 맞서기보다 공생 수용해야
기계에 맞서기보다 공생 수용해야
에릭 브린욜프슨·앤드루 맥아피 지음, 이한음 옮김
청림출판·1만5000원 1950년대 초 연구자들은 기계에게 체스를 두는 방법을 가르쳤다. 당시만 해도 체스는 인간 능력의 가장 고상한 표현 형태 가운데 하나, 곧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로 여겨졌다. 그러나 1997년 아이비엠(IBM)에서 만든 컴퓨터 ‘딥블루’가 세계 체스 챔피언인 가리 카스파로프를 이겨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지금은 휴대전화 속에 담긴 체스 프로그램조차 ‘그랜드 마스터’급 실력을 자랑한다. 이쯤 되면 “로봇이 인간을 대체한다”는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다. 정보경제학의 석학으로 꼽히는 에릭 브린욜프슨과 앤드루 맥아피는 2012년작 <기계와의 경쟁>에 이어 <제2의 기계시대>에서 기술의 발달이 가져온 삶의 변화에 대해 깊은 통찰을 담은 분석과 전망을 제시한다. 올해 초 나온 이 책은 정보기술 및 로봇 산업과 일자리, 소득 불평등과 같이 ‘뜨거운’ 주제들과 맞물려 큰 주목을 받았다. 어설픈 전망들만 담은 ‘미래학’이 아니라 인류가 처한 현실을 냉정하고 균형 있게 보고자 하는 진중한 시도가 담겼다. 지은이들의 기본 생각은, 인류 역사의 궤적에 가장 급격한 변화를 가져다준 요인이 ‘기술’이란 것이다. 증기기관의 개발로 인간의 육체적 능력을 강화했던 것이 ‘제1의 기계시대’라면,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이 정신적 능력을 강화하는 것이 ‘제2의 기계시대’다. 지은이들은 “우리는 체스판의 후반부에 와 있다”고 말한다. 앞서 일어난 일들이 더이상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제대로 안내해주지 못하는 상황을 직시하라는 것이다. 범용기술은 보완기술들과 무한정 결합하면서 예측하기 힘든 변화를 만든다. 기하급수적 성장, 디지털화, 다양한 조합을 만들어내는 혁신이 지속된 결과, 지금은 10년 전만 해도 현실화할 수 없었던 기술들이 마구 쏟아져나올 수 있게 됐다. 구글의 ‘쇼퍼 프로젝트’(자율 주행 자동차)나 복잡한 의사소통을 필요로 하는 게임쇼 <제퍼디!>에서 슈퍼컴퓨터가 우승한 것 따위가 대표적인 사례다. 문제는 이런 변화가 장밋빛이 아니란 사실이다. 지은이들은 불편한 진실을 끄집어낸다. 생산성이 증가하고 경제가 성장해도 고용은 늘지 않고 중산층의 임금은 하락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소득과 기대수명은 왜 갈수록 불균형이 심해지는가? 지은이들은 “‘제2의 기계시대’의 기술이 경제의 추진력이 되어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본다. 경제학자들은 기술 발전을 단순히 생산성을 높여주는 ‘곱수’로 봤다. 그러나 지은이들은 ‘편향적 기술 변화’를 강조한다. 기술 변화는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영향을 주지 않으며, “숙련·자본·재능” 등에 편향적인 부를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숙련자가 필요없는 일자리는 기계로 대체되고, 생산성이 늘어도 자본이 노동보다 훨씬 더 많은 몫을 가져가고, 재능 있는 ‘슈퍼스타’들이 혼자 모든 것을 차지하는 시장을 만들어낸다. 새로운 기술 변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필연적인 현상이다. 중간값이 두터웠던 ‘정규분포’와 달리 극단적인 불균형을 보이는 ‘멱법칙 분포’가 ‘제2의 기계시대’ 고유의 특징이다. 오늘날 불평등의 주된 원동력은 정부의 예산 낭비나 ‘월가의 사기꾼’들이 아니라 우리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기술의 변화이고, 이 추세는 앞으로 더욱 심화된다는 것이 지은이들의 예측이다. 그리고 이런 불평등의 심화가 “‘제2의 기계시대’로 나아가는 우리의 발길을 늦출 착취 제도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우려한다. 성장이 불평등을 줄여주기는커녕, 오히려 불평등이 성장을 억제할 수도 있다는 우려다. 지은이들은 기술 발전의 풍요를 모두가 누리기 위한 정책적이고 거시적인 처방들을 대안으로 내놓는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역소득세’다. 소득이 평균보다 낮으면 그 가운데 일부를 정부가 지급하자는 것이다. ‘기본소득’보다는 인간의 노동에 더 가치를 둔, 일종의 ‘노동보조금’이다. 지은이들의 궁극적인 관심사는 인간의 창의성을 키우고 기술 발전의 풍요를 모두가 누릴 수 있도록 만들어줄 제도와 정책에 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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