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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과거 시헙 답안지 ‘시권’을 아시나

등록 2015-07-09 20:49

시권-국가경영의 지혜를 듣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엮음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3만5000원

‘폐쇄적이고 봉건적인 신분제 사회’라는 고정관념과는 달리, 조선시대는 ‘과거’ 제도를 통해 개인의 경쟁과 능력주의를 장려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고려 광종 때 처음 도입돼 조선시대에 자리잡은 ‘과거’ 제도는 이런 전통의 핵심이었으며, 과거 시험 때 제출하는 답안지, 곧 ‘시권’은 조선시대 ‘파워 엘리트’들의 정신 세계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은 최근 시권 등 과거와 관련된 자료들을 모아 특별전을 열며 그 내용을 도록으로 엮어냈다. 조선의 과거는 크게 문과, 무과, 잡과로 이뤄졌는데, 이중에서도 문반을 뽑는 문과가 과거의 핵심이었다. 문과에는 경전에 대한 이해를 다루는 ‘생원시’와 문장 짓는 능력을 평가하는 ‘진사시’가 예비고사 성격인 ‘소과’였고, ‘소과’ 합격자에겐 ‘대과’를 치를 자격이 주어졌다. 3년마다 치러지는 정기시험인 ‘식년시’의 경우 ‘초시’-‘복시’-‘전시’ 세 단계를 거쳐 최종적으로 급제자를 선발했다. 식년시 이외에도 왕의 즉위, 원자의 탄생 등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 이를 이유로 다양한 이름의 부정기적인 시험이 치러지곤 했다.

고시과목은 모두 15종류로, 유교 경전에 대한 이해를 묻거나 어떤 사안에 대한 논변을 펴게 하거나 시나 부를 짓게 하는 등 다양한 형식이 있었다. 경학에 대한 이해, 역사와 문학을 비롯한 다방면의 학식과 문장을 구사하는 능력, 관료로서의 덕목 등을 평가하는 것이 주된 목적으로, ‘문치주의’를 강조한 조선 사회의 성격이 드러난다. 예컨대 정조 때 임금이 친히 주관하는 ‘친시’를 치른 다산 정약용은 “다섯 종류의 새(‘오객’)를 소재로 글을 지으라”는 문제를 만났다. 그는 흰 꿩, 공작, 앵무새, 학, 백로 등의 새들을 각기 다른 성격의 인재에 비유하고, 인재를 적재적소에 기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시권을 제출했다. 숙종 때 생원시에 응시한 이수담은 <예기>에 나오는 ‘백성의 힘을 쓸 때에는 한 해에 삼일을 넘지 못한다’는 구절의 뜻을 풀이하라는 문제를 만나,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고 임금이 임금일 수 있는 까닭은 백성이 있기 때문이니, 임금이 백성을 부릴 때에는 ‘절도’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라는 시권을 냈다.

과거를 둘러싼 다양한 생활문화사도 재밌다. 치열한 경쟁을 돌파하기 위한 발버둥은 예나 지금이나 별다를 바가 없었다. ‘향시’ 때 ‘위장 전입’을 불사하며 경쟁률이 낮은 지역에 응시한다거나, 여러 사람이 무리를 지어 함께 답안을 만들어낸다거나, ‘대리 시험’(대술)을 치르게 한다거나 하는 꼼수들도 있었다. 과거 시험에 대비한 전문 참고서들도 있었다. <전책정수> <동책정수> <진영수어> 등의 책들은 명신들이 작성하여 올린 책문 가운데 우수한 답안들만 뽑아서 편찬한 것이다. 명문을 모아서 발췌한 것을 ‘초집’이라 하는데, 조선 후기로 갈수록 잘 지은 과문을 뽑아 개인적으로 ‘초집’을 만들어 시험에 대비하는 것이 유행했다고도 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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