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봉 기자
최재봉의 문학풍경
예술이 아름다움에 관여하는 일이라는 것이야 하나 마나 한 소리일 테다. 문학은 그 예술의 언어적 표현 양식이고, 언어로 이루어지는 문학의 하위 장르 가운데 하나가 시라는 것 역시 상식에도 들지 못할 만큼 지당한 말씀이다. 다시 말하자면 시는 언어를 매개로 삼아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의 한 형태라 할 수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아름다움’이 반드시 예쁘고 사랑스러우며 편안하고 친근한 것만을 가리키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겉보기에 아름답지 않거나 아예 ‘추한’ 것이 얼마든지 예술의 이름으로 창조되고 향유되는 것이 또한 예술의 역설이다. 추함이란 어디까지나 아름다움의 반대말임에도 예술의 세계에서는 그 둘이 갈등 없이 뒤섞이기도 한다. ‘추의 미학’이라 할 만한 반어적 가치가 탄생하는 것이다.
1990년대 중후반 이후 한국 시의 두드러진 흐름의 하나로 바로 이 ‘추의 미학’ 또는 ‘엽기시’를 드는 이들이 많다. 이런 경향은 특히 여성 시인들에게서 자주 보이는데, 평론가 김정란씨와 남진우씨의 페미니즘 논쟁을 낳았던 김언희씨의 시가 선구적이라 할 수 있다.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는 김민정, 이민하, 김이듬 같은 여성 시인들뿐만 아니라 김언, 황병승 같은 남자 시인들에게서도 이런 특징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람의 신체가 뒤틀리고 절단되거나 마모되는 상황을 악몽 또는 환상의 장치에 실어 표현하는 것이 이런 시들의 공통된 특징의 하나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옛 문예진흥원)의 웹진 <문장> 10월호가 마련한 한 대담에서 젊은 시인들의 엽기시가 도마에 올랐다. ‘우리 시의 다양성과 새로움’을 주제로 열린 대담에는 평론가 김수이씨가 사회를 맡고 평론가 엄경희씨와 시인 김행숙·김언·손택수씨가 참여해 2000년대 젊은 시의 개성과 공과에 대해 논했다. 이 대담에서 엄경희씨는 ‘추의 미학’ 계열의 시에 대해 △시적 우아함에 관한 고전적 미학에서 벗어나 고착된 시의 틀을 공격했으며 △예술에 대한 시각의 확대에 영향을 주었고 △물질 만능적인 부르주아의 안일한 삶의 방식을 공포스럽게 되울려주었다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악몽, 지옥, 공포라는 어두운 환상이 획일적으로 등장하고 △신체의 아름다움에는 눈을 감은 채 절단, 분해, 해부에만 몰입하며 △저속한 육두문자의 남용으로 시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다는 점을 비판적으로 지적했다. “‘악몽과 공포에 갇혀 있는 존재, 악몽으로부터 빠져나가지 못하는 존재’라는 틀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에 “도발적이라기보다는 지겹다는 생각이 앞”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그 자신 ‘추의 미학’을 추구하는 시인들로서 김언씨와 김행숙씨는 각각 ‘시적 다양성’과 ‘소수의 욕망’을 들어 자신들의 시세계를 옹호했다. 특히 이런 시들이 독자와의 소통에서 문제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김언씨는 △소통이란 개인별 편차가 있는 것이며 △소통이라는 잣대로 문학적 평가를 하는 태도에는 동의하기 어렵다는 견해를 보였다. 잘 읽히는 것만이 좋은 시는 아니라는 얘기다.
이 대담에서는 90년대 이후 시의 큰 흐름으로 ‘리얼리즘 시의 서정화’와 ‘추의 미학으로 대표되는 모더니티 지향’이 꼽혔는데, 서정적 리얼리즘 계열 시들 역시 비판에서 자유롭지는 않았다. 특히 왕년의 리얼리즘 계열 시인들이 앞다투어 자연시나 생태시 또는 선(禪)적인 시로 나아가는 데 대한 우려가 많았다. 김언씨는 생태시의 획일성과 폭력성을 지적했고, 엄경희씨는 자연과 서정을 중심에 놓은 시들이 철학적인 깊이를 더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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