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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일베’는 왜 약자를 괴롭힐까?

등록 2014-11-20 20:24수정 2014-11-21 11:28

‘지금, 여기’ 다루는 무크지 ‘모멘툼’
창간호 주제로 ‘극우주의’ 분석
‘타락한 능력주의’의 반정치화
지금, 여기의 극우주의
박권일·김민하·김진호·남상욱·문순표·
이택광 지음/자음과모음·1만2000원

‘지금, 여기’를 테마로 삼는 무크지 ‘모멘툼’ 시리즈가 새롭게 출범했다. 창간호의 주제는 ‘극우주의’다. 그동안 ‘보수주의’라는 이름 아래 가려 있던 극우주의가 일상적으로 대두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하루가 다르게 높아져가고 있는 상황에서, ‘지금, 여기’의 절실함을 반영한 주제 선정이다.

칼럼니스트 박권일씨는 최근 ‘새로운 극우’로 조명받고 있는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고유의 특성을 세밀하게 들여다본다. 일베는 우리나라에도 이전부터 있던 반이주노동자 커뮤니티나 일본의 재특회 따위 자생적 ‘넷우익’과는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일베는 ‘친목질 금지’라는 원칙과 대사회적 설득이 불가능한 패륜적인 성격으로 스스로 정치세력화할 가능성 자체를 차단하고 있는데, 이는 기존 보편적 넷우익이 ‘인정 투쟁’을 펼치는 것과 크게 다른 양상이다.

박씨는 “일베는 이념과 사상의 생산지가 아니며, 이들을 움직이는 동기도 이념이나 사상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동안 일베에 대해 “원한 감정에 사로잡힌 사회 낙오자들의 일탈 행위”라는 식의 풀이가 대세를 이뤘는데, 그런 사상과 이념의 관점보다도 ‘네트워크 주체’로 풀이하는 것이 더 실체에 가깝다는 것이다. 일베는 타인의 주목을 얻어내는 것을 최우선적인 목표로 삼는 ‘주목경제’의 원리에 충실히 따르는 모습을 보인다. “이념을 위해 주목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주목을 위해 이념을 추구하는 전도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일베 고유의 성격을 살펴보는 작업은 보편적인 넷우익의 양상과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사회경제적 조건들을 망원경으로 들여다보는 작업과 함께 이뤄져야 한다. 박씨는 일베를 포함해 타자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분출하는 넷우익이 공통적으로 ‘상상된 착취’라는 심층적인 동기를 갖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내가 당연히 받아야 할 몫을 빼앗겼다’는 식의 인식이 ‘자격과 능력이 없는데 더 많은 몫을 받고 있다’고 여겨지는 타자에 대한 증오와 혐오로 연결되는 것이다. 박씨는 이것이 ‘타락한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에서 비롯한다고 본다. 그 결과 사람들은 실질적인 착취의 주체가 자본과 국가인데도 오히려 자신의 자격과 능력을 인준받기 위해 자본과 국가의 명령에 부응하고, 정치는 사회경제적 불만을 생산력과 제도로 해결하기보다는 대중에게 즉각적인 쾌락을 주는 경쟁에 몰두하는 ‘반정치화’ 현상이 벌어진다고 한다.

극우주의가 전세계적으로 대두하고 있는 흐름을 살핀 김민하 <미디어스> 기자는 ‘한국에도 극우정당이 새롭게 출현할지 모른다’는 우려에 대해 회의적인 답을 내놓는다. “우리 사회 기득권 세력이 새롭게 제기되는 극우정치의 혐오감을 동반하는 ‘급진성’을 받아들이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은 한국 개신교가 공산주의에 대한 증오를 바탕으로 급격한 성장을 거두었던 과거 역사와 현 정권 들어 다시 조직된 ‘개발 연대’에도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맥락을 짚었다.

남상욱 인천대 교수는 전후 일본에서 ‘삶’(생/유전자)에 몰두하고 이를 지나치게 찬미했던 흐름이 오늘날 새로운 극우주의의 토대가 되고 있다고 풀이했다. 아베 신조 총리는 국민을 살린다며 평화헌법을 개정해 젊은이들을 죽게 내버려두는 식의 통치술을 쓰는데, 이는 “자신의 삶에 대한 무한 긍정에 기반을 둔 오늘날의 극우주의적 정치 활동”이란 것이다. 철학연구자인 문순표씨는 <조선일보>를 ‘보수가 아닌 극우’로 규정하려 했던 1990년대 후반 시민사회의 운동과 오늘날 일베에 대한 비판적 접근들을 함께 살피며, ‘계몽주의’ 전략의 역설적인 성격을 지적한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극우주의 정치운동인 파시즘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그동안 파시즘을 특이한 행동 양태나 일탈 행위로 보는 경향이 강했는데, “근대에 대한 하나의 이론이자 사상으로 접근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파시즘은 합리성을 바탕으로 근대를 구성한 자유주의에 대항하고 거부하는 정치 이론이었기에, 자유주의의 위기와 붕괴에 조응해 대두하게 된다. 이 교수는 “자본주의 외부에 대한 상상력이 봉쇄되어 있는 한, 경제를 우선에 놓는 자유주의와 정치에 우선성을 부여하는 파시즘은 구조적으로 연동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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