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하는 입
-혐오발언이란 무엇인가
모로오카 야스코 지음, 조승미·이혜진 옮김
오월의봄·1만4000원 몇년 사이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의 활동을 계기로, 이젠 ‘혐오발언’이란 말 자체가 우리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게 됐다. 그러나 혐오발언에 대한 우리 사회의 논의는 아직 충분치 못하다. 일각에서 혐오발언에 담긴 치명적인 문제들을 ‘누군가를 싫어할 수 있는 자유’ 또는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누그러뜨리려고 하는 한 논의는 더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 것이다. 변호사로서 인종차별철폐 엔지오(NGO)네트워크의 간사로 일해온 모로오카 야스코가 펴낸 <증오하는 입>은 혐오발언을 두고 지금 우리가 무엇을 논의해야 할지 적절하게 짚어낸 책이다. 일본에서는 2002년 북-일 정상회담 때 북한이 일본인 납치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던 일을 계기로 재일조선인에 대한 혐오발언이 크게 늘어났다. 2007년 결성된 ‘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재특회)은 그런 혐오발언을 주도한 대표적인 세력으로 꼽힌다. 모로오카는 재특회의 혐오발언과 일본 사회의 대응, 그리고 국제적인 기준과 사례까지 두루 살피며, 혐오발언이 근본적으로는 차별구조의 문제라는 점을 짚어낸다. 혐오발언은 대체로 “인종, 민족, 국적, 성별, 성적 지향과 같은 속성을 갖는 소수자 집단이나 개인에게 그 속성을 이유로 가하는 차별표현”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고 한다. 아직까지 혐오발언을 명확히 정의하는 국제인권조약은 나오지 않은 상태이지만,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조약’(자유권규약), ‘인종차별철폐조약’ 등에는 이미 혐오발언을 막는 내용이 들어 있다. 중요한 대목은 혐오발언의 본질이 “소수자에 대한 차별, 적대적인 폭력의 선동 또는 차별을 선동하는 모든 행위”라는 사실이다. 곧 혐오발언은 한 개인의 좋고 싫음의 표현이 아니라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선동하는 운동’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지은이가 조목조목 정리한 재일조선인에 대한 일본 사회 일각의 혐오발언은 이 대목을 잘 드러내어준다. 재특회 회원들은 2009년 교토에 있는 조선학교를 찾아가 “조선인은 인간이 아니다”, “조선 땅으로 돌아가서 똥을 먹어라” 등의 혐오발언을 쏟아냈다. 이들의 행위는 일본에 사는 소수자인 조선인을 대상으로 식민지 시대부터 현재까지 계속해온 구조적인 차별의 연장선 위에 놓여 있다. 때문에 법원은 이 사건에 대해 “공익 목적의 ‘표현의 자유’”라는 재특회의 주장을 일축하고, “재일조선인의 기본적인 자유와 평등을 막으려는 목적이 분명하며, 인종차별철폐조약에서 규정하는 인종차별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지은이는 혐오발언에 대한 규제에 찬성하지만, 그것은 차별 철폐 정책과 차별금지법을 기반으로 해서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에선 입법이 한차례 좌절됐지만, 뉴질랜드 인권법(1993년), 아일랜드 평등법(2004년), 프랑스 차별금지법(2008년), 스웨덴 반차별법(2009) 등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차별금지법 제정은 전세계적인 추세다. 지은이는 혐오발언에 대한 규제를 형법이 아니라 차별금지법 안에 일부로 넣는 것이 바람직하며, 규제 대상은 ‘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표현’으로 한정하는 것이 좋겠다는 구체적인 의견도 내놓는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혐오발언이란 무엇인가
모로오카 야스코 지음, 조승미·이혜진 옮김
오월의봄·1만4000원 몇년 사이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의 활동을 계기로, 이젠 ‘혐오발언’이란 말 자체가 우리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게 됐다. 그러나 혐오발언에 대한 우리 사회의 논의는 아직 충분치 못하다. 일각에서 혐오발언에 담긴 치명적인 문제들을 ‘누군가를 싫어할 수 있는 자유’ 또는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누그러뜨리려고 하는 한 논의는 더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 것이다. 변호사로서 인종차별철폐 엔지오(NGO)네트워크의 간사로 일해온 모로오카 야스코가 펴낸 <증오하는 입>은 혐오발언을 두고 지금 우리가 무엇을 논의해야 할지 적절하게 짚어낸 책이다. 일본에서는 2002년 북-일 정상회담 때 북한이 일본인 납치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던 일을 계기로 재일조선인에 대한 혐오발언이 크게 늘어났다. 2007년 결성된 ‘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재특회)은 그런 혐오발언을 주도한 대표적인 세력으로 꼽힌다. 모로오카는 재특회의 혐오발언과 일본 사회의 대응, 그리고 국제적인 기준과 사례까지 두루 살피며, 혐오발언이 근본적으로는 차별구조의 문제라는 점을 짚어낸다. 혐오발언은 대체로 “인종, 민족, 국적, 성별, 성적 지향과 같은 속성을 갖는 소수자 집단이나 개인에게 그 속성을 이유로 가하는 차별표현”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고 한다. 아직까지 혐오발언을 명확히 정의하는 국제인권조약은 나오지 않은 상태이지만,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조약’(자유권규약), ‘인종차별철폐조약’ 등에는 이미 혐오발언을 막는 내용이 들어 있다. 중요한 대목은 혐오발언의 본질이 “소수자에 대한 차별, 적대적인 폭력의 선동 또는 차별을 선동하는 모든 행위”라는 사실이다. 곧 혐오발언은 한 개인의 좋고 싫음의 표현이 아니라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선동하는 운동’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지은이가 조목조목 정리한 재일조선인에 대한 일본 사회 일각의 혐오발언은 이 대목을 잘 드러내어준다. 재특회 회원들은 2009년 교토에 있는 조선학교를 찾아가 “조선인은 인간이 아니다”, “조선 땅으로 돌아가서 똥을 먹어라” 등의 혐오발언을 쏟아냈다. 이들의 행위는 일본에 사는 소수자인 조선인을 대상으로 식민지 시대부터 현재까지 계속해온 구조적인 차별의 연장선 위에 놓여 있다. 때문에 법원은 이 사건에 대해 “공익 목적의 ‘표현의 자유’”라는 재특회의 주장을 일축하고, “재일조선인의 기본적인 자유와 평등을 막으려는 목적이 분명하며, 인종차별철폐조약에서 규정하는 인종차별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지은이는 혐오발언에 대한 규제에 찬성하지만, 그것은 차별 철폐 정책과 차별금지법을 기반으로 해서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에선 입법이 한차례 좌절됐지만, 뉴질랜드 인권법(1993년), 아일랜드 평등법(2004년), 프랑스 차별금지법(2008년), 스웨덴 반차별법(2009) 등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차별금지법 제정은 전세계적인 추세다. 지은이는 혐오발언에 대한 규제를 형법이 아니라 차별금지법 안에 일부로 넣는 것이 바람직하며, 규제 대상은 ‘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표현’으로 한정하는 것이 좋겠다는 구체적인 의견도 내놓는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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