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주의는 어떻게
패션이 되었을까
신시아 인로 지음, 김엘리·오미영 옮김
바다출판사·1만5000원 마침 운동화를 신고 길을 나선 참이라면, 신발을 벗고 상표를 보자. 당신의 운동화는 어디서 왔을까? 베트남? 인도네시아? 타이? 브라질? 어느 나라든 간에, 그 운동화에 실밥을 박은 것은 십중팔구 공장의 여성노동자였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아무도 “왜 공장에선 여성노동자가 바느질을 하나?” 하고 묻지 않는다. 그게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자연스러운’ 일일까? 만약 1960~80년대 초 신발의 출처를 두고 질문을 던졌다면, 답의 상당수는 ‘메이드 인 코리아’였을 확률이 높다. 당시 한국의 박정희 군사정부는 산업화에 빠르게 편입하고 싶어했으며, 나이키와 리복, 아디다스 같은 글로벌 브랜드에 생산공장을 이전해달라는 ‘러브콜’을 보냈다. 하지만 이때 여성들이 공장에서 운동화를 바느질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엄한 아버지가 있는 집안에서 살림을 배우다가 시집 가서 내조 잘하는 아내가 되는 것이 ‘고상한’ 여성들의 행로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박정희 정부는 여성의 이미지를 바꾸기 위한 캠페인을 벌여야 했다. “군사정부는 ‘국가안보’ ‘민족 자존심’ ‘근대화’ ‘산업 성장’이라는 개념들을 융합하면서, 딸들의 부모들을 설득하여 ‘품위 있는’(곧 ‘좋은 신부감’인) 남한의 젊은 여성들에게 ‘자연스러움’이란 부모의 집 밖에서 일하는 것이라고 그 정의를 급진적으로 바꾸었다.” 즉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상표에서 우리는 ‘여성성’에 대한 국가적 정의를 바꾸는 거대한 국가 캠페인과 만나게 되는 셈이다. 1987년 민주화 운동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고, 더 나은 노동조건을 위한 투쟁이 벌어지자 글로벌 패션 브랜드의 경영진은 더 ‘순종적인 딸’들을 찾아 부산에서 자카르타로 떠났다. 오늘날 동남아에서는 더 나은 노동환경을 요구하는 패션 산업 노동자들을 국가적으로 경찰과 군대를 동원해 찍어누르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자, 바느질이 ‘값싼 노동’이자, 늘 여성들이 해온 노동이라는 ‘자연스러운’ 관념이 꾸준히 확대재생산되는 것은 누구에게 이익을 가져다줄까? 부모, 남자친구, 정부 관계자, 지역 공장장, 해외 기업 간부, 해외 소매업자에서 심지어 싼 신발을 원하는 소비자까지 모두 ‘동맹’이 되는 셈이다. 국제정치학자이자 여성학자인 신시아 인로는 <군사주의는 어떻게 패션이 되었을까>에서 주변의 사소한 것에서 ‘페미니스트적 호기심’을 발견하도록 돕는다. ‘자연스럽고’ ‘사소해 보이는’ 것들, 침묵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주목한다. “왜 신차 발표회에서 차 위에 여자 모델들을 올려놓을까?” “왜 군인의 부인들이 군 상사의 개인적 업무라든지 군 공동체를 위한 노동에 ‘자원’해서 나서야 하나?” “아부그라이브에서 이라크 포로들에게 고문에 가까운 성희롱을 했을 때, 왜 여군이 동원됐을까?”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것들을 의심하고, 남들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고 눈총 받아본 경험이 있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패션이 되었을까
신시아 인로 지음, 김엘리·오미영 옮김
바다출판사·1만5000원 마침 운동화를 신고 길을 나선 참이라면, 신발을 벗고 상표를 보자. 당신의 운동화는 어디서 왔을까? 베트남? 인도네시아? 타이? 브라질? 어느 나라든 간에, 그 운동화에 실밥을 박은 것은 십중팔구 공장의 여성노동자였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아무도 “왜 공장에선 여성노동자가 바느질을 하나?” 하고 묻지 않는다. 그게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자연스러운’ 일일까? 만약 1960~80년대 초 신발의 출처를 두고 질문을 던졌다면, 답의 상당수는 ‘메이드 인 코리아’였을 확률이 높다. 당시 한국의 박정희 군사정부는 산업화에 빠르게 편입하고 싶어했으며, 나이키와 리복, 아디다스 같은 글로벌 브랜드에 생산공장을 이전해달라는 ‘러브콜’을 보냈다. 하지만 이때 여성들이 공장에서 운동화를 바느질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엄한 아버지가 있는 집안에서 살림을 배우다가 시집 가서 내조 잘하는 아내가 되는 것이 ‘고상한’ 여성들의 행로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박정희 정부는 여성의 이미지를 바꾸기 위한 캠페인을 벌여야 했다. “군사정부는 ‘국가안보’ ‘민족 자존심’ ‘근대화’ ‘산업 성장’이라는 개념들을 융합하면서, 딸들의 부모들을 설득하여 ‘품위 있는’(곧 ‘좋은 신부감’인) 남한의 젊은 여성들에게 ‘자연스러움’이란 부모의 집 밖에서 일하는 것이라고 그 정의를 급진적으로 바꾸었다.” 즉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상표에서 우리는 ‘여성성’에 대한 국가적 정의를 바꾸는 거대한 국가 캠페인과 만나게 되는 셈이다. 1987년 민주화 운동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고, 더 나은 노동조건을 위한 투쟁이 벌어지자 글로벌 패션 브랜드의 경영진은 더 ‘순종적인 딸’들을 찾아 부산에서 자카르타로 떠났다. 오늘날 동남아에서는 더 나은 노동환경을 요구하는 패션 산업 노동자들을 국가적으로 경찰과 군대를 동원해 찍어누르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자, 바느질이 ‘값싼 노동’이자, 늘 여성들이 해온 노동이라는 ‘자연스러운’ 관념이 꾸준히 확대재생산되는 것은 누구에게 이익을 가져다줄까? 부모, 남자친구, 정부 관계자, 지역 공장장, 해외 기업 간부, 해외 소매업자에서 심지어 싼 신발을 원하는 소비자까지 모두 ‘동맹’이 되는 셈이다. 국제정치학자이자 여성학자인 신시아 인로는 <군사주의는 어떻게 패션이 되었을까>에서 주변의 사소한 것에서 ‘페미니스트적 호기심’을 발견하도록 돕는다. ‘자연스럽고’ ‘사소해 보이는’ 것들, 침묵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주목한다. “왜 신차 발표회에서 차 위에 여자 모델들을 올려놓을까?” “왜 군인의 부인들이 군 상사의 개인적 업무라든지 군 공동체를 위한 노동에 ‘자원’해서 나서야 하나?” “아부그라이브에서 이라크 포로들에게 고문에 가까운 성희롱을 했을 때, 왜 여군이 동원됐을까?”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것들을 의심하고, 남들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고 눈총 받아본 경험이 있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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