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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정의가 서야 범죄가 준다

등록 2015-03-19 20:56수정 2015-03-19 21:51

경찰청 1기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가)인 배상훈 서울디지털대 교수는 ‘서초 세 모녀 살해사건’에 대해 “가족 가치의 복원이 해결책” 운운하는 언론을 비판한다. 우리 사회의 가족 문제는 모든 책임을 가족이 오롯이 지고 가족 문제를 오직 가족 안의 문제로 환원하는 데에서 비롯한다는 것이다.  앨피 제공
경찰청 1기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가)인 배상훈 서울디지털대 교수는 ‘서초 세 모녀 살해사건’에 대해 “가족 가치의 복원이 해결책” 운운하는 언론을 비판한다. 우리 사회의 가족 문제는 모든 책임을 가족이 오롯이 지고 가족 문제를 오직 가족 안의 문제로 환원하는 데에서 비롯한다는 것이다. 앨피 제공
경찰 프로파일러 1기 배상훈 교수
범죄의 사회적 맥락 강조
국정원 대선개입 항의 사표 낸
표창원 전 교수도 범죄 관련서 펴내
누가 진짜 범인인가
배상훈 지음/앨피·1만3800원

왜 나는 범죄를 공부하는가
표창원 지음/다산북스·1만5000원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을 두고 흔히 ‘가정환경’을 거론한다. 고등학교 교사가 말썽을 부린 학생들의 뺨을 쥐어틀며 “느그 아버지 뭐하시노?”라고 소리 지르는 영화 속 한 장면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정도로 친숙하다. 유영철·정남규·강호순 등 한국의 대표적인 연쇄살인범들도 이런 시각에서 벗어날 수 없다. ‘어린 시절 학대를 받은 경험이 흉악 범죄로 연결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정작 가족 생애사를 바탕으로 한 ‘프로파일링’(범죄심리분석) 전문가인 배상훈 서울디지털대 교수(경찰학과)는 이런 단선적인 시각을 경계한다. “연쇄살인범이 범죄를 일으킨 이유를 아동 학대에서 찾는다면, 모든 책임을 가족과 부모에게 전가하는 결론으로 유도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환경적인 요인이나 심리적인 요인, 경제적인 요인, 교육문제 등 다른 요인들이 지워진다”는 것이다. 2004년 경찰청에 공식적으로 특별채용된 1기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관)인 그는 최근 펴낸 책 <누가 진짜 범인인가>에서 무엇보다 범죄의 ‘사회적 맥락’을 강조한다. 지은이는 “범죄는 개인의 속성에 의해 발생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핵심적인 범죄 발생 기제는 사회”라며 “사회적 맥락 속에서만 범죄를 본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민주화운동 세대로서 ‘운동권’ 대학생이었던 지은이는 사회학 박사가 됐다가 ‘정의’라는 주제에 대한 관심 때문에 범죄수사의 영역에 발을 딛게 됐다. 그런데 자신이 꿈꿨던 정의는 “범죄자 몇 명을 심판대 위에 세우고 사회에서 격리한다고 해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가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꼽는 단 한 가지는 경찰이나 검찰이 아니라 ‘민주주의’다. “적절하게 통제되지 못하는 사법집단은 그 자체로 정의의 적이자 민주주의의 적”이라고까지 강조한다. 범죄의 사회적 맥락을 강조하는 프로파일러이기 때문에 도출해낼 수 있는 결론이다.

지은이는 여러 실제 범죄 사건과 제도적 문제 등을 넘나들며 범죄를 낳게 만드는 사회 시스템과 이를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사법 체계, 범죄를 선정적으로 소비하는 언론 등 다양한 분야에 거침없는 비판을 던진다. 사법·행정을 좌우하는 권력에 대한 비판에도 날이 서 있다. 박근혜 정부가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며 경찰력을 늘리는 계획을 추진하는 행태에 대해 “안전한 사회를 만들려면 범죄의 사회적 원인을 해결하는 데 주력해야 하며, 경찰력 등의 공권력은 수단으로 이용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세월호 참사 때 세월호의 소유주 유병언에게 수사와 여론의 관심이 집중됐던 것을 두고선 “기가 막히게 잘 짜인 한 편의 연극”이라고 비판한다. 유병언이 타살됐다는 의심을 갖고 있는 지은이는 사건 초기에 자신도 종합편성채널에 출연해 ‘유병언 몰이’에 참여한 것을 “뼛속 깊이 반성한다”고 말한다.

지은이는 “작은 정의가 진짜 좋은 사회를 만든다”고 강조한다. 연쇄살인범이나 성폭행범을 잡는 것은 당연히 중요한 일이지만, 정작 실제 생활에서 일반 시민들이 느끼는 정의는 작고 별것 아닌 듯 보이는 사건들 속에서 드러나는 공평무사함, 곧 ‘작은 정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작은 정의가 지켜지지 않는다면 ‘큰 정의’ 역시 불가능하다.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는 국정원 대선개입에 항의하며 사표를 던진 뒤 강연과 저술로 대중들과 만나며 “나름대로 작은 ‘정의의 씨앗’을 뿌려왔다”고 자평한다.  <한겨레> 자료사진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는 국정원 대선개입에 항의하며 사표를 던진 뒤 강연과 저술로 대중들과 만나며 “나름대로 작은 ‘정의의 씨앗’을 뿌려왔다”고 자평한다. <한겨레> 자료사진
국내 최고 프로파일러로 잘 알려진 표창원씨도 비슷한 시기에 책을 펴냈다. <왜 나는 범죄를 공부하는가>는 2013년 펴낸 <나는 셜록 홈스처럼 살고 싶다>의 개정판이다. ‘공부’라는 테마를 가지고 프로파일러로서 자기 삶의 궤적을 찬찬히 기록한 에세이다. 현장의 경찰에서 범죄수사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학자가 됐던 그는, 2012년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사건 때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말할 자유를 찾기 위해 경찰대학 교수 자리를 버리고 ‘대중의 품’ 안으로 들어왔다고 말한다. 이전까지 경찰로서 ‘정의’라는 주제를 공부해왔다면, 이제 강연과 저술 등으로 대중들과 만나며 “나름대로 작은 ‘정의의 씨앗’을 뿌려왔다”는 자평이다. 지금은 전문 방송인으로, 또 작가로서 새로운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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