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독서
보르헤스의 말
- 언어의 미로 속에서,
여든의 인터뷰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윌리스 반스톤 지음
서창렬 옮김/마음산책·1만6800원 아르헨티나 출신의 현대문학의 거장,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 1986)는 말년에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도처에 있는 청중들을 만났다. 보르헤스는 중년 무렵 눈이 먼 뒤론 입으로 압축적인 단편소설과 시를 풀어내고 비서로 하여금 이를 받아쓰게 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문학을 세상에 내놨다. 이를 두고 작가 윌리스 반스톤은 “그에게 인쇄된 글과 입으로 한 말은 하나의 복합체”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말년의 보르헤스가 뛰어난 대화술로 동료, 청중들과 주고받는 말들을 모아서 책으로 엮기로 했다. <보르헤스의 말>은 보르헤스가 1976년과 1980년에 했던 인터뷰 열한 꼭지를 모은 책이다. 보르헤스의 말들 속에는 그가 자신의 작품을 통해 드러냈던 것들이 대부분 녹아들어 되풀이된다. 수수께끼와 같은 세계, 악몽, 죽음, 기억과 망각, 지옥 등의 주제들이 대표적이다. 예컨대 한 물리학자가 우주의 복잡성을 강조하는 그의 경향성을 지적하며 “당신의 세계관은 어떤 것이냐” 묻자, 그는 “나는 세계를 수수께끼로 생각한다. 그에 관한 한 가지 아름다운 사실은 수수께끼가 풀리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라고 말한다. 결코 풀리지 않을 수수께끼인 세계는 악몽과 다름없다. 죽음과 망각을 구원으로 인식하는 보르헤스는 “우리는 거기에서 탈출할 수 없고 그저 꿈만 꾼다”고 말한다. 그리고 결코 풀리지 않을 수수께끼를 푸느라 애써야 하는 자신의 숙명을 말한다.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동원하는 도구는 언어와 상상력이다. 그는 “우리의 과제는, 거의 밤마다 주어지는 실수와 악몽을 시로 녹여내는 것”이라며 “나는 항상 꿈을 꾸어야 하고, 그 꿈들은 말이 되어야 하고, 나는 말과 씨름해서 최선의 것이든 최악의 것이든 그걸 형상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꿈이란 것이 “모든 것이 우리 자신으로부터 오는” 경지이기 때문에 ‘창조’와 다름없다고 말한다. 자전적 작품인 단편 <기억의 천재 푸네스>에는 모든 것을 기억하는 놀라운 기억력을 얻었지만 망각하지 못하는 비극을 겪는 푸네스가 나온다. 그에 빗대어 보르헤스는 “상상력이란 것은 기억과 망각에 의해 만들어지는, 그 두 가지를 섞어놓은 것”이라고 말한다. 보르헤스의 작품은 원래 난해하기로 유명하다. 인터뷰집에 나오는 그의 말들도 잠언처럼 심오하지만, 그의 진솔한 입말 자체는 의외로 쉽게 다가온다. 국내에서 간혹 ‘포스트모더니즘’ 논의와 엮여서 소개되곤 했던 보르헤스가 “나는 나 자신을 현대 작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대목도 재미있다. 그는 스스로 버나드 쇼, 헨리 제임스의 애독자라는 점을 내세우며 “나의 새로움은 19세기의 새로움이고, 나는 19세기 작가”라고 말한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 에드거 앨런 포 등 자신이 영향을 받은 작가들에 대한 애정을 자주 드러내는 것도 인상적이다. 특히 미국의 시인 월트 휘트먼을 여러 차례 언급하는데, 휘트먼의 역작 <풀잎>에 대해 “작가 스스로 모든 인간이 되고자 했던 비범한 시도”라는 찬사를 보낸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 언어의 미로 속에서,
여든의 인터뷰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윌리스 반스톤 지음
서창렬 옮김/마음산책·1만6800원 아르헨티나 출신의 현대문학의 거장,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 1986)는 말년에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도처에 있는 청중들을 만났다. 보르헤스는 중년 무렵 눈이 먼 뒤론 입으로 압축적인 단편소설과 시를 풀어내고 비서로 하여금 이를 받아쓰게 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문학을 세상에 내놨다. 이를 두고 작가 윌리스 반스톤은 “그에게 인쇄된 글과 입으로 한 말은 하나의 복합체”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말년의 보르헤스가 뛰어난 대화술로 동료, 청중들과 주고받는 말들을 모아서 책으로 엮기로 했다. <보르헤스의 말>은 보르헤스가 1976년과 1980년에 했던 인터뷰 열한 꼭지를 모은 책이다. 보르헤스의 말들 속에는 그가 자신의 작품을 통해 드러냈던 것들이 대부분 녹아들어 되풀이된다. 수수께끼와 같은 세계, 악몽, 죽음, 기억과 망각, 지옥 등의 주제들이 대표적이다. 예컨대 한 물리학자가 우주의 복잡성을 강조하는 그의 경향성을 지적하며 “당신의 세계관은 어떤 것이냐” 묻자, 그는 “나는 세계를 수수께끼로 생각한다. 그에 관한 한 가지 아름다운 사실은 수수께끼가 풀리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라고 말한다. 결코 풀리지 않을 수수께끼인 세계는 악몽과 다름없다. 죽음과 망각을 구원으로 인식하는 보르헤스는 “우리는 거기에서 탈출할 수 없고 그저 꿈만 꾼다”고 말한다. 그리고 결코 풀리지 않을 수수께끼를 푸느라 애써야 하는 자신의 숙명을 말한다.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동원하는 도구는 언어와 상상력이다. 그는 “우리의 과제는, 거의 밤마다 주어지는 실수와 악몽을 시로 녹여내는 것”이라며 “나는 항상 꿈을 꾸어야 하고, 그 꿈들은 말이 되어야 하고, 나는 말과 씨름해서 최선의 것이든 최악의 것이든 그걸 형상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꿈이란 것이 “모든 것이 우리 자신으로부터 오는” 경지이기 때문에 ‘창조’와 다름없다고 말한다. 자전적 작품인 단편 <기억의 천재 푸네스>에는 모든 것을 기억하는 놀라운 기억력을 얻었지만 망각하지 못하는 비극을 겪는 푸네스가 나온다. 그에 빗대어 보르헤스는 “상상력이란 것은 기억과 망각에 의해 만들어지는, 그 두 가지를 섞어놓은 것”이라고 말한다. 보르헤스의 작품은 원래 난해하기로 유명하다. 인터뷰집에 나오는 그의 말들도 잠언처럼 심오하지만, 그의 진솔한 입말 자체는 의외로 쉽게 다가온다. 국내에서 간혹 ‘포스트모더니즘’ 논의와 엮여서 소개되곤 했던 보르헤스가 “나는 나 자신을 현대 작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대목도 재미있다. 그는 스스로 버나드 쇼, 헨리 제임스의 애독자라는 점을 내세우며 “나의 새로움은 19세기의 새로움이고, 나는 19세기 작가”라고 말한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 에드거 앨런 포 등 자신이 영향을 받은 작가들에 대한 애정을 자주 드러내는 것도 인상적이다. 특히 미국의 시인 월트 휘트먼을 여러 차례 언급하는데, 휘트먼의 역작 <풀잎>에 대해 “작가 스스로 모든 인간이 되고자 했던 비범한 시도”라는 찬사를 보낸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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