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방부가 제작한 1인칭 슈팅 게임 ‘아메리카스 아
미’는 미군이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대테러 군사 작전을
벌이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제국의 게임> 지은이들은 미국 군산복합체가 탄생시킨 게임을 “제국의 모범적인 매체”라고 규정한다. 게임화면 갈무리
미 군산복합체에서 태어난 가상 게임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신무기로 등극
대안적 게임이나 불법복제·개조 등
제국을 위협하는 ‘다중의 매체’ 전망도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신무기로 등극
대안적 게임이나 불법복제·개조 등
제국을 위협하는 ‘다중의 매체’ 전망도
닉 다이어-위데포드, 그릭 드 퓨터 지음
남청수 옮김/갈무리·2만5000원 미국 회사 린든랩이 만든 가상 현실 게임 ‘세컨드라이프’에서는 100만명이 넘는 이용자들이 제목 그대로 “두번째 삶”을 살고 있다. 아바타를 앞세워 새로운 일을 찾고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는가 하면, 돈을 벌고 집을 사거나 사업을 벌이는 일까지 가능하다. 재밌는 사실은, 현실과 달리 새로운 가능성이 있는 삶을 살 수 있다고 여겨지는 이 가상 공간의 모습이 막상 현실 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게임 속에서 자산을 소유하고 상품을 교환하고 통화를 거래하고 에너지를 소비하는 모습은 실제 자본주의 체제 속 삶과 매우 비슷하다. 부의 축적 정도에 따라 계급 분화, 차별과 불평등이 나타난다는 점, 애플, 아디다스, 나이키 같은 실제 회사들의 광고판들을 만나볼 수 있다는 점까지도 현실과 다르지 않다. 이전에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미디어인 디지털 게임은 이제 전지구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최근에는 모바일이 새로운 플랫폼이 되어 그 확산을 더욱 부채질하는 추세다. 그러나 그동안 디지털 게임 속에서 진지하고 학술적인 의미를 발견하려는 시도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정보미디어, 커뮤니케이션 분야 학자인 닉 다이어-위데포드와 그릭 드 퓨터는 공저 <제국의 게임>에서 디지털 게임에 대해 독특하고도 심도 깊은 논의를 펼친다. 지은이들은 자신들의 연구에 안토니오 네그리, 마이클 하트의 공저 <제국>(2000)을 주된 뼈대로 삼는다. 네그리·하트는 새로 출현한 전지구적 체제가 “경제·관료·군사·의사소통적 구성요소들을 결합시켜, 그 어떤 것도 외부에 두지 않고 인간의 사회적 삶 자체를 착취하는 권력 시스템”인 ‘제국’이라고 봤다. 지은이들은 이를 참조해 제국을 “경쟁적이면서도 협력적인 신자유주의 국가들 사이의 컨소시엄이 지배하고 통제하는 시스템”이며, “전지구적인 금권정치의 지속적인 확장을 위해 임금이 지불되건 아니건 무수히 다양한 형태의 노동에 대한 기업의 착취에 기초하는 ‘생체권력’의 체제”라고 분석한다. 이런 지배에서 미디어와 같은 정보·의사소통 시스템이 매우 중요한 전략적인 위치를 차지하는데, 따라서 가상 게임은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본질적인 “제국의 모범적인 매체”라는 것이 지은이들의 핵심 주장이다. 가상 게임은 본래 미국의 군산복합 시스템 속에서 처음 태어났다. 소련과의 핵전쟁에 대비한 컴퓨터 모의실험 등 ‘비물질노동’에 종사하던 컴퓨터 ‘괴짜’들이 컴퓨터를 갖고 놀다가 ‘스페이스워’ 따위의 게임들을 만들었고, 인터넷의 선조 격인 군대의 ‘아르파넷’을 통해 대학 캠퍼스나 연구실 등으로 확산됐다. “정부를 보호하기 위한 군사 비밀 체제를 위해 만들어진 정보통신기술들이, 그것들을 창출해내는 비물질노동자들의 손을 거치면서 ‘디지털 놀이’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 놀이’는 거대 자본과 정치권력이 새로운 제국의 지배를 구축하도록 하는 새로운 장치이기도 했다. 들뢰즈·가타리의 표현에 따르면, 해커들의 “탈영토화” 작업이 자본주의에 의해 발생하는 “재영토화”의 무대를 다시 만들어준 것이다. 미국 회사 아타리가 처음으로 상용화한 비디오 게임은, 일본의 닌텐도·세가·소니가 개발한 콘솔 게임기로 중흥기를 맞았고,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전지구적인 영향력을 끼치게 됐다. 게임 이용자들은 이제 게임을 통해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생활 양식을 습득하고, 자신이 동참한 훈육 시스템을 통해 그에 걸맞은 새로운 주체성을 부여받는다. 미국 국방성이 제작한 ‘아메리카스 아미’는 미군이 벌이는 대테러 전쟁 속으로 이용자들을 끌어들이고, 국방부 누리집으로 이들을 유도해 모병 사업까지 펼친다. ‘월드오브워크래프트’ 같은 다중접속 온라인 게임들은 이용자들의 자발적인 행동들을 재생산의 도구로 만들어 이윤을 극대화한다. 제3세계 노동자들이 게임에 접속해 ‘비물질노동’으로 게임 속 가치를 창출하고 이를 현금화해 북미 등 부유한 지역에 파는 ‘골드 경작’, 게임 개발사들이 대규모 ‘코그니타리아’(인지노동자)의 삶과 노동을 한계 없이 착취하는 현실 등은 가상 게임 세계가 가져온 디스토피아의 단적인 사례다. 게임 제작사들이 모여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노동법은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들이 시간당 41달러를 초과해서 받거나 창조적·지적인 일을 할 때에는 그들에게 시간외수당을 지급할 필요가 없다고 명시했다고 한다. 이처럼 본질적으로 ‘제국의 매체’인 게임에 대해, 지은이들은 오히려 그 속에서 제국에 대항하는 일말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는다. 네그리·하트식으로 말하면, 제국 속에서 살아가는 ‘다중’은 제국 밖으로 탈주하는 에너지를 가진 주체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게임 속에서 반기업적·반권력적인 시위나 파업이 벌어진다거나, 정치·자본권력 자체를 겨냥하는 대안적인 내용과 형식의 게임이 만들어진다거나, 게임 밖에서 끝없이 벌어지는 불법복제나 개조 등의 행위들은 ‘제국의 매체’가 제국을 위협하는 ‘다중의 매체’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을 가능하게 한다. 지은이들은 무엇보다 게임 자체가 지닌 ‘가능성’이란 속성, 곧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강조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